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펀맨2016. 3. 15. 00:16

 인류는 과거에도 멍청했고 현재도 멍청하며 앞으로도 멍청할 것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멍청한 그들은 학습이라고는 도저히 모르는 것 같다. 소년은 와작 하고, 사탕하나를 이로 깨어 부수며 불편함을 숨기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소년의 눈 앞, 정장 위로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비서가 건넨 것은 제법 묵직해 보이는 큼지막한 분홍색 쇼핑백이었다. 쇼핑백에 그득히 담긴 것들은 희고 바삭거리는 종이에 감싸인 분홍색과 하얀색 줄무늬 사탕들, 소년은 손가락을 뻗어 사탕 포장재의 바스락거리는 감촉을 느끼다가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걸 내가 가지고 갈 거라고 생각한 거야...?"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하고는 소년의 손에 쇼핑백의 손잡이를 꼭 쥐어 주었다. 찌푸려지는 소년의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용주의 표정변화를 알아차린 건지, 아니면 인식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비서는 정수리를 고스란히 보이며 정중히 인사하는 것으로 묵비권을 행사했다.



 "아...이 사무치게 멍청한 인류..."



 언젠가 몇 번은 했던 듯한 말을 한 번 더 중얼거리는 소년의 이름은 동제-기념일을 납득하지 못하는, S급 5위의 히어로. 싫어하는 것은 멍청한 인류, 그것에 더해 최근 더 싫어지고 있는 것은 그 인류에 속해있는 자기 자신. 분명히 그 똑똑한 머리로 몇 년 뒤에는 이불을 뻥뻥 차며 지금의 날들과 생각을 후회할테지만, 그 사실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하는 금년 10세의 어린 소년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for 화이트데이



 2016 03 14





 기대한 쪽과 전혀 기대하지 않은 쪽, 어느 쪽이 행위에 대한 파급효과가 더 클까? 멀리 어려운 예를 들지 않아도 유명하고 보편적인 예시를 든다면, 그래/ 퉁퉁이 효과라는 게 있다. 멍청한 현생인류를 대변하는 멍청한 꼬마와 근본모를 파란 로봇이 나오는 도라삐-몽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퉁퉁이는 성격도 더럽고 언제나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못된 녀석이지만, 그렇기에 기대치가 터무니 없이 낮아서 어쩌다 한 번 친구를 챙기거나 여동생을 챙기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것 만으로 기대 이상으로 높게 평가받곤 한다.


 어째서 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냐고 한다면 오늘을 기점으로 동제가 인류에게 가지고 있던 바닥을 기어가던 기대치가 한 층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세상에..."


 "동제군...!!"



 동제는 정말, 별로-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히어로라는 직업에서 의무감에 유지하던 팬서비스 미소도 오늘만은 피곤한 탓에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그가 학교 내에서 오전 내에 하고 있던 행동이라고 해야 늘상처럼 창밖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거나 했을 뿐이다. 어제와 다른 일이라고는 기껏 해봐야 등교를 하면서 들고온 제 몸통만한 사탕 쇼핑백 두개를 교실 뒤편에 내려놓고 한숨을 내쉰 것-그리고 몇 마디의 대화 정도일까.



 "동제군-부끄러워 하나봐!! 귀여워!!"



 단지 그랬을 뿐인데. 소녀들은 감격하고, 정말 감동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탕을 한두개씩 들고 가고는 했다. 정말...인류란, 소녀란, 사랑이란 건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납득하기도 싫다.


 

 "이거 가져가도 될까?"


 "그럼, 얼마든지."



 이따금 말을 걸어오는 소녀에게 몇 번 지었는지 모를 의례상의 웃음을 가장해 만들어내다가 볼 안쪽이 아리게 떨리는 것을 깨알았다. 아아-이런 세상, 정말이지 빨리 멸망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게 지구에도 우주에도-무엇보다 내 정신 건강에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동제의 급우인 소년 마츠미 카제야군(10세, 소학생, 단역)은 우량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한다며 사탕을 가지고 간 소년소녀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 모양이다. 동제와 눈이 마주칠 때의 소년 마츠미군의 표정은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보다도 꼴사납게 꽃을 흩뿌리며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표정이 되기 때문에 괴로워졌다. 물론 사랑 따위는 아니고 우량 고용주에 대한 존경에 가까운 감정일지라도 지켜보는 게 괴로운 건 동일하기 때문에, 동제는 진지하게 마츠미군의 내년 고용에 대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검토를 시작했다. 오늘 돕는다고 자발적으로 나선 행동이 마냥 서비스인줄만 알았더니 지난 쉬는 시간에 작성한 리스트를 찍어 메일을 보내고는 '비서님'이라는 상대와 통화를 하는 걸 보면 2중계약인 것도 같고. 아무튼지 저 녀석은 어디에 데려다 놓는다고 해도 잘 살아남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고 있다.


 아침에 가져온 사탕은 점심시간이 되기전, 진작에 배포가 끝났다-싶었지만 곧 쉬는시간에 사라졌던 마츠미가 어디선가 쇼핑백을 하나 더 가져다 풀었다. 그 즘에는 동제도 할 말을 잊었다. 마츠미의 서랍 안에는 소학생이 쓰기에는 지나치게 비싸지만-동제에게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게임기가 얌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뭐, 조금 부럽네...'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모두 멍청하다고 그렇게나 생각하는 주제에. 마츠미군도 소녀들도 소년들도-모두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돈의 노예냐며 마츠미를 비웃는 아이들도 있지만 동제는 마츠미가 조금 부러웠다. 자신의 일이란 것을 지켜내며 정당하게 계약을 하고 그 댓가로 가지고 싶은 것을 장만하는 그 행동과 웃는 얼굴이. 그렇다고 멍청해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설명할 수 없음에도 이따금-


 지친다.


 적당한 단어를 찾기 어렵기에 대체한 단어는 느끼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를 지 모른다. 하지만 동제의 지친 뇌는 잠시 생각을 미뤄두었다. 시끄러운 교실안, 동제는 그 어느 날보다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월감이랑은 조금 다른 어쩌면 쓸쓸하다는 말에 조금 더 가까울-평소의 자신이라면 가지지 않을 감정들.


 그렇기에 동제는 더더욱 기념일을 좋아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아직은, 정확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지이이이잉-


 그 때 동제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스팸메일인가 싶어 열어본 메일을 확인한 동제의 입매가 조금 굳어졌다. 어째서...? 하고 고개를 기울이던 동제는 시계를 확인했다. 오늘은 방과후의 특별학습이 있었다. 사실 그 쪽에는 흥미가 없어 평소처럼 먼저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남아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지난 번 그 시간에 볼 수 있겠나?]



 지나치게 짧은 그 메일의 발신인은 무면허라이더. 어떻게 제 메일 주소를 알았을까하는 것을 뒤늦게야 떠올릴 정도로 그 말이 동제에게 어떤 감흥을 준 것은 분명했다. 시계를 바라보던 동제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또 다시 시계의 분침을 확인하다가 한 번 더 울린 메일에서 비서가 무면허라이더의 요청으로 메일주소를 알려주었다는 수신을 받았다. 개인정보의 관리를 이렇게 허술하게 해도 되는 건가 싶어 투덜거리다가도 결국 만들어진 것은 한숨이었다.


 메일의 발신인은 무면허라이더, 그가 등록한 닉네임의 것이 아니라 동제가 미리 기입해둔 주소록에서 저장되어 표기된 이름이었다. 동제는 그의 메일주소를 일찍부터 알았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한 달 전-2월 14일. 그 날 밤에, 한 번도 메일을 주고 받은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메일을 보낼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동제는 그 날 밤 메일주소를 찾아 기록했다. 그 때 들었던 비생산적인 생각들이 어떤 감정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날이 풀려 있었다. 벚꽃이 몽우리지는 나무를 바라보던 동제는 무심코, 오늘 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따위를 생각하다가 그 생각이 얼마나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지를 알고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렸다.


 동제의 기준으로는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표정이었다.



 -




 "아, 이런 곳으로 불러내서 미안하네."


 "그러게, 왜 이런 곳이야. 아저씨."



 무면허라이더, 그는 자전거를 곁에 세운 상태로 골목 안쪽에 서 있었다. 학교 근처의 골목, 그림자가 진 누추한 골목은 그저 거리에서 몇 발자국 들어갔을 뿐인데도 전혀 다른 질감을 주었다. 거리는 온통 화이트데이-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데 이 골목은 몹시 조용해서 그런 것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 같다. 옅게 담배냄새가 전해져 오지만 아마 그가 피운 것은 아닐 것이다.


 무면허라이더는 자전거바구니에서 하얀 리본이 묶인 사각형의 상자를 하나 꺼냈다. 어둑한 골목 안에 있기에 더더욱 괴리감이 드는 은색 상자를 어딘가 현실감없는 느낌으로 받아 들었다. 가볍고, 달각거리는 상자는 무면허라이더의 손에 있을 때보다 동제의 손안에서 더 커다랗게 보였다. 작은 손가락, 어쩐지 지금은 조금 짜증이 나는 제 손가락.



 "그 때 말한 답례일세."


 "대화도 없이 바로 넘기다니. 아저씨는 역시 예의가 부족해."


 "그런가. 확실히 예의에 능숙한 편은 아니지."


 

 자신보다 열다섯살이나 어린 녀석이 반말로 지껄이는 말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연한 웃음을 지우지 않는다. 남자는 히어로니까, 그렇다면 저 웃음도 저와 같은, 아이돌처럼 보여주는 형식의 웃음일까? 그렇다면 싫을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틀었다. 남의 웃음에 싫다 좋다 따위를 판단할 이유가 있을까. 애초에 그 정도로 친밀한 사이도, 오래 본 사이도 아니건만-예의를 모르는 게 확연한 것이 언제나 그는 지나칠 정도로 곧게 눈을 마주쳐 와서 가끔 얼굴을 마주하기 괴로울 때가 있다.



 "행복한 화이트데이 보내게. 동제군."



 소박하게 웃는 사람이었다. 무해함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은 얼굴로 무방비하게, 이토록 연약한 존재이면서 어떻게 제 앞에서 저렇게 웃을 수 있는지. 울컥이는 마음을 눌러 삼키고는 동제는 짧게 대답했다.



 "아저씨도, 해피 화이트데이."



 이후의 말은 없었다. 한참동안 그렇게 서 있던 둘은 어느 순간 뒤돌아섰다. 무면허라이더는 자전거를 탔고 동제는 상자를 꼭 쥔 상태로 걸었다. 단 두 걸음을 걷다가 동제가 뒤돌아섰다. 무면허라이더가 패달을 밟는다. 골목을 빠져나가, 식간에 빛으로 향하는 뒷모습은, 동제보다 한참이나 크게 보였다.


 분명, 시간이 지난다면 쉽게 따라잡겠지.


 몇 년 정도라면 저 몸보다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무면허라이더의 체구는 히어로나 일반인에 비한다고 해도 크지는 않은 축이었고 동제는 반면에 아이들보다 발육도, 영양상태도 좋았다. 그러니까 고작 5~6년이면 아마도 저 정도의 체구가 되고, 쉽게 그 키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지. 동제는 그게 조금 분했다. 왜 당장 크지 않은지. 무면허라이더보다 크지 않은지-왜 자신은 어른이 아닌지. 그런 것들이-이해할 수 없는데도 조금 분해서.


 뒤쳐진 느낌이라서.



 그런데도 무면허라이더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마도 상냥한 그라면 동제를 위로하려고 했을 것이다.


 동제는, 어떤 감흥으로 조금 울었다.




 -




 "내 울음 돌려내..."


 

 고심 끝에 풀어본 선물상자안에서는 놀랍게도 어린이용 칫솔세트가 들어있었다. 하긴 무면허라이더가 그럼 그렇지, 이 멍청하고 답답하고 고지식하고 가난한 인간 같으니. 카드도 아니고 동봉한 메모지에는 동제보다도 삐뚤거리는 글씨로 사탕에 이가 썩는 걸 유의하라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 쓰여 있어서 동제는 메모를 한순간에 구겼다.


 감동했는데!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두근거렸는데!!


 짜증을 섞어 베개를 내려치던 동제는 문득 숨을 멈췄다. 그렇구나, 기대했구나. 하고-내내 무면허라이더를 만나는 시간을 헤아려 남은 시간을 재어 가며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제가 무언가 기대하고 있었더라고, 지금의 짜증은 그 기대하는 것에 대한 반증이라고. 소년의 것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똑똑한 머리는 단서를 잡는 순간 그가 놓쳤던 감정과 말들을 순식간에 엮어서 그가 유추하지 못했던 하나의 사실로 식간에 형체를 갖추었다.



 "말도 안돼."



 동제는 흔들리는 눈으로 거울을 향했다.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가 비친다. 붉어진 얼굴로, 짜증났음에도 버리지 못하는 선물을 꾹 손에 쥐고 망가지지 않게 베개 따위에 내려치고 있는 어린아이가.



 "거짓말."



 그런 녀석이면 안되었다. 이런 감정이면 안되었다. 이런 감정으로 그런 녀석을 대입하는 것 자체가 납득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것 이상으로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다.



 "말도 안돼."



 동제는 무너지듯 몸을 웅크렸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흐려지는 목소리로 부정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한참이나, 그 후로도 한참이나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 순간 떠올렸던 것은 2월의 만남에서 저를 안아오던 그의 향이었다. 희미한 담배향-골목에서도 맡았던, 그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절했던 그 향은 분명 지난 기억 속에서도 존재했다.


 요즘 세상에 흡연이라니, C급 주제에, 못생긴 주제에, 키도 작고 힘도 하나도 없는 주제에. 제 주제에-그래도, 딱딱한 싸구려 갑옷의 감촉과 싸구려 옷으로 감싸인 단단한 팔은 그럼에도 따뜻했는데, 어쩌면 그 따뜻함 때문이었을까. 그랬기 때문일까.


 수많은 이유들을 찾다가 동제는 까닭을 찾는 것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유를 찾는 과정만으로 동제는 조금 더, 조금 더 그를-






 -


 해피 화이트데이! 조금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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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재(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