하나와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킥킥거리며 누웠다.
불을 켜는 건 싫지만 어두울까봐 가져온 두 손바닥 크기의 플라스틱 수면등은 오렌지색으로 희미하게 빛나며 따뜻하게 열이 나서, 마치 우리 둘이 살아있는 생물을 가지고 침대에 온 것 같이 느껴졌다. 우리 둘은 잠시간 그 온기에 취해 있다가 눈을 맞춘다. 어둠 속에서 연하게 빛나는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공연히 헛기침을 해본다.
[Half world]
2014 3 10
For 우엉님
낮, 내 방에서 놀던 두리는 문득 침대의 쿠션을 눌러보더니 제 침대와 뭔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참 어지간히도 의미없고 바보같은 짓거리였으나 하나가 그럼 한 번 써보지 그래? 라는 말을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럴까? 이 침대가 더 좋은 것 같은데 한번 잠들어 보면 확실해지겠지? 두리의 대답과 더해져 내 의사따위는 아무 상관없이 나와 두리는 집과 침대를 바꿔서 자게 된 것이다.
"굿나잇, 바이바이"
왠지 네옹이형과 돌아서는 두리의 옆얼굴이 이상하게 즐거워 보이는 것이 조금 걸렸으나 뭐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고작 하룻밤에다가 옆집인데 끊지 않으면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아빠의 긴긴 당부의 말들을 웃어서 안심시키고는 잠옷이 든 보조가방을 들고 기지개를 켠다.
옆에 선 하나는 연신 싱글거리는 게 즐거운 표정이었고 그 순간 그와 같은 방을 쓴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워서 얼굴을 피했지만 그는 끝까지 시선을 따라붙이더니 맑게 웃었다.
"모처럼이니까, 과자라도 사서 놀래?"
"아, 응."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걸어가는 하나의 등을 쫓는다.
가
로등도 꺼진 저녁 무렵의 푸르고 검은 하늘이 삭막한 길과 합쳐져 칙칙하고 먹먹한 가운데 오직 그의 뒷모습만이, 아주 연하게 빛이
나는 것 같아 홀린 듯이 그 뒤를 따를 수 밖에 없다. 문득, 그가 뒤로 돌아서더니 내 손목을 잡아챈다.
"권세모, 빨리 가자!"
강 하게 잡힌 것도 아닌데 그와 맞닿은 부분에서 열기가 올라오는 것 같아, 똑바로 걷기조차 힘들어서 걸음이 자꾸 꼬였고- 그 이후에는 솔직히 자세한 기억이 없다. 차하나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은 정말로-자꾸, 나를 이상하게 만드는 것 같아.
그래, 나는 이상해진 게 분명하다. 과자봉지를 나눠들고, 하나의 이런저런 잡담을 흘려듣다가-나는 그를 핑계로 입을 열었다.
"하나야, 나....아니, 우리-집에 가면 비밀얘기 할까?"
아 니 사실은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물론 말해서도 문제지만 차라리 말해버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고-어째 복잡한 심경으로 말끝을 흐리는데 하나는 한점 티끌없는 웃음을 짓고는 재밌겠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소리가 밖으로 들릴 것만 같아서 자꾸 벌어지려는 입을 꾹 다물어 물었다.
아직 기회는 있을까.
차박사님은 둘이 먹기엔 지나친 양의 과자를 보고는 너무 늦게 자지는 말고 양치질 잊지말라는 잔소리만 할 뿐 내가 자고 가는 것에 대해선 별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았다. 그 말이 내가 집 밖을 나설때 여섯줄 넘게 남겼던 아빠의 잔소리와 대비되어서 어딘지 아빠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 깎어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나 차박사님에게보다 아빠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과자봉 지를 방 안에 대강 던지고있으니 한 발 늦게 주방에서 챙겨오는 종이컵을 가져온 하나가 방에 들어온다. 책상도 있는데 굳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종이컵을 하나씩 꺼내는 하나를 보다가- 찰나의 충동으로 장난치듯 형광등을 꺼본다. 하나가 놀랐는지 비명에 가까운 짤막한 소리를 내더니 곧 제 옆에 있던 쿠션을 집어 던진다.
자꾸 웃음이 나왔다. 방문이 열려 있어서 그리 어둡지도
않은데 두리랑 붙인 걸로 보이는 연두색 형광별들이 반짝반짝-그 아래에 있는 하나도 반짝반짝. 쿠션을 몇 번이나 쥐고 흔들던 하나는
조금 피곤해졌는지 제 침대에 앉아서는. 팡팡, 옆자리를 치며 나를 본다. 짜증은 좀 식은 것같아서 주춤주춤 다가가 침대
끄트머리에 앉자 머리 위로 이불이 덮어졌다. 푹, 침대의 안으로 안기어 매트리스에 몸을 묻는다. 아, 하나냄새.
불을 끈 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암묵적으로 합의한 하나와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킥킥거리며 누웠다.
불을 켜는 건 싫지만 어두울까봐 가져온 두 손바닥 크기의 플라스틱 수면등은 오렌지색으로 희미하게 빛나며 따뜻하게 열이 나서, 마치 우리 둘이 살아있는 생물을 가지고 침대에 온 것 같이 느껴졌다. 우리 둘은 잠시간 그 온기에 취해 있다가 눈을 맞춘다. 어둠 속에서 연하게 빛나는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공연히 헛기침을 해본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몹시, 조용한 시간이 이어졌다. 불편하지는 않은 침묵 속, 물 위에 뜬 양 의식을 유영하던 우리는 손을 잡았다.
"비밀얘기, 할까?"
하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너부터 말해"
"아니, 너부터야."
언 제 조용했냐는 듯이 또 시끄러워지고 말았다. 도저히 나부터는 말 못하겠으니 양보할 수 없는 문제건만 틱틱거리던 하나는 가위바위보를 제안했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써먹어야 하니 말하지는 않지만 두리만 빼고 오공과 나는 알고 있다. 하나의 가위바위보 패턴은 너무 단순하다.
"왜 난 매일 지는 거지."
하나는 처참한 표정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나는 어색하게 웃고는 자, 비밀! 이라며 그를 재촉한다. 하나는 잠시간 머뭇거리더니-수면등을 가까이하고 아주 느릿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으음,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하나는 얼굴을 붉힌다. 수면등의 오렌지색과 겹쳐져, 석양이 내린 것 같은 얼굴, 그 작은 입술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그를 재촉해본다.
"내 방에 세계지도 있잖아, 펼쳐진 지구 모양의-나 말야, 그 지도를 세계의 한쪽 면이라고 생각했어."
나 는 침대 밖, 어둠 속에 있을 거대한 지도 아래에 어린 차하나가 서있을 광경을 생각해본다. 예전에, 얼핏 보았던 꼬마 차하나 옆에는 내가 없지만-나는 그의 꼬마시절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때도 너눈 주황색을 좋아했을까.
"그 지도가 반쪽이고, 다른 지도 한장에는 세계의 다른 쪽 면이 있다고, 그렇게-지난 겨울까지 줄곧 생각했었어. 아빠가 지구본 사주기 전까지는, 뭐 멍청한 얘긴데-"
멍청하지 않아. 나는 진실을 깨닫고 풀이 죽었을, 지도 앞에서 혼자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을 멍청하다고 생각할-하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그는 이 것을 비밀이라고 말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우리 둘만인걸까.
"나는 아직도 세계의 반이 없는 사실이, 저 세계만이 전부라는 게 잘 믿겨지지 않아, 그거-너무 아쉽잖아."
하나는 쑥쓰러운 듯 웃었다. 지금의 표정은-아무리 짧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내가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생각과 말을 곱씹는다. 제가 생각하던 세계의 반이 없음에 실망하고 진실을 인식함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그 찰나마저도 상냥하고 따뜻한 그는 내 생각만치, 생각보다도-
사랑스러워서.
"자 네 차례야, 권세모."
나는 이 방에 오기 전부터 줄곧 하려던 말을 조용히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역시, 아직은 안되겠네. 지금 이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니까-조금 더, 조금 더 네 비밀에 대해 많이 듣고-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 다음에-
네게 내 비밀을 말해줄게.
나는 이불을 걷고 일어서서는 당황한 차하나가 불러 세우기도 전에 방의 불을 켰다. 갑자기 환해진 시야에 어푸푸, 하나가 발버둥을 치는 동안 과자봉지와 종이컵을 챙겨서 하나에게 들어보인다.
"과자 먹자."
씨익, 하고 지은 웃음에 하나의 표정이 망가진다. 새빨간, 토마토 같이 붉어진 얼굴로 이번에는 베개를 집어던지는데 이번엔 확실히 감정이 들어가 있어서 조금 아팠다.
"야! 권세모 비겁하게!!! 내 비밀만 홀랑 듣기냐."
"아아-과자 먹자, 차하나."
나는 하나의 방에 아직도 걸려있는-조금 빛바랜 세계지도를 바라보며, 그 주인에게는 들리지 않을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다시 한 번 사랑에 빠졌음을 말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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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엉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리퀘주신 풋풋한 셈한 왔어요. 짧긴 한데 억지로 늘리기도 뭐해서...짧은 글이지만 받아주시면 좋겠네요:>세계지도 보면서 저런 생각한 애들 많을 거라고 봅니다. 저도 3학년 때까진 저런 생각했었어요...바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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