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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종류의 의도와 방향성에 대해서]
2016 1 23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어렸을 때 순정만화를 몇 권 읽었다.
흔히, 남자와 여자가 나와서 오해도 하고 갈등도 하고 결국은 사랑을 하는 그런 시시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 이야기가 좋았다. 흔한 사랑이야기, 흔한 것들. 촌스러운 취향인 건 부정할 수 없으니. 나 또한 촌스러운 사람이라고 칭해도 좋을 것이다. 어디 촌스럽다 뿐일까. 고루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재미 없다는 말도.
어쩌면 그런 말 속에서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운명이 내게 찾아오지 않을까. 첫 눈에 반하는 운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운명이 언젠가는 내게 말을 걸지 않을까.
이게 사랑이란다. 너는 사랑에 걸렸어. 하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비웃을 만큼 멍청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란 것 쯤은 알았다. 하지만-이 망가지고 소모되어가는 세상에서 꿈꾸지도 못하는 것은 잔인하다. 이런 생각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순정만화책 몇 권 때문에 잠시 따돌림을 당한 적도 있다. 각박한 시대다.
아, 왜 뜬금없이 순정만화에 대한 이야기였나 하면-오늘 순정만화를 몇 권 얻었기 때문이다. B시가 복구되면서 원래 있던 장소로 다시 이전한다며, 얼마 전까지 Z시 이곳에서 장사를 하던 만화 노점에서 답례의 표시라며 몇 권 가져가라기에 너무 많이는 그런가 싶어 서너권 얻었다. 거절하려고는 했지만 호의를 거절하는 건, 역시 호의를 받는 것보다 갑절로 버거운 일이다.
오늘은 몹시 달이 밝다. 등 뒤에는 짐이 있는데도 페달을 밟는 것이 쉽고,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서-즐겨 듣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며 청량한 공기를 갈라 나간다. 오늘의 마지막 약속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여-오늘은 뭐야."
눈 앞에서 맥 없는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는 그는 대머리 망토, 이름은 사이타마라고 한다. 예전에는 C급 히어로 동지였지만 지금은 B급이다. 예전에 중학교 동급생이라는 사실을 며칠 전에 알고-자취하고 있다는 것도 들어서 어찌어찌하다보니 친구랄까 이웃이랄까, 뭐 그렇게 지내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뭐 돈독한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친해지고 싶다고 일방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기대하시게나-짠!"
"오오-우동-"
자전거에 실어온 박스를 열어서 인스턴트 우동을 보이자 사이타마가 역시나 감흥은 있는건지 조금 의심되는 얼굴로 박수를 치며 호응해 왔다. 선물은 아니고, 트레이드라고 할까 무역이라고 할까, 자취라는 형편에서 대량 구매라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이었는데 괜찮은 제품이 나오고 세일까지 겹치면 일단 합의 없이 사서 반으로 나누기로 한 것이다.
그는 우동을 가져가더니 곧 반으로 자른 메론을 가지고 나왔다. 사치품이다.
"이거 네 헬맷 닮았네."
"...내 헬맷은 메론색이 아니라 수박색일세."
"수...박색. 그렇구나."
이상하다. 잘 대응한 것 같은데 묘하게 스크래치가 마음에 새겨진 기분이다. 메론을 바구니에 넣다가, 도착하기 직전의 소재에 다시 생각이 닿았다. 그 만화는 공짜인 걸 감안하지 않더라도 재미있었다.
"자네 만화 좋아하나."
"만화-뭐 나쁘지 않지."
"순정만화라던가."
"....그런 취향?"
"아니, 뭐랄까!! 얻, 공짜로-"
"읽긴 읽어. 일일히 반응하기는. 너도 성가시다니까."
여상한 말투로 건넨 것 치고는 사실 용기를 내서 건넸던 말이었다. 만화 같은 걸로 이미 어릴 적 학교에서 소란을 떨었었기에 겨우 만들어진 친구 비슷한 관계를 다시 같은 소재로 망치게 된다면 그 때는 영영 복구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을련지도 몰랐다. 남자가 겨우 무슨 이런 사소한 일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히어로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나는 시민들처럼 똑같이 상처입고, 똑같이 힘들어하곤 한다. 자주 잊혀지는 부분이다.
"그래도 좋은 내용이라,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헤에, 그래."
좋은 만화였다. 흔했지만 좋은 이야기, 읽고나면 마음 속 어딘가가 따뜻해지는 이야기. 반하고 고백하는 장면들조차 뻔하기 뻔했다. 그 유명한 나츠메 소세키의 이야기. 그 만화 속에서도 달이 커다랗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오늘 처럼-
문득 숨이 멎었다.
사이타마가 달을 등지고 서 있었다. 폐허가 된 Z시의 무인가는 가리는 것 없이 보름의 달을 비춘다. 하필 보름이었다. 달은 서늘하고 파랗고 하얗게 빛나고 있다. 그 앞에 그가 서 있었다. 하필 그 흔한 구도로, 흔한 표정으로-흔하지 않은 숨막힘으로. 하얀 티셔츠는 어둑함 보다도 푸르스름한 달에 물들어 있다. 마치 네가 빛나는 것 같아, 일순간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너 뭘 보고-아."
그가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피식 웃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의 달은 예쁘구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의도가, '그런 종류'의 의도가, '그런 종류의 의도'가 아닌 건 분명 알았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웃으며 말했기 때문에, 그가 하필 오늘 읽었던 만화 속의 그 장면처럼 그렇게 웃으며 말했기 때문에. 부정하기에도 의미 늦게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이만 가보겠네."
"아-반찬 좀 더 나눠줄게."
"아니야, 급한 일이 생각나서."
운명이 아닐까. 하고. 미쳤지, 미친 게 분명한데도. 그런데도 그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서-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니까, 감당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장이 뛰어서.
"내일 또 보자-"
나는 인사조차 목례로 생략하고는, 달을 보며 페달을 밟았다. 멈춰라. 멈춰라, 생각.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에게-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말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사실은-차라리 그는 알아듣지 못했을 테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라 조금 아쉽기도 하다가-그 아쉬움에 죄책감을 느끼고-그렇게 계속 생각하고 부정하다가 올려다 본 달은, 푸르고 크고-숨이 멎도록 밝아서 문득 그 자리에 멈춰섰다.
운명처럼,
오늘은 달이 아름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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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없는 김A군(@tjdud8185)님, 달, 짝사랑 소재로 조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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