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한] +2°C의 체온
★약간의 수위가 있습니다.
쌀쌀한 날이었다. 아침의 일기예보에서 밤에 눈이나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여섯시에 도착한다던 세모는 정확하게 5시 55분에 도착했다. 어쩌면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인지 그 우연이 마치 운명같다고 생각하다가 스스로도 유치한 발상인 걸 알고는 주섬주섬 휴대폰을 집어 넣는다.
세모는 사오기로 한 컵우동 두개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도착했다. 아침에 집을 떠나며 단단하게 묶어주었던 머플러는 목덜미에 대충 한 번 감겨있었고 코트도 풀어져 허술한 차림이었지만, 요새 키가 훌쩍 커 훤칠해진 세모의 모습은 너절한 비닐봉지에도 굴하지 않고 패션화보에서 걸어나온 모델 같다.
거참 잘생겼기도 하네, 어쩌면 단순히 겨울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최근 세모를 마주하면 얼굴이 시시때때로 붉어지고 만다.
"많이 기다렸어?"
"조금."
여상한 말을 주고 받자니 세모가 손을 뻗어 내 얼굴로 향했다. 뺨에 얹어진 익숙한 손가락이 차갑게 식은 피부을 쓸며 느릿하게 움직인다. 평상시에도 있을법한 접촉인데 이상하게도 미묘하게 느낌이 달라서 심장이 쿵쿵거렸다.
"지. 집에 들어가자."
떨리는 목소리로 어색히 말하며 뒤돌아 도어락의 버튼을 누른다. 익숙한 여덟자리의 숫자에서 손가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등뒤로 몸이 당겨지는가 싶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세모의 코트 속에 몸이 감싸인 상태였다. 등 뒤에서 몸을 껴안아오는 단단한 팔과 공기에 번지는 입김 속에서 체온이 높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냄새에 파묻힌 귓가에 평소보다 낮은 느낌의 목소리가 이름을 불러온다.
"하나야."
그의 차갑게 식은 손이 느린 움직임으로 가디건 안을 파고 들어 얇은 셔츠의 위를 만져왔다. 직접 표피에 닿는 것도 아닌데 얼음같이 차가운 손은 선명한 온도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어루만진다. 그렇게 차가운 손인데 내게 남겨지는 온도는 날카롭고 높았다. 오늘의 세모는 어딘가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띄엄띄엄, 간신히 생각나는 단어들을 웅얼거린다.
"자, 잠깐만, 바깥에서 이러면."
도어락이 해제되는 기계음이 들렸다. 세모의 손이 내가 잡고있던 문고리를 잡아 돌린다.
"그럼 이 안에서는?"
끼익, 열린 문 안으로 보이는 실내를 대꾸도 잊고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마주친 세모는 어딘가 날카로운 시선을 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낯설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두발자국 만에 집 안으로 밀어 넣어졌다. 우리가 들어온 뒤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카 커다랗게 울렸다. 저절로 갇혀지는 소리, 현관 또는 어떤 무언가가.
[+2°C의 체온]
2014 11 13
같이 먹으려던 간식거리가 마루에 뒹군다.
등 뒤는 딱딱한 바닥이었다. 익숙한 현관의 바로 앞에 눕혀진 나는 세모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본다. 마주해오는 진지한 세모의 눈은 깊이, 깊이 내가 알지 모르는 깊이까지 내려가 내가 모르는 색을 하고 있다. 어쩐지 그 깊이를 마주하고 있자니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라 침을 크게 삼켰다. 입속이 이상하게 까끌거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가득 차서 이성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세모가 이번에는 바닥에 있던 내 손가락을 잡아 자신의 볼을 쓸었다. 차갑긴 하지만 그의 손 보다는 조금 더 따뜻한 온도에 손가락으로 피부결을 따라 조금 움직이자 살짝 꼬리가 들어 올려진 그의 입술이 내 손가락 위로 꾹 눌러 앉았다.
"춥잖아? 따뜻하게 해줄게."
"세모야?"
"응, 하나야."
그가 낯설다. 그런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가 이름을 부르는 가 싶더니 순식간에 얼굴이 가까워졌다. 코끝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가 한숨처럼 가볍고 짧게 입술이 맞닿았다. 먼지같이 흩어지는 입맞춤, 어딘가 둔한 정신으로도 지금의 시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세모를 밀어내지 못했다.
"차하나."
그가 웃었다. 나는 우리의 행동을 멈춰야 한다는 생각으로 입술을 달짝였지만 정체된 생각의 속도는 이상하리만치 둔하기만 했다.
"어, 어떻게 따뜻하게 한다는 건데?"
겨우 뱉어낸 말은 물음표를 붙이기에도 어딘가 멍청한 질문이었다. 세모는 제 목에 감싸인 머플러가 거슬렸던지 거칠게 머플러를 풀풀어 내 머리 곁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한숨을 짧게 내쉰 세모가 손을 뻗어 얼굴을 붙잡아 온다. 숨결의 촉감이 전해질 정도로 귓가에 가까이 속삭여 지는 목소리.
"네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그 말에는 당황하고 만다.
"무슨 생각하고 있어? 하나야? 얼굴이 붉어."
분명 내 얼굴은 더 붉어졌을 것이다. 사이를 놓치지 않은 세모는 내 어깨와 허리를 붙잡더니 단숨에 들어올렸다. 같은 나이의 친구에세 들어올려지는 건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입술을 깨물다가 오늘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친구라는 단어에서 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걸음에 흔들리는 시선 속에서 운동화를 바라본다. 신발, 아직도 신고 있었나. 세모는 언제인지 벗은 모양인데 미국도 아니고 집 안에 신발을 신고 있다니.
걸음을 멈춘 세모가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더니 짧게 웃었다.
"신발 걱정하는 거야? 여유네?"
"아니, 걱정이라기보단."
말을 끝맺지 못한 사이에 푹신한 시트 위로 던져졌다.
내 시선 때문에 멈춘 것이 아니라 그저 그가 당도해서 멈춰섰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침대, 무심코 인식한 장소 탓으로 풀어졌던 얼굴이 다시 달아올랐다. 일단은 고등학교의 졸업도 몇 달 남지 않은 시점이라 오늘의 접촉과 침대라는 장소가 어떤 의미인지를 약간도 유추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응, 어차피 시트는 빨아야 할테니까 더러워져도 괜찮아."
세모가 느긋한 동작으로 코트를 벗어 걸며 하는 말에 머릿 속에 떠돌던 예정들을 확정 받고 말았다. 쿵쿵, 심장이 자꾸만 빨라지고 생각이 드문드문 끊어져서, 나는 일상적인 말을 만들어 뱉어내기도 어려운 상태인데 세모는 여전히 느긋한 동작으로 제 셔츠의 소매단추를 풀어서 접어올리고 있었다.
어딘가 불안한 마음에 이불을 끌어서 몸을 말았다. 그런다고 진정될 심장이 아닌 것은 알았지만 무슨 행동을 해야하는 지도 알지 못했다.
세모가 몸을 숙여서 시선을 겹쳤다.
"그게 끝이야? 도망안가면 허락으로 이해할건데 괜찮겠어?"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자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마도 웃고 있을까.
대답도 듣지 않았지만 세모의 손은 이불 밖으로 비져나온 양쪽 신발을 능숙하게 벗겨 침대 밑에 놓았다. 다시금 가까워진 세모는 이불 사이로 손을 넣어 내 옆 얼굴을 매만지는가 싶더니 또 다시 입술로 얼굴의 옆선에 입맞췄다. 이 촉감에 자꾸 닿아서 익숙해질까봐 조금 무서워져서 이불을 쥔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차가운 세모의 손이 이불 속을 파고들어와 내 바지의 버클에 닿았다. 낯선 접촉에 몸이 크게 움찔하자 세모가 숨을 살짝 뱉더니 내 얼굴을 붙잡아 단숨에 깊이 혀를 밀어 넣었다. 말캉하고 따뜻한 온기는 입술을 가르고 깊게 배어 들어와 유영하듯 느긋하게, 조심스런 움직임으로 입안을 배회한다. 끈적한 소리가 접합부에서 흘러 나온다. 때로는 혀에 단단히 얽히고 약하게 치열을 지나가는 그 것은 살아있는 작은 생물처럼 느껴졌다.
이전에도 입맞춤이란 행위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깊이 닿은 것은 처음이었다. 거부감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무리감 없이 몸을 맡기고 말았다. 질척하지만 달큰한 온기와 그 움직임에 익숙해지고 있자니 움직임이 멈추며 잠시 떨어진다.
가볍지만 액체의 질감으로 떨어졌던 입술이 이번에는 목덜미에 박혀들었다. 셔츠의 단추를 언제 풀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마치 동물 같아. 그런 생각이 들정도로 세모는 목덜미를 단단히 물고는 이빨을 세우거나 깊이 빨아올리기도 했다. 어쩌면 먹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통보다 먼저 느껴지는 저릿한 느낌에 손끝과 발끝이 잘게 떨려온다.
목덜미에서 벗어났을 때는 세모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었다. 흘러내린 내 앞머리카락을 얌전히 넘겨주고는 분명 제 자취가 남았을 목덜미를 만족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깊은 자국이 남겨졌다는 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쩌지?"
세모는 곤란하다는 말투로 웃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못 멈출 것 같아."
질척함이 남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귀를 살짝 깨물어온다. 목덜미 보다도 예리하게 느껴지는 이빨의 감촉에 무심코 이불을 쥐었던 손을 놓치자 기회를 놓치지 않은 세모는 순식간에 이불이라는 약한 방어막 마저 거둬 들였다. 거칠 것이 없어진 그의 손가락이 쉽게 바지의 버클을 풀어 젖혔다.
"직접 벗고 싶겠지만 오늘은 내가 해줄게. 다음에는 하나 네가 직접 벗어줘."
아저씨냐,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에 당황한 사이 바지가 벗겨진다. 드러난 다리에 오소소, 옅게 소름이 돋았다. 세모는 양말도 벗기려고 움직이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대로 발을 들어 양말을 신은 발끝에 입을 맞추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건 신고 있는게 낫겠다. 너한테 더 좋다더라고."
뭐가 좋은지는 묻지도 못할 판국이었다.
세모의 손이 맨 다리를 쓸어보는가 싶더니 깊숙히까지 애틋하게 만져 들어왔다. 다리와 몸이 움츠려 들며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온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이 체온이 올라간다.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근 듯 따뜻하고 뭉클하지만 보다 더 진한 감각이 온 몸을 잠식해간다. 넘치는 감각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자, 무언가 뭉툭한 것이 눈꺼풀 위를 다정하게 핥아운다.
그 행위에서 갈증이 느껴진다고 생각하자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진득한 입맞춤이 찾아들었다. 아득하지만 생생한 질감 속에서 시간이 전개되는 중에 멍한 눈을 뜨고 셔츠의 단추를 풀어 오는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문득 질문 하나를 던졌다.
"권세모, 너는 날 보면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 거야?"
손짓을 멈추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그는 곧 또렷해진 시선으로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모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고 내가 그에게 이어갈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긴장한 탓에 숨을 모아 뱉었다.
"나와, 닿고 싶어?"
그가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입술을 달짝이는 가 싶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되물어온다.
"너는 어떤데?"
"닿고-싶어."
어딘가 홀린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한순간 경직된 것 같이 얼굴을 굳혔던 세모가 곧 눈이 휘어질 정도로 만족한 것처럼 웃음을 지었다.
"오늘을 기억하게 해줄게. 한마디만 다시 말해줘. 따뜻하게 해달라고."
가까이에서 마주한 세모는 어제도, 그 전에도 줄곧, 나와 함께 하던 다정하고 평소 같은 얼굴로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 처럼 눈 앞이 시큰 거렸다. 짐작하지 못할 어떤 충동으로 세모의 손가락을 잡아서 천천히 끌어 당겨 벌어진 셔츠 사이로 밀어 넣었다.
"이미 따뜻하게 해주고 있잖아?"
시선을 겹치는 일이 두려워 고개를 푹 숙였다. 세모의 손가락이 깊숙하게 피부에 닿는 촉감도, 그의 숨소리, 입술, 몸의 움직임들이 그의 말대로 분명히 기억에 새겨지고 있었다. 잊지 못할 것 같은 예감으로 겨우 떨리는 목소리를 이었다. 돌아가기에 늦었다면 하다 못해 스스로라도.
"계속해, 권세모."
세모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꺼이."
조끼가 말려 올라간다. 우리의 행동이 지나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디서부터 지나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번 오르기 시작한 온도는 정점에 닿기 까지는 멈추지 않는 다는 것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곧, 뜨거울 정도의 온기에 잠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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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풀었던 썰을 간단히 정리해봤습니다. 같이 달려주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