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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s-1,520]
2014 10 23
독고오공 7대 죄악 합작 - 테마 ‘나태’ written by. now
그저 시간을 보낸다. 나른한 가운데 바람이 흘러 지루한 보랏빛으로 멎었다. 손 안에 쥐어진 액정 안에서 숫자를 읽어낸다. 1,520, 내가 직접 헤아릴 리는 없으니 기계가 자동으로 헤아려 일자를 기록한 숫자는 네 자리를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 수를 소리 내어 말하며 차례로 의미를 인식하는 그 사이에 1분이 또 지났다. 분을 가리키는 시간이 하나 더 더해질 때까지 숨을 참았다가 뱉어보았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도 훨씬 길었다. 참았던 숨이 희뿌옇게 흩어지는 사이로 온달의 웃는 얼굴이 스친다.
“저 배가 우리가 탈 배인 것 같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켜 포말과 함께 다가오는 하얀 배를 바라본다. 흔한 돛도 내리지 않고 움직이는 배는 그저 이동수단일 뿐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흰색 페인트마저도 지루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과자를 던지자 갈매기가 와르르 몰려들어 배 위를 몰아 다녔다. 온달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중에 목도리가 흐트러진 것을 보고 고쳐 매주고는 차가운 냉기가 도는 금속 벽에 몸을 붙였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것이 보이지만 다 같은 새 사진에 의미가 있을까 싶다.
“형들 보고 싶다. 많이 변했을까?”
“사진 봤잖아.”
“그래도~실제로 보는 건 다르지!! 오랜만에 돌아가는 대도시니까!!”
돌아간다. 라는 단어에서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도시는 우리가 머물던 곳임에는 분명했지만 우리는 떠나온 섬에 머물며, 잠시간의 체류를 끝나면 섬으로 다시 돌아갈 터였으니 그 단어는 엄밀히 말하면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 또한 귀찮게만 느껴져 한숨을 내쉴 때 쯤, 온달이 사진을 찍어 달라며 선미의 난간에서 V를 그려 보였다.
찰칵, 사진을 그의 휴대전화로 송신한 후에 돌아온 화면은 다시 숫자 1,520, 암산하여 4년하고 60일, 환산하여 남겨진 두 달, 달라진 것은 키가 커진 것, 나이를 네 번 먹은 것, 다니는 학교에서 진급한 것, 계절은 바뀌어 다시 겨울이 된 것-그리고, 모든 일에 무던해진 것.
나이를 먹는 것이 모든 일에 신선하지 않게 되는 것이란 건 들어 알았지만 아직 중학생 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분명, 이전의 날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던 것도 같다. 열정이나 청춘 같은 그런- 색으로 표현하자면 붉은 색일 화려한 것들이.
찰칵, 갈매기를 찍어보았다. 확인한 화면이 흔들렸기에 저장하지 않는다.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은 짧았지만 버스를 탄 후에 도착지까지 예상되는 시간은 제법 많이 걸린다고 했다. 버스 시간표를 보며 도착 시간을 헤아리던 온달의 손가락이 휴대전화 위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싶더니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뒤돌아섰다.
“다들 터미널로 마중 나온다는데?”
화면을 들이미는 온달의 얼굴이 평소보다도 상기되어 있다. 내 말수가 부쩍 줄어든 이후로 그는 보다 더 밝고 아이처럼 행동하고는 했다. 그 것이 기특해 가만히 웃어주자 그가 꺄르륵 웃었다.
다들이라, 표로 위치를 확인한 버스의 좌석에 온달을 앉히고 안쪽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채우며 떠오르는 얼굴 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았다. 사진은 많이도 받아서 익히 알고 있는 옛 벗들의 얼굴과 이름들, 옛 추억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스쳐가는 어떤 한 얼굴이 스쳐가던 순간에 따끔, 하게 가슴이 아팠다. 예전에는 익숙하게 느끼던 통증이었는데 아직 조금 남았던가.
그는 친구라고 말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흔한 말로 아는 사람이나, 지인이라는 모호한 부류에 속하는 이였을 뿐.
그런데도 액정의 수가 한 자리일 때는 가끔 그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두 자리 수가 되었을 때는 그가 아주 많이 보고 싶었다.
세 자리가 되었을 때는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가슴이 따끔 거렸다.
네 자리수가 되었을 때는 비로소 그를 잊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형-자?”
온달의 물음에 가늘게 떠있던 눈을 가만히 감았다.
아침부터 움직이느라 피곤하던 참이라 잠이 든 척을 하는 것은 몹시 쉬웠다. 곧 온달이 바스락거리며 휴대전화를 만지는 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멎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잠을 청했다.
“형! 도착했어!”
흔드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몇 톤이나 올라간 온달이 커다란 가방을 끌어내리느라 요란이기에 가방을 옮겨 들었다. 온달이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누군가를 발견했는지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고-바라본 그 곳에는 익숙하던 얼굴들이 보였다.
“오공아!”
“오느라 고생했지?”
환영하며 부르는 목소리들이 겹쳐지는 사이에 시선이 저절로 누군가를 찾았다. 찾는 이도 모르고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문득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세상이 깨졌다.
안온하며 나른하던 시간이 갑자기 고장이라도 난 듯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빨라지는 것은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내 심장이 뛰고 있었다. 터질 것 같이 진동하며 빨라지는 약동에 나는 깨달았다.
그래, 아, 그랬구나. 하고 납득했다.
1,520이란 수는 이 도시를 떠나온 기간이 아니었다. 이토록 긴 헤아림의 끝에 겨우 알아낸 것들은 당신이 없는 날들의 무의미함과, 당신이 내게 가지는 유의미함, 그래, 이 날들은 당신을 이 장소에 두고 온 날들의 수였다.
계단을 밟는 걸음에서 그 것들을 차례로 깨달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아스팔트에 운동화가 닿는다. 이제는 일상이라 부르던 그 길고 지루한 시간들이 깨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나는 당신을 향해 웃었다.
“돌아왔어요, 리모아저씨.”
돌아왔다, 당신에게로.
이제 깨닫게 된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괜찮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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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오공 중심 7대대죄 오공리모로 참가했습니다. 글로 합작 참가는 오랜만인지 처음인지 신기했어요.^▽^ 재미있는 합작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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