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마주칠 때면,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마치 괜찮다는 것 처럼, 안심하라는 듯이 웃어주었다.
그 상냥한 웃음이 좋았다. 정말로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 같아서,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 웃음이-뼈가 아릴 만큼이나 그리워.
[노력]
2014 5 4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언가 슬픈 꿈을 꾼 듯하다.
지 끈 거리는 머리만큼이나 습하게 내려앉은 공기에 창을 열자 빗줄기가 연하게 내리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두통이 밀려오는 머리를 잡고 슬리퍼를 신고는 다른 손으로 대강대강 침대를 정리한 후에 가볍게 세안을 한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그의 방으로 향한다.
노크를 세번, 잠시 기다려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아서 어깨를 으쓱이고는 문을 연다.
"아빠."
하고 부르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어제 밤,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그 모습 그대로 침대의 헤드에 붙잡혀 머리를 시트를 향해 숙이고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문득 손목에 덧대어 놓은 천이 조금 헐거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곱게 말아 넣어주었다. 그의 피부는 몹시 연약해서 금속에 쉽게 상처가 나는 점이 조금 곤란하다.
물론 나는 그런 그의 연약한 부분까지 사랑하긴 하지만 역시 그가 아픈 것은 싫으니까.
수 그러진 동그란 뒷머리, 고동색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오늘은 뭘 해줄까, 지난 밤에는 닭고기 요리를 남겨서 서운했는데 오늘 아침에 먹으려 준비해둔 생선요리는 좋아해줄까. 그가 눈을 뜨지 않으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를 기다리는 시간마저 기꺼운 것이 신기하다.
한참을 쓰다듬다가 그의 손이 마치 경련하듯 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일어났다면 기척이라도 해주지 자는 척이라니 장난스럽기도 하지.
"좋은 아침이에요."
하고 건네는 인사에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내 가 '잘못'한지도 벌써 며칠째인데 아직도 삐져있나보다. 아프다는 족쇄도 보수해주었고, 벌써 며칠밤이나 건드리지 않고 참아주고 있는데,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절충 없이 화만 내다니 정말 고집쟁이 아닌가.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욕실로 향해서 칫솔과 치약, 수건을 챙기고는, 작은 대야에 물을 담아 가져 왔다.
열린 문으로 돌아오면서 얼마 안되는 햇빛만으로 밝혀진 방 안, 그 어둑함 속에서도 며칠 사이에 부쩍 수축해진 얼굴과 형형히 빛나는 눈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많이 서툴었지만 그래도 제법 경험이 붙어 익숙해진 손길로 그의 몸을 닦는다. 물을 축인 수건으로 노출된 손과 팔을 닦고, 갸름해진 얼굴을 따라 움직이다가 그의 귓가에 나지막히, 지난 며칠간 해오던 말을 다시 던지어본다.
"아직도 날 이해해 줄 생각은 없어요?"
그는 눈을 마주치고는-나를 향해 [ 웃었다 ]
그
것은 굳이 분류하여 웃음이라 표현했으나 몹시도 서늘한 것이었다. 뒤틀린 눈매로 입술을 꾹 깨물고는 입매만을 틀어 만드는 색 또렷한
비웃음은 마치 마법처럼, 그와 내가 자리한 침대를 얼음처럼 차갑게 식힌다. 무릎으로 딛고 지탱하던 몸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아, 당신은 어째서.
찰싹, 강한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카락이 날리며 사랑해마지않는 얼굴의 한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지 마요."
당신이 아픈 건 싫은데. 자꾸 그런 행동을 하니까 내가 당신을 아프게 하잖아. 나는 돌려진 그의 얼굴을 내게 향하게 하고는 정성을 다하여 부탁해본다.
"웃어주세요, 아빠."
자꾸 시선마저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얼굴을 억지로 붙잡아 나를 향하게 한다. 그렇게, 자주 웃었으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내게 웃어주었으면서-당신에게는 분명 쉬운일인텐데도.
"웃어줬잖아."
단어를 씹어내듯이 뱉어내는 그 대답에서 연하게 피비린내가 났다. 강하게 때린 것도 아닌데 잘못 맞았던지 입안 어딘가가 터진 모양이지, 이렇게 연약하고 쉽게 다칠 거면서 왜 자꾸 당신은 나를 거부할까.
치료도 해줄 수 있는데, 거짓말이라도 이해하겠다고-노력해보겠다고-나를 사랑해준다 말하며 다시 내게 웃어준다면 이런 사슬 같은 것 필요도 없는데.
왜 거짓말도 해주지 않아. 왜 표정 하나도 해주지 않아?
"웃어주세요, 제발요."
그
의 수척해진 손을 가져다 그 손가락에 입을 맞춘다. 좋아해요, 경애해요, 이렇게, 사랑하고 있어요. 그런 마음을 담은 행동에도
차갑기만 하던 그의 얼굴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핏, 시트 위로 검붉은 액체를 뱉어냈다. 붉게 얼룩지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에-그가 제 손을 앗아간다. 얕게 번지는 한숨.
"네가 뭘 바라는 지는 알것도 같다."
채 바깥으로 뱉어지지 못한 핏줄기가 그의 입술에서 번져 밖으로 흘러나온다. 보라색으로 질린 얇은 입술에서 빠져나온 붉은 혀가 제 색보다 진한 액체를 거두어 연한 자취만을 남기는 그 선연하고 짧은 시간의 자취에 심장이 강하게 뛴다. 그의 모든 말과 모든 행동이 나를 움직이고 멈추고 조종하고 있다. 하얀 손목에 감긴 은색의 구속구를 가만히 쓰다듬어본다. 안 쪽으로는 천을 대어놓았지만 겉은 소름끼칠 정도로 차갑다. 사실은-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런 것,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잠시 말을 멈추고는 내 행동을 바라보던 그는 다시 그 예의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익숙하지 않은 날선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지금의 네가 그걸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말
을 끝낼 무렵에는 익숙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무언가, 내가 큰 잘못을 했을때 꾸짖으며 짓던 얼굴이었다. 바라던 웃음은 아니었으나
익숙한 모습을 발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안도하게 한다. 가능성은 있구나, 이 지경까지 온 중에도 아직은 그래도-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나는 그가 그 표정을 지을 때 그의 화를 가장 삭히게 했던 표정과 대답을 기억해내고는 최대한 그에 가까운,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은 재현해내며 웃어보였다.
"열심히 할게요."
그 말에 쉽게 풀어지곤 했는데, 연기라면 문제가 없었는데도 그의 얼굴은 마치 극도로 혐오하는 무언가를 본 듯 불길하게 일그러진다. 하, 하는 허탈해 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노력해보던가, 될 것 같진 않지만."
나는 바닥에 떨어진 물수건을 다시 집어 그의 발목을 쥐었다. 하얀 발을 더 하얀 수건으로 정성스레 닦으며 나는 결의를 담아 대답해본다.
"응. 노력할게요."
노 력이 가장 쉬운 길이라고 아빠가 말했었지만 그런 아빠는 내가 내뱉는 노력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머 그 고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도무지 웃어주려 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를 피하듯 돌려진 고개 떄문에 드러난 그 희고 가는 목 위에 입을 맞추고는 다시금 사랑과 이해를 속삭여본다.
망가진 아침이란 건 알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고쳐야할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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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