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부자] 밤의 버스, 어린 날.
★원작파괴 설정있습니다. 망상소재 있습니다.
숙제를 하던 세모의 눈앞에 난데없이 낡고 커다란 책자 하나가 내밀어 졌다. 가족이 함께 떠나는 버스여행지 100선, 이런 책이 우리 집에 있었던 가 싶어 고개를 기울이고 있자니 잔뜩 들뜬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둘만의 여행, 어때, 재밌겠지?"
고개를 돌려 마주한 리모는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흥분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제트와 제로는 며칠 전 폭우로 무너진 도로 외벽을 정리하다가 부품 이곳저곳이 상한 탓으로 차박사님에게 정비가 들어간 참이었다, 또봇도 없이, 라서 둘만이라고 말하는 걸까? 세모는 리모가 건넨 여행책자를 어딘가 달갑지 않은 심경으로 받아들었다.
버스, 버스라.
석연찮은 기색으로 머뭇거리는 세모의 행동은 아마도 리모에게는 긍정 섞인 수줍음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그는 세모의 연습장을 가져다가 벌써 일정이며 시간순서를 메모해나가기 시작했다.
"대도터미널에서 10시 쯤 타면 내일 오전에는 도착할거야. 이 쪽에는 갯벌이 없어서 조개구이는 무리겠지만 매운탕이랑 튀김요리가 괜찮다고 하니까-"
"저, 아빠."
세모는 용기를 내어 리모를 불렀지만 그가 고개를 들며 시선을 마주하자 곧 하려던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왜? 세모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세
모는 살짝 주먹을 말아쥐며 한숨을 가만히 속으로 가라앉혔다. 사실상 세모는 버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나 시간이 야간이라면 더욱
그러하며, 커다란 터미널에서 타야 하는 시외버스 계열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버스를 기피하는 마음보다도 리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큰 것만은 확실했다.
[밤의 버스, 어린 날]
2014 09 01
결국은 타고 말았다.
세모는 창가에 앉아 턱을 괴고 어둑한 풍경에 눈을 고정했다. 리모는 피곤했던지 곁에 잠들어 있었고, 늦은 시간으로 버스 안을 채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청하고 있는 듯 하다가. 사방은 고요한 가운데 엔진소리만이 계속, 일정하게 들려온다. 덜컹, 덜컹, 일정히 흔들리는 버스의 안은 마치 요람같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추천하고 싶은 성질은 아니었다.
계속, 그렇게 몸이 흔들리는 시간을 마주하고 있자니, 나중에는 흔들리는 것이 제 몸인지, 아니면 제 머릿속인지도 알 수 없게 되어서, 그래서.
온 통 흔들려 뒤섞여가는 생각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밀려오는 것에, 세모는 몸을 웅크리며 애써 잠을 청했다. 리모가 덮어준 가디건 속에서 기억의 시계태엽이 뒤로 감겨간다. 희미한 수마에 젖어들며 어쩐지, 나쁜 꿈을 꿀 것 같은 느낌으로 눈을 감는다.
어린 날을 기억하자면 시외버스를 탔던 건 아마도 그 날이 처음이었고 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래, 아이는 버스에 있었다. 기억해내고 싶지 않던 시간이었다.
계절은 겨울, 지금의 세모보다 배는 작은 어린 아이의 몸은 손등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점퍼로 감싸여 있었고 여자가 사준 헤드셋은 가는 목 위에 얌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어 쩌면 생은 이토록 잔인한 것인지 하필 아이가 위치한 곳은 지금의 세모가 탔던 그 자리 즘이었다. 버스는 아직 움직이지 않은 상태로, 아이의 옆좌석에는 사람이 아닌 커다란 가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척한 인상의 여자는 세모의 작은 몸에 채워진 안전벨트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는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야, 내 이야그 잘 기억하고 있재?"
수척하고 말라 있었지만 세련된 인상의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였다. 아이는 그런 말투를 판단할 여유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 누구라고 혔냐."
아이는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으나 여자 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침착히 대꾸했다.
"엄마가 아닌 사람이요."
여자의 입술이 짙고 붉은 호선을 그렸다.
"주소는?"
"잊었어요."
"느그 아부지 이름은?"
"기억안나요."
여자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어딘지 우는 것처럼도 보이는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착하구나."
그 시덥지않은 문답을 소근거리던 사이에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여자는 아이의 작달막한 손에 꼬깃한 만원짜리 두 장을 쥐어주고는 아이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눈을 마주하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 버스 마즈막에는 아주 좋은 사람들이 있을 거여, 그리고 느그는 행복해 질 것 이랑게. 그러니께 잊어야 한다, 알긋제?"
아
이는 행복이라는 단어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그것을 바라였기에 잊기로 했다. 그녀는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고
뒤돌아서서 버스를 빠져나갔고, 아이가 붙잡을 시간도 주지 않고 그녀 만을 정거장에 남겨둔채로 버스의 문이 닫혔다. 곧, 불쾌한
엔진소리가 요란히 울리더니만 창밖에서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게 되었다.
버스가 덜컹 거렸다.
언제나 처럼 이어질 듯한 검고 긴 도로의 끝에, 그녀가 말한대로의 행복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까지도 거짓말쟁이였으니까.
앞자리 쪽에는 가족이 여행을 가는 모양인지, 엄마와 아빠, 아이들이 떠드는 목소리가 간간히
들려왔고 뒷좌석의 남자와 여자가 나지막히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기도 했으며 어린 손주를 태우고 도시로 향하는 늙은 할머니가 아이를
어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오직, 저만이 혼자인 것 같다.
아이는 천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흔들리는 하얀 전등으로 밝혀진 버스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낯선 밤의 도로의 풍경을 창으로 스쳐보내고 있지만 그 창밖을 볼 생각마저도 들지 않았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하나 둘 잠들어, 기사가 천장위의 하얀 전등을 끄고 연한 주홍색을 띄고 있는 작은 불빛들을 켜는 시가 즘에, 아이는 드디어 눈물 한방울을 떨궜다.
저에게 가족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던 순간은 생각보다도 몹시 아팠다.
리 모는 희미하게 들리는 앓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옆자리를 보니 어둑한 즘에도 세모의 얼굴이 온통 식은 땀에 젖어 하얗게 질려있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멀미일지도 모르나 저녁 나절 여행을 제안했던 즘에도 어딘가 안색이 안좋았던 것을 보면 괜스레 아픈 아이를 억지로 여행에 끌고 온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세모야, 잠깐 일어나볼래? 괜찮아?"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가만히 물어오는 말에는 깨어나지 않을 정도로 깊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머 리를 짚어 보니 다행히 열은 없는 것 같았지만 보라색으로 질린 입술은 사람을 안쓰럽게 만드는 것이 분명하여, 일단은 얇은 가디건 대신 조금 더 두터운 모포라도 덮어줄 생각으로 가디건을 치우려고 하니, 세모의 두 손이 힘줄이 불거나올 만치 강한 힘으로 가디건을 말아쥐고 있던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억지로 빼았는 것도 저어되어 가디건의 끝단을 잘 여며주고는 배낭에서 얇은 점퍼를 꺼내 하나 더 걸쳐주었다.
어 째서 이리 아픈 강아지마냥 신음소리를 흘리나 싶어 가만히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그마한 어깨를 다독여주고 있자니 어린 몸이 자신에게 기대어 온다. 문득 세모의 신음에 습기가 서렸다 싶더니만 눈물이 툭, 하고 얼굴에서 떨어져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차라리 일어나서 저가 뭐가 이렇게 서럽고 슬픈 것인지 말해주려면 좋으련만.
리모는 아직도 가디건이 제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꾹 쥐고는 놓지 않으려고 드는 아이의 작은 손 위로 제손을 겹쳤다. 잘게 떨리곤 하던 손은 리모의 손가락 사이에서 느리지만 조금씩 진정되는 것을 느낀다.
이 렇게 손을 겹치고 있자니, 어긋나 울리던 숨소리와 숨소리가 천천히 맞아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거칠고 일정하지 않았던 세모의 숨소리가 점차 잦아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리모는 다른 한 손으로 아들을 고쳐안고는 그를 데리고 다시금 꿈의 나라로 향했다.
문득 어린아이를 태운 버스의 앞을 가득 메우던 어둠이 걷혀나간다.
영 원할 것 같은 밤을 순식간에 날려 보내고 등장한 하얀 새벽에 아이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진다. 버스가 멈춰선다. 버스 안에는 분명 사람들이 그리도 많았건만 주변은 마치, 아이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고요하기만 하다. 아이는 안전띠를 풀고는 제 몸만한 가방을 그대로 두고 작은 발을 놀려 버스를 걸어 출입구로 향했다. 벨도 눌리지 않았는데 문이 열리고, 이윽고, 몇 개의 계단 아래, 온통 하얀 하늘을 배경으로 한 낯선 도시의 길가에 일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남자가 아이를 향해 이름을 불렀다.
그 가 부른 것은 분명 제 이름은 아니었으나 기묘하게도 저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아이는 조금 망설이며 그에게 다가간다. 한발자국씩 가까워진 거리는 조금씩 좁혀져 이제 두 걸음, 남자는 웃으며 아이를 껴안아 제 몸까지 들어올린다.
아이는 당황을 숨기지 못하는 기색이었으나 곧, 남자의 품에서 이제는 두 번다시 마주하지 못할 것이라 각오하던 온기를 느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쥐었던 남자의 옷자락은 곧 온기를 잃지 않으려는 갈구로 바뀌어-이번에는, 절대 이 사람만은 놓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가운데, 아이는 어쩌면 이 온기가 여자가 말했던 행복이란 단어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버스의 마지막에 있다던, 그녀가 말했던 행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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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타고 가다가 트위터에서 풀었던 썰을 간단히 정리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