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한] 그 검고 탁한 것
★혐오소재 있습니다.
어린 날에 괴물이 나오는 동화책을 읽었다.
그 날 밤 꿈에 나는 검고 탁하고 질척이는 괴물이 되어 있었고, 너무나 좋아하는 네가 앞에 있었고, 나는 크고 강한 입을 벌려 날카로운 수십 개의 이로 너를 물었다. 우적우적우적, 불쾌한 소음 속에서 괴물인 나는 참으로 네가 맛있다고 느끼는 동시에 더이상 너를 먹을 수 없다는 것에 울었다.
깨어나니 아침이었다. 몹시 기묘한 악몽- 나는 추호도, 그 꿈을 앞으로 반복하여 꾸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검고 탁한 것]
2014 6 8
또 그 꿈인가.
그 동화책은 이미 없고-애초에 나 또한 동화라는 걸 읽는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비웃을 만한 나이가 되어 있건만, 설마 하찮은 트라우마라는 것 따위에 걸리기라도 한 것인지 나는 이따금의 주기로 그 악몽에 시달리곤 한다.
머리를 가볍게 털어내고는 땀으로 질척이는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선다. 기분이 나쁘기는 했지만 악몽따위로 허비하기에는 고등학생의 아침시간이 너무 짧고 바빴던 탓이다.
"좋은 아침."
"응."
짧은 식사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가자, 정확한 시간에 그, 하나가 와 있었다. 따로 시간을 정한 적도 없고 말을 맞춘 적도 없지만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우리는 함께 등교하고 있었다.
"어쩐지 안색이 안좋네?"
"꿈자리가 사나워서."
"또 그 악몽이야? 무슨 내용이길래 얼굴색이 이렇게 질린 거야."
하나를 포함하여, 아버지나 친구들에게도 꿈의 내용을 말한 적은 없었다.
꿈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그 꿈은 현실의 반영일리가 없다. 추호도 그럴리가 없다. 없어야 했다. 그것은 악몽 두단어면 족하고 그 단어가 과하면 꿈, 한글자로 줄여 말할 수도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그 뿐이다.
어린 날에 시작된 이 꿈은 잊을 만하면 나를 찾아오고는 한다.
그것은 달 단위 일때도 주 단위일 때도 있었다.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같았고, 그 현실과도 같은 이질적인 감각과 깨어났을 떄의 불쾌함 마저도 소름끼칠 정도로 동일하다.
이렇듯 착잡한 기분에도 초여름의 아침은 몹시 싱그러웠다. 지난 사이 내린 비로 풀이 촉촉히 젖은 보행로에서 나와 그는 반걸음을 사이에 두고 걸어간다.
나는 분명히 말하여 그와 걸어가는 짧은 등교길을 좋아한다.
하나의 보폭은 일정하고, 나보다 약간 좁다. 그것에 맞추어 걸음을 옮기며, 이따금 쓸데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 공부의 이야기, 또봇의 이야기 따위를 나누다 보면 시간은 평소 보다도 아주 빨리 흐르고는 해서-그와 갈라지는 현관에서의 끝인사에서는 언제나 진한 아쉬움을 느끼고 만다.
특히나 이렇게 악몽을 꾼 날에는 그를 만나는 이 시간만으로 불쾌함이 사라지며-썩 괜찮은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한다. 리프레쉬, 그 단어를 떠올린다. 아마도 의미도 동일할 것이다.
"참."
실내화로 갈아신던 하나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놓고 온 숙제를 말하는 듯한, 약간의 깨달음을 담은 목소리.
"나, 내일부터는 아마 따로 등교할 것 같아. 은주가 같이 가자고 하네."
무심코, 욕으로 대꾸할 뻔했다.
그 가 말해온 일방적인 통보는 여상한 말투였으나 내게는 전혀 여상하지 않은 말이었다. 은주는 얼마 전 하나와 같은 밤에서 임원이 된 여자 급우의 이름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하나의 곁에서-누구라도 알 수 있을 법한 호감을 담은 얼굴을 내비치던, 몹시 사랑스러운 외향을 한 거슬리는 존재이기도 했다.
"곧 운동회잖아, 같이 논의할 게 많아서-듣고 있어?"
"어? 아. 응."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반사적으로 뱉어낸 대꾸를 수긍의 의미로 깨달았는지 하나는 맑게 웃었다.
그럼, 당분간만이야. 라고 덧붙인 말에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까닭은 깨닫지 못한다. 여전히 맑은 웃음을 띄운 하나가 고개를 돌리며 바이바이, 하고 말하는 순간 머릿 속에서 무언가의 소리가 들렸다.
지직, 마치 거대한 유리 그릇에 금이 가는 듯한 기묘한 소리였다.
아침 나절, 그와 같이 걷던 짧은 등교길은 그 일방적인 통보 이후로 멈췄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그 꿈을 매일 밤 꾸게 되었다.
입 안에 씹히던 피의 질감이 선연하다.
입 안에 씹히던 근육의 질감이 선연하다.
으지직 으적 우적 우적, 꿀꺽
짙은 불쾌감 속에서-반복되는 꿈에 길들여지며, 괴물인 내가 그렇게도 행복하고 맛있어 했던 만족감과 충족감이 설핏 느껴진 것도 같았다. 하루에 한 번 꾸던 꿈은 일주일 뒤에는 하루에 몇 번이 되었다.
나는 꿈에서 너를 먹고 깨어나 다시 잠들어 너를 먹는다. 우그적우그적, 삐걱삐걱, 깨어있는 중에도 내가 너를 씹던 그 소리가 계속계속 반복되어간다.
미쳐가는 것 같아.
어쩐지 희미한 생각으로, 너를 보면 이 증상이 나아질 것 같아서 몇 번인가 반을 찾았지만 너는 보이지 않는다.
안색이 나쁘다는 소리를 듣는 횟수가 늘었다.
매 일 듣는 이야기기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지속되는 꿈으로 계속되는 으적거리는 환청이 점차 심각해지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에게 말해볼까 싶었지만 일전, 몇 년 전에 꿈 이야기를 했을 때 진심으로 걱정해오던 것을 깨닫고는 이야기하는 것은 반려한다. 괜찮아, 곧 나아질 것이다.
입안의 살을 깨물어 피를 내어 본다. 어쩐지 둔한 통증으로 입안 가득 채워진 액체의 향에 마음이 안정되어 간다.
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
실히, 그 마지막 등교에서 고작 2주일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나는 꿈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피 냄새와 식욕이
사라지지 않는다. 으적거리는 소리는 이제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머리에서는 자꾸, 지직직 하며 무언가가 금이 가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하나야."
나는 너를 불렀다. 주말에도 바쁘다는 하나는 내 목소리에서 심각함을 느꼈던지-오겠다고 했다.
응, 그렇다면 괜찮아.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인 증상일 뿐이다. 너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면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네가 곁에 있다면 해결될 문제일 것이 분명했다. 문득 정말로? 라는 생각이 치밀었으나 애써 부정해본다. 정말로, 나는 괜찮다-
주말이 되었다.
나는 기다리던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네가 보였고-순식간에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들뜬 기분으로 하나를 끌어안았다.
"엑! 왜그래 권세모!"
그가 당황한 목소리로 나를 밀어내던 것을 기억한다.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네가, 나를, 거부했다. 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 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 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 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 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 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 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 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 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 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거부-그 생각으로-일전에 들었던 소리가 몇 십배로 거칠어지며-무언가가, 머리 안에서 깨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알고 있다. 이 감각은-
꿈에서, 내가 검고 탁한 괴물이 '되어가던' 감각이었다.
나는 웃었던 것 같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안에서 조금씩-괴물이 새어나오고 있던 것을, 아마도 늦던 빠르던 이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후의 수순도-알고 있었다.
-타앙!
결국, 마음이 여린 오순경님은 그 총구를 내게 향히지 못했다. 허공에 남은 총소리, 그녀는 구역질을 삼켜내는 듯 일그러진 얼굴로 어째서? 하고 물었다.
나는 웃었던 것 같다. 이유라, 그 이유는 하나였다. 이렇게 되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 어린 날 부터 나는.
"하나를 사랑해서요."
어린 날부터 그 토록 바라던 염원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이제-정말로 같이구나. 네 향으로 온통 주변이 젖어서-네가 내안에 있는데도 내가 네 안에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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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한(을)를 위한 소재키워드 : 새어나오다 / 사랑해 / 허공에 울리는 총성 http://kr.shindanmaker.com/302638
트위터 키워드에서 받아서 쓴 조각글, 소재키워드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