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다. 또봇들은 내 편이었고, 파일럿들은 그녀의 편이었다.
딱히 다툴만한 일도 아니고 그저 일상적인 화제였지만 첫번째의 충돌 이후로 그토록 강경한 태도로 대꾸하던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투정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다.
또봇, 동료들은 나를 이해한다, 그리고 파일럿, 사람이란 존재들은 그녀를 이해한다.
그녀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또다시 느낀다, 비단 몸을 채우고 이루고 있는 성분의 차이 만이 아니라 그 태생과 영혼이 다르다. 그 다름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기에 불합리하다 느껴졌으나-동시에 바꿀 수 없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녀는 나와 다르다.
사람은 로봇과 다르다.
우리의 싸움은 또봇과 파일럿의 다툼의 형태로 크게 번져 있었고 차고 안은 몹시 요란하기만 했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단 차박사님은 결국 해결책을 꺼내들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둘이 잠시 드라이브라도 하면서 대화하고 오면 어떨까?"
상냥한 어조였으나 명백한 사고원인의 추방선언.
본부 밖으로 나온 그녀는 침잠된 어조로 권역 밖으로 가자고 말했다, 대도시를 수호해야 한다고 대항했으나 지금은 근무 시간 외니까 오늘만은 제 말을 듣어달라는 그녀의 말에 침묵으로 수긍한다.
몇 시간이나 이어진 말씨름에-우리는 둘 다 지쳐 있었다.
[Trouble]
2014 6 14
-키스데이를 기념해서
그녀가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위치는 변두리에서도 한참 외곽이었다. 처음에는 평탄했던 길은 조금씩 거칠어져갔고 벌써 출발한지 40분 남짓이 지났지만 목적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도, 나도 아무 말 없이 주행만을 이어간다.
해가 지고 있었다. 어스름해지는 길을 저속으로 이어가는 지루한 주행 속에서 나는 오늘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되짚어 간다.
다 툼의 시작은 제로에게 견인된 한대의 스포츠카였다. 주인이 음주운전을 해서 파손되었다는 흔하지 않은 색상의 분홍색 스포츠카를 지켜보던 오순경은 까르륵, 짧고 맑은 웃음소리를 내고는 말을 꺼냈다. 그것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농담이라는 형태의 말이었을 것이다.
"예쁜 차네, 아가씨 같아라, C도 저런 차 같은 예쁜 또봇이 있다면 좋겠지?"
반달처럼 접힌 눈과 올라간 입매로, 그 말을 하던 그녀의 얼굴이 웃음을 띄고 있는 것을 알았다.
[무슨 뜻인지 확인이 불명하다, 이상!]
그
것은 실패한 농담이었다.
검고 붉은 색의 불쾌한 것이 차체에 끈적하게 뿌려진 듯한 느낌으로, 확연히 바닥으로
치닫는 기분의 저하를 느꼈다. 하지만 곧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은 양 쉽게 이어간 말에는 그 첫번째 말에 받은 충격이 아무런 것도
아니었던 것 마냥-모든 이성적인 회로가 멎는 듯한 순간을 맛보아야 했다.
"그치만, 또봇들은 남자 뿐이니까, 예쁜 여자 또봇이 생긴다면 사랑에 빠질 수도 있잖아?"
[하-?]
"그렇지, 다음 또봇이 생긴다면 여자아이로 해달라고 건의를-"
나
는 마인드코어 전체가 짜증과 분노로 떨리는 연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었다. 그녀는, 선을
넘었고-나는 그녀를 태우고 있는 지금의 순간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급하게 엔진을 멈췄다. 심경을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타이어가 검은 흔적을 남기며 멈춰선다.
"왁! 왜, 왜그래, C?"
[내려라.]
치 익-말 끝에 이어지던 노이즈 같은 소리가 평소보다도 유난히 잡음이 섞여간다.
불쾌하다. 확연하게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내가 왜 화를 내는 것인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 억울하다는 사유로 다른 파일럿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파일럿들 또한 내
기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개한 것은 또봇들과-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두 박사 뿐 이었다.
그 때 쯤에 이 불쾌함의 이름을 찾았었다.
실망, 그 한 단어였더랬다.
"곧 도착이야."
묻지 않았으나 그녀가 먼저 꺼내든 짤막한 말에 회상에서 깨어난다. 평소 보다 한톤 낮은 목소리였다. 검고 작은 날벌레가 전조등과 후미등을 쉴 사이 없이 날아다닌다. 그 즘에 우리가 향하는 곳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목 적지는 호수공원이었다. 어느 대기업이 사들여 펜션 따위를 짓고 관광지로 조성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았으나 공사는 중단되어 결국 폐허와 인공호수 만이 남았다던가, 일전에 어떤 일 따위로 접했지만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한다. 애초에 담당구역밖의 지역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포장이 허술해서 한층 거칠어진 노면을 조금 더 지나자 예상했던 호수에 닿았다. 주변은 고요한 나무들 뿐이었고 고작 두 해전에 만들어진 인공 호수는 해가 진 탓에 어스름한 구름만을 비춰내고 있었다.
그
녀는 내게서 내렸다. 물가이기 때문인지, 주변이 숲이기 때문인지 몇도는 낮아진 호숫가는 쓸쓸한 공기를 하고 있었고, 짤막한
여름제복차림이 조금은 추웠던 것인지 그녀는 소름이 돋는 듯 제 팔을 쓰다듬으며 몸을 떨다가 어두운 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해가 질 때 도착하고 싶었는데. 예전에 왔었을 때는 그 때 쯤이었는데-예뻤거든."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 내게 몸을 기댔다.
오
늘은 보름이었다. 달은 호수 안에 있었고 하늘 위에도 있었으나 구름에 가려져 모조리 어렴풋했다. 로봇의 시야에도 이렇다면야 사람의
시야라면 어떠할까, 나는 그 추정 안에서 또다시-나와 그녀가 보고 있는 풍경이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느끼는 것마저도 다를
것임을 쉽게 짐작해낸다.
"오늘 내가 한 말이 그렇게 싫었어?"
계속 대꾸하지 않고 싶었으나, 이번의 말은 명백하게 대답을 구하는 것이었고-파트너의 말에는 대답을 하는 것의 의무였기에 영 내키지 않는 대답을 짧게 뱉어낸다.
[싫다기 보다는 예의에 어긋난다, 이상!]
그녀는 핏, 하고 웃었다. 비웃음인가 싶어 발끈했으나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난 안심했는데, 그건 나한테도 질투였거든, C"
아주 작은 목소리였으나 인식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무슨 뜻인가?]
설
명을 요구했으나 상세한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시선을 떼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이 완전히 구름에 갇히어 곧
주변이 한층 더 어두워진다. 그녀는 느슨한 걸음으로 걸어 내게서 몇 발자국 멀어졌다가 등을 돌리어 다시 나를 향해섰다. 웃었다.
"C, 잠시 동안만 시각센서 꺼줄 수 있어?"
전까지의 목소리가 어딘가 침울하고 나지막했다면, 지금의 말투는 밝고, 화창했으나 동시에 억지로 만들어낸 것인양 어색하기만 했다.
[그것은 명령인가?]
"아니, 부탁이야."
나는 시야를 차단한다. 곧 시각이 차단된 영향인지 청각과 촉각으로 전해지는 정보의 크기가 배로 늘어난 것을 알았다, 아니, 정보의 크기는 아마도 그대로이겠지만 내 의존도의 차이라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매
미와 날벌레가 우는 소리가 한층 더 요란하게 느껴진다. 이 곳은 대도시와는 달리 변두리는 몹시 조용하며, 동시에 소란하다. 그
속에서 파트너의 숨소리를 가려 들어본다. 약간은 긴장한 듯 거칠었던 숨소리는 천천히 가라앉았고, 곧 아주 느려졌다.
그 녀의 손가락이 본넷에 닿았다. 미지근한 금속 위로 느껴지는 체온은 평소보다는 조금 높은 것이었다. 감기에라도 걸렸나-그러니까 아직 여름제복은 이르다고 말했는데도, 그녀가 듣는다면 분명 잔소리라고 말할 법한 생각을 떠올리며 그 말을 꺼내려던 순간에-그녀의 숨소리가 일순간 멎어진다 싶더니 또키의 접속면에, 아주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닿았다.
분명, 손가락의 체온과는 달랐다.
차체의 전체 면적에 비하여 그 접촉면적은 몹시 작은데도, 그런데 이상하게도-그녀와 닿은 부분부터 시작된 열기가-차체 전체에 퍼져나간다.
과 학이나 이론 따위와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나 방금 전까지만도 들리던 벌레소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스스로 차단한 어둠 속에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파트너의 숨소리와, 온기. 그 어느 때보다 그녀의 존재를 강하게 느낀다. 닿아 있다. 닿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닿지 않게 되었다.
"미안."
이해하기 어려운 말만을 남기고, 닿아있던 손바닥과 손가락이 아쉬움을 느끼며 멀어진다.
시각센서를 끄라는 것은 명령이 아닌 부탁이라고 했었기에-나는 그녀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센서를 켠다. 설명하기에는 막연한 이유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자세였고, 어둠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야만 한다-그렇게 느꼈으나 별다른 말도 찾지 못했다. 어느 사이엔가 시작된 벌레 소리가 다시 주변을 울린다.
시
간은 완연해진 여름밤, 어두운 하늘을 등지고 그녀가 일어선다. 붉여진 그녀의 얼굴을 인식하는 동시에 벌레 소리가 다시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등 뒤에서 구름에 가려지지 않은 별들이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빛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랬다.
사랑스러웠다-별들이, 그리고 다른 어떤 것이.
"돌아가자."
돌아가는 길 또한 우리의 대화는 많지 않았으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확연했다.
나는 오늘 우리가 다투었던 일에 대해서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 보다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몹시 시급한 정보의 규정이 필요했던 탓이다.
-
로봇도 연애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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