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랑, 빛에 비치는 색은 다채롭고 반짝이는 동시에 덧없다.
아버지 대신 비서가 전해준 선물은 몹시 섬세하게 만들어진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유리세공 귀걸이라고 했다.
감사하다, 소중히 여기겠다며 의례적으로 말하고 돌아서며-내가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있음에 한탄한다. 얼마전 그 어린 꼬마에게는 주식이 돌아간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나, 단지 제가 바꿀 수 없는 제 특성에 대해 아직도 미련을 털어내지 못한 것을 다시금 알았을 뿐이다.[비와 유리와 소년과 소녀가]
2014 6 7
현관, 비가 엷게 내리고 있었다.
걸 어갈까? 평상시라면 시간이나 체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일에 질겁하는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이 비속을 걷고 싶어지는 느낌이다. 기묘한 충동으로 발을 몇 발자국 내딛었을 때, 생각보다도 훨씬 더 물기가 느껴지지 않은 것이 의아해하며 문득 고개를 올려 본다.
일전에 한 번 본 일 있었던, 정말로 악취미적이란 생각이 드는 은회색의 호피문양 우산의 그림자, 당황스런 심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침잠된 표정의 검은 머리의 아름다운 소년이 눈을 맞추어 온다.
"산성비 맞고 다니면 못써."
언제부터 등 뒤에 서 있던 걸까,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 선 그에게 소름이 돋는다기보다는 스스로가 지나칠 정도로 둔하게 있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느낀다. 자기관리라면 습관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도 아니었던 건가.
그가 건네온 말은 얼핏 농담 같은 내용이었으나 마주한 시선에 웃음 끼 하나 없는 것을 제외한다고 해도,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건조하고 삭막하여 의례적이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웃기지도 않은, 여성존중정신, 레이디퍼스트 따위는 개나 주라지. 지금 내 표정은 썩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하나 굳이표정을 바꿀 이유 또한 떠오르지 않는다.
"남이사, 무슨 참견이야?"
날
카로운 신경 탓에 평소보다도 날카롭게 쏘아지는 말투라는 것을 말하고 난 후에야 알았으나 상대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무색무취.
아니, 무색이나 무취는 아니다-그에게서는 물냄새가 난다. 몸이 아닌 것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연한 비린내-속모를 표정을 하고는
있으나 그 속, 영혼 따위에 깊이 자리한 것이 검고 음습한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만난지도 한 해를 헤아려
가는 시점이지만 나는, 이 녀석이 조금 어렵다.
그는 물끄럼한 표정으로 침묵하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침묵으로 응대하며 우산의 금속대를 손가락으로 밀어낸다, 소름끼칠 정도로 서늘한 느낌이 손 끝을 타고 올라온다. 의미없는 말들과 말없이 주고 받는 시간 속에서 빗줄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그는 문득 시선을 떨군다. 얼핏 한숨같은 소리를 내뱉고는 덤덤히 말해온다.
"네가 감기에 걸리면 그가 걱정할테니까."
"누가?"
"지금 네가 떠올린 그 녀석."
그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여 전히 웃음끼 없는 얼굴이다. 그림자 없이 검은 눈은 표정을 읽기 어렵다. 물기로 내려앉은 푸르고 깨끗한 공기 속에서 새삼 그가 몹시 아름다운 외향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침음을 삼킨다. 귓가에서 유리 귀걸이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그의 말에는 내 거절이란 것이 전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더이상의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나는 더이상 불편한 대화를 지속시키는 일에 회의를 느끼며-정말로 선택하고 싶지 않던 불편한 동행을 택했다.
한 해, 12달.
날 짜로 헤아려 300일은 일찍이 넘긴 시간을 익히 보아왔으나 둘이 보내는 시간은 몹시 드물었다. 아는 것조차도 몹시 드물다. 나는 그의 이름 석자를 알고 있다. 권리모, 나이는 나와 동갑, 딱히 신경쓰는 것은 아니나 성적 정도는 알고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곁에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니 저절로 알게되는 것돌도 있긴 하지만 무언가 개인 적인 정보들, 좋아하는 음식도-색도 알지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다. 나와 리모는 그런 사이였다. 마땅히 규정할 단어라고는 '아는 사이'라는 4글자, 혹은 '클래스메이트'라는 6글자.
나와 리모는 단지 한 소년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그밖의 정보라면, 그가 퍽이나 아름다운 외향을 하고 있다는 것일까? 같은 반 소녀들의 수다 속에서 들어 그 따위도 인지하고는 있으나 그 또한 의미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제게 또래처럼 엷고 설레이는 친애의 감정따위가 존재할 리 없다.
그 즘을 생각하자니 한숨이 나온다.
친애, 어째서 그 단어에 떠오르는 얼굴이 존재하는 걸까.
"한숨 쉬는 거 나쁜 버릇인데."
"너도 자주 쉬지 않던가."
"나쁜 버릇이라고 했지 내가 안그렇다는 소리는 아냐."
한 심한 대화였으나 역시 웃음은 존재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리모의 얼굴에 조금 더 웃음이 헤펐던 것을 떠올린다. 이 또한 '그'의 공백 때문이리라. 우리의 사이에 있던 그 느슨하고 멍청하며 둔한 얼굴을 떠올리다가, 눈 앞에 남자와 자신을 묶어 '우리' 라는 그룹으로 칭했다는 생각에 회의감을 느낀다. 불쾌한 심경이었다.
"읏."
주
인을 닮아 우산도 괴팍한 모양이다. 머리카락이 우산살에 끼었다. 단발머리인데도 어째서? 강하게 당기니 느껴지는 통증에 짜증이
올라온다. 몇 번 당겨보았지만 당겨지는 와중에 더 엉켜 버린 것인지 도무지 풀어질 기미가 보여지지 않는다. 가위라도 있으면
잘라버리고 싶은 심경이었다. 남자였다면, 좋을텐데-짧은 머리였다면 분명 걸리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요 오전을 가득 채우던
불쾌한 생각의 연장으로 손가락이 자꾸 꼬인다. 답답함이 불쾌함으로 번진다. 젠장, 젠장! 입밖으로 금새 비속어가 튀어나와버릴 듯한
느낌.
"쯧, 가만히 있어봐."
그 말과 동시에 리모가 고개를 숙였다.
놀 란 것은, 그의 키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일까, 작년까지는 비슷했던 것도 같은데 시야가 어느 사이엔가 자신보다 높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어째서인지 패배감을 느낀다. 우산이 기울어진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마냥 힘을 주어 당기던 내 손가락을 스쳐 엉킨 머리카락의 매듭에 닿았다. 섬세한 손끝-나는 눈으로 하얀 손가락이 매듭을 풀어내는 홀린 듯이 바라본다.
얼굴이 몹시 가깝다. 긴 속눈썹의 아래로 자리잡은 그늘잡힌 눈동자와, 몹시 하얀 얼굴을 바라보며-나는 리모가 예쁘장하다는 것을 떠올리는 동시에-자동적으로 무언가의 상념을 이어 떠올린다. 아-이 소년 정도라면 좋아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성적도 우수하며 집안도 나쁘지 않고, 외향 또한 사람을 홀리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제 곁에 세운다해도 아마도 썩 좋은 그림이 나올 것이다. 계산 적인 두뇌는 그 답을 내뱉은 동시에 이 계산에 전재된 내용을 암시해 준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도 심장이 떨리지 않는다.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는다.
나는 리모, 눈앞의 소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몹
시 짧은 시간이 지나, 머리카락이 자유를 찾았다. 리모의 손끝은 머리카락을 살짝 들어올린 상태에서 잠시 멈춰있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이 귀 끝이라는 것을, 아마도 그가 보고 있는 것이 오늘 차고 있던 귀걸이라는 것을 따라 깨닫는다. 그는 집요할 정도로
작은 귀걸이에서 시선을 떼어내지 않고는 입술을 달짝였다. 아직도 거리는 좁다.
"교칙위반 아니던가."
"불만이야?"
휙하고 쏘아보자 그는 드디어 시선을 떼어내며 고개를 돌렸다. 몇 걸음 걷더니 뒤늦게 대답해온다.
"아니? 생일선물일거잖아, 오늘 너 생일이었고."
그 말에는 당황하고 말았다. 네가 어떻게.
"내 생일, 알고 있었어?"
아, 허술한 말투로 묻고 말았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웃었다.
눈
이 접히며 입꼬리가 올라간 낯선 동시에 익숙한 얼굴, 그 표정은 내게 짓던 것이 아닌, 한 소년을 사이에 두고 자주
보던-표정이었고 동시에 처음으로 내게 향한 것이기도 했다. 처음, 그것을 인식한 순간 얼굴이 붉어진다. 어디까지나 설레임이 아닌
당황이라는 까닭이었다.
리모는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도운은 알지못했는데도 네가 어째서.
"귀걸이 잘 어울려, 소라."
그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낯설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우산을 내게 넘겼다. 나는 혼돈에 빠진 상태로 얼결에 우산을 건네 받아버렸다. 그는 또다시 웃었다. 진한 웃음.
"두번밖에 쓰지 않은 거지만 쓰던 물건이라 불쾌할 수도 있겠네. 선물이지만 버려도 괜찮아."
리
모는 일방적인 언사로 말하고는 내게서 순식간에 멀어져 갔다. 어느새 다시 잦아든 연한 빗줄기 속에서 빠르게 멀어져 가는 리모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나답지 않게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가 내게 이 악취미 적인 우산을 '선물' 이란 이름으로 떠맡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일방적인 칭찬을 들었다는 것도.
"하, 이런 것 따위-."
이미 역에 거의 도착한 즘이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이 따위 우산-버려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고는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일방적으로 행해진 리모의 모든 말과 행동들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규정할 수 없는 충동으로, 나는 그대로 우산을 집으로 들고 오고 말았다, 동시에-아까까지는 괴롭고 복잡한 심경이 들던 유리 귀걸이 또한-소중하게 보관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 날 이후 나와 리모, 우리에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다고 그 날의 순간들과 귀걸이와, 비와, 우산이 있던 그 짧은 시간이 사라지는 것도,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것 뿐이다.
- 전력 60분, 10시 20분~11시 20분, 림솔림 키워드.
★그리고 회신으로 받았습니다!
아하하하하하 안녕하세요 82분 전력드로잉을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춘 한밤이에여...^ㅁT☜☜☜☜☜뻔뻔킹
현재님@graffiti_now [림솔림] 비와 유리와 소년과 소녀가
..에 낑겨 드린 그림입니다 pic.twitter.com/sF50EHwyEK
그리고 현재는 좋아서 죽었다고 한다. 으앙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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