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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가 하나, 둘, 셋. 그리고 다시 하나.
"뭐하고 있어? 권셈?"
"...아무것도."
물음표를 세고 있었어, 라고는 답하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집어삼키는 어떤 질문, 그 질문들.
"답답하네."
아, 질식해버릴 것 같은 순간들. 모든 시간들에 질문들이 섞이며, 쏟아져 내린다. 숨이 막힐 것 같다. 이미 한참 전에 막혀있는 것 같다. 더이상 참지 못하는 시간이 곧 올 것 같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주어 없음]
2015 12 28
For 손님
"차 한잔 줄까?"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욕실 밖으로 나왔다. 아빠에게 괜찮다고 대답하며 욕실 앞에서 휴대전화를 주웠다. 부재중 전화, 1통. 멍하니 액정을 들여다보다가 한참 뒤에야 수건이 발치에 떨어져 있는 걸 알고 느리게 주웠다.
주방에서 기분좋게 흥얼거리는 아빠의 허밍이 들려오고 있다. 낮은 허밍, 끊어지지 않은 목소리에서 이상을 들키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고 수건을 빨래통에 던져 넣고는 걸음을 옮긴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옷에 떨어진다. 젖어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는 생각도 들어서 방으로 그대로 돌아간다. 물방울이 따라서 복도에 방울지며 떨어진다. 해결하지 못한 것들은 자취를 남기는 법이다. 모든 것이 자꾸만, 어떤 방향으로 귀결된다. 모아져서 그 곳으로 향한다.
방문을 열자마자 문을 등지고 주저 앉아서 통화 버튼을 누른다. 신호음, 세번 만에 받는 목소리. 약간 잠겨있는.
[여보세요.]
말문이 멎어서 가만히 있었다. 자고 있었어?라고 말하면 편하게 들릴까,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먼저 쏟아지는 말들.
[아 너무 늦어서 내일 다시 걸려고 했는데, 깨운 건 아니지?]
"아냐. 그냥 씻고 있었어, 안 잤어."
어쩐지 말소리가 평소보다 빠른 것 같다. 휴대폰 너머의 네가 아니라,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게, 내 목소리가-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문제다. 방금 대답, 조금 이상하지 않았나, 억양이라던가 속도 같은 게.
[그렇다면 다행이고.]
웃음기가 섞여있는 말투, 전화 너머에서 들리는 하나의 목소리는 조금 즐거운 것 같이 들렸다.
"무슨-일이야?"
[우와, 바로 용건이야?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 그런 질문을 던지면 돌아올 대답이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어설픈 웃음으로 대답한다. 휴대폰은 정말 편하다고 생각한다. 목소리에 웃음소리를 섞는 것은 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보다 배의 배는 쉽다. 그런 법이다.
[별다른 건 아닌데.]
다시 침묵, 때때로 말이 이어지지 않는 시간은 말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보다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가 내게 알려주었다. 사실은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지만 그것마저 네가 내게 주었다면, 기꺼이, 거절하지 못할만큼이나.
[네가 빌려준 노트에 질문이 있더라고.]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여상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머릿 속이 팽팽 돌아간다. 질문? 노트? 무슨? 어떤? 짐작이 가지 않는 게 아니라 짐작이 너무 많이 들어서, 최근의 '내'가 정말 이상했다는 건 알고 있다. 그 차두리마저 내게 너 요즘 나사 빠진 것 같다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어떤 등신같은 짓을 했을까, 과거의 나는-
"...질문?"
[응, 주어는 없는데-아니다. 됐어. 잘자.]
"뭐? 차하나!! 차하나!!!"
어이 없을 정도로, 전화는 왜 걸었냐 싶을 정도로 짧게 말하더니만, 젠장-끊어버렸다. 차하나, 젠장, 차하나-사람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쾅! 하고 손에서 날아간 휴대폰은 벽에 부딪치더니 매트리스 위에 떨어졌다. 이번에도 망가트리면 아빠가 정신교육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분노조절장애라도 생긴 것 같다. 모든 것이-엉망이다.
주저앉아 있는 동안 지잉, 하는 소리가 울렸다. 진동. 다시 한 번-또 진동. 배터리가 분리되지 않은 모양이지, 아직도 물기를 뚝뚝 떨어트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긴 한숨을 삼키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 카톡도 아니고 왜 문자인가 싶다. 글자는 단 두 글자였다. 짜잔. 뭐가 짜잔이니. 차하나.
문자를 누른다. 사진이었다. 사진 두장, 노트를 찍은.
첫번째 사진은, 하나의 글씨, 단정하고 동그란 글씨체로 초록색 볼펜으로 쓰여진 두 줄짜리 문장.
[물어봐줘서 고마워, 내가 대상이라면 맞다고 생각해.]
두번째 사진은, 내 글씨-언제 썼는지도 모르는, 휘갈겨진 말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내게 사랑이었을까?] 그 문장 위로 반 정도 잘려져 보이는-네 이름. 썼다가 볼펜으로 휘어갈겨서 없애버린, 그러나 자취가 연하게 남은 네 이름, 지우려는 흔적이 남겨진 주어. 빌어먹을 차하나, 멍청한 권세모, 노트 내용도 확인 안하고 빌려준 병신 새끼.
아. 젠장. 젠장, 차하나-
전화가 온다. 전화가 다시 걸려온다. 지금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지만 내가 네 전화를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숨소리만이 들린다. 내 숨소리도 들리고 있을까. 차하나의 웃음소리.
[문자, 봤어?]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 내 질문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대답할 차례인데도. 숨이 막혀서 눈을 감았다.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적신다. 온통 뜨겁게 달궈진 얼굴에 축축하게 닿아오는 물기는 어쩌면 눈물 같기도 했다. 눈 앞에는 네가 없는데 목소리 만으로 네가 차오르는 것 같다. 이미 차있었다. 숨을 참는데도 네 향기가 맴돈다. 목소리가 귓가에 가득찬다.
[나지? 권세모?]
답정너 같은 새끼. 차하나, 젠장. 차하나-이런 너를, 내가 어떻게.
[그래서, 대답은?]
일어섰다. 멍청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있기에는 숨이 지나치게 막혔다. 시간이 왔다. 이미 한참전에 터졌어야 하는 말들이, 질문들이. 속에서 치밀어 한 단어로 변했다.
"갈게."
전화를 끊었다. 점퍼를 주워 들었다. 지금, 너를, 너에게 할 만한 질문이 너무 많아, 그 모든 질문을 전화로는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너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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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의 연성이니까, 어색해도 봐주세요. 친애하는 손님(@tbtbtb123456)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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