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세모] TRIPLE C
[TRIPLE C]
2014 01 02
동림기반, 오공+세모 우정이벤트
"어? 세모형이다!"
온달은 그렇게 큰 소리로 소리치고는 도도도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그것을 조금은 느릿히 지켜볼 뿐 걸음을 빨리하지는 않았다. 잘못 본 거겠지, 세모는 둘이서 합동연습을 하던 시기를 제외하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특히나 변두리로 이사를 한 이후로는 한 번도-
"...왠일이야?"
녀석이 맞았다. 온달이 세모의 팔에 매달리자 그는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가벽에 기대던 몸을 일으켜 말없이 인사해온다.
"형아! 놀러 온 거야?"
딱히 대답을 이어가지 못하는 그의 발치에 빨간 캐리어가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뭐, 일단- 들어가자."
캐리어의 바퀴 구르는 소리와 온달의 재잘거리는 목소리 외로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집으로 향했다.
음료수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도 세모는 곧은 자세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벽을 향한 시선은 그 벽을 지켜본다기보다는 어딘가 먼 느낌을 준다. 작게 인기척을 내고 주스를 건네자 그제야 이쪽을 보고는 고맙다고 작게 인사하고 받아든다.
"아버진 출장이라 주말쯤 오실 거야, 자고 갈 거지?"
"응, 고마워."
"별것도 아닌 걸, 솔직히 조금 기쁘기도 하고."
"...?"
세모의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오늘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짓는 그나마 의미를 보이는 표정에 어쩐지 안도한 느낌이 되어 웃어버렸다.
"곤란한 일이 생기면 넌 왠지 하나를 먼저 찾을 것 같았거든."
"그랬나?"
"그랬어."
"그렇구나."
세모는 어쩐지 묘하게 기뻐 보이는 얼굴을 하고는 주스를 한 모금 마신다. 나는 그 표정에 되려 상처를 받아 굳이 삼켜두었던 '중요한 화제'를 꺼냈다.
"이건 대답 안 해도 되는데,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뭔데?"
"너 여기 온 거-아저씨들의 [정식 선언] 때문이야?"
세모는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지 못하고 내뱉는다.
도운아저씨와 리모아저씨가 '정식'으로 교재를 선언한 것은 어제저녁, 공공연히 여겨지던 것이기도 했고 밤에 전화를 걸어와 소식을 전하던 하나는 이제야 진짜 가족이 되는 것이라며 정말 기쁜 목소리였다. 나로서는 글쎄 어떨까?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약간은 한 발짝 떨어진 제삼자의 이야기인 것이 사실이라 그저 그렇구나. 잘됐구나. 그런 맞장구만 치고 끊었을 뿐이다.
하나의 이야기에서 세모의 입장에 대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세모가 집을 나와 이곳까지 올 정도의 심각한 사건이라면 어제일 뿐이니 사실 묻지 않아도 알만한 이야기였다. 굳이 물었던 것은-약간의 질투와 사소한 변덕 따위다.
"세모야, 저녁 카레 괜찮아?"
"어?"
나는 의젓한 척 어른스러운 태도로 마치 그를 포용이라도 할 것처럼 상냥한 웃음을 지어낸다.
"응, 음식 거의 안 가려."
"그럴 것 같았어."
세모의 대답에 살짝 지어지는 쓴웃음, 세모는 음식을 안 가리는 걸까 못 가리는 걸까 생각해보다가 조금 뒤에 내려오라는 말을 건네고 방을 떠난다. 일그러진 세모의 표정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 악어같은 감정이다.
다행히 모두가 두 그릇씩 비울 정도로 카레는 맛있었다. 세모의 방문에 흥분한 것인지 열이 약간 오른 온달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침대에 눕히고 나오자 세모가 달그락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흠, 아직 눈치채지 못한 건가.
"나 잠깐 볼일 있어서 나갔다 올게."
"응, 다녀와."
나는 현관을 열고 나가 폐차장의 문을 활짝 열었다.
자, 그럼 이제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뭐, 너희는 그렇다 치고."
후다닥 뒤늦게 달려가 전봇대의 뒤로 숨는 하나와 주차된 차 뒤로 숨는 두리.
"여기는 뭐 부록이니까 넘어가고."
<부록이라니!>
<조용히 하는 게 좋음, 잠복 중임>
흥분한 Y를 다독이는 X의 뒤편으로 보이는 도운과 리모 까지는, 그래 가족이니까 다 이해할 수 있는 범주라고 치자.
"그런데 이건 심하다는 생각 안 해요?"
R과 C, 오순경누나, 네옹이형에 박사님 하다못해 쪼로봇까지 와있는 건 심하지 않은가. 저녁에 나타난 순찰차와 소방차 콤보로 이웃집들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창문까지 열고 어수선이 떠들고 있는 모양이 아주 이런 난리법석이 없다.
"다들 돌아가세요."
"네가 뭔데 가라고 마라고-"
성
격 급한 두리가 앞으로 달려 나온다. 지금 그 말은 솔직히 조금 상처였다. 뭐라고 물었나? 그래 나는 뭘까? 가족이란 틀에 들어갈
생각도 없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또봇 파일럿들이라는 칭호 마저도 또봇이 늘어난 지금에는 솔직히 끈이 느슨해졌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참견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제삼자니까 할 수 있는 말도 있어."
단호한 말투에 두리가 한 발자국 멈춰 서고 하나가 그 어깨를 붙잡으며 나를 응시한다. 어쩐지 불안한 시선이었다.
"너희는 받아들인 모양이지만-강요하면 안 되는 일도 있는 거야."
"하지만-"
하나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하자 어느새 이쪽으로 다가온 리모아저씨가 그런 하나를 저지했다. 나는 아저씨를 보며 살짝 웃어 보였다.
"밥은 먹었고 오늘은 여기에서 자고 갈게요. 괜찮죠?"
리
모아저씨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뜻 모를 표정으로 몇 번이나 말을 고르다가 아주 가는 목소리로 부탁한다고만 말했다. 세모의
보호자가 그렇게 나오니 다른 사람들도 걱정된다는 명분으로 버티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형편이라 한둘씩 차를 돌려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도 건네는 몇 마디의 말들에는 애정이 담겨 있었으나 그만큼 시끄러운 것도 사실이라 모두가 돌아갔을 때는 완전히 진이
빠져버렸다.
집으로 돌아오자 현관문에 세모가 서 있었다. 살짝 젖은 소매 끝을 매만지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같이 안으로 들어간다.
"다 돌아갔어?"
"역시 들렸지?"
"그 소란을 못 들으면 바보지."
우리는 방으로 올라가 침대를 옆에 두고 이불을 두 개 나란히 펼쳤다. 작은 방에 빠듯이 펼쳐진 이불 위로 나란히 누워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본다.
유
난히 커다랗게 들리는 시계 소리, 세모가 몸을 뒤척이는 소리-그는 통신을 켰다가 끄기만 반복할 뿐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의 돌아선 등이 통신기의 빛으로 파랗고 희미하게 물들었다가 잦아들기를 반복한다. 입술이 메마르고 목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나, 도운아저씨가 싫은 건 아냐."
한참의 시간이 지나 세모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대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느라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숨을 약간 큰 소리로 내뱉어 듣고 있다고 표시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말은 내게는..."
세모의 목소리에 약간의 물기가 묻어있었다. 다독여야 하나,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세모는 내게 위안을 받을 정도로 약한 녀석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나, 못됐지?"
비로소 대답을 구하는 소리에 나는 두세 번 말을 고른 뒤에 입을 열었다.
"우리 나이엔 그래도 용서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하지만?"
세모는 몸을 돌렸고 나도 몸을 틀어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 속에 보이는 그의 얼굴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져서 어쩐지 기묘한 느낌이 되었다.
"돌아가서는 제대로 얘기해, 대화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되거든."
세모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심각한 얼굴로 되물었다.
"너처럼?"
"응, 나처럼."
우
리는 지나치리만치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응시했다. 1초, 2초, 3초- 그리고, 파하핫,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터져 나온
웃음소리는 멎을 생각 없이 방안을 크게 울렸다. 한바탕 웃고 나니 조금 전의 모든 대화도 부질없이 느껴져서 어쩐지 머쓱해져
버렸다.
세모가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에 의지하여 우리는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세모는 아주 이른 시간에 일어났다. 차려주겠다는 아침 식사를 마다하고 캐리어를 끌고 내려가다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몸을 돌아 세운다.
"오공아."
"응?"
"또 와도 돼?"
"마음껏."
어쩐지, 사이가 깊어진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