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득,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군. 고개를 드니 소년이 웃고 있었네. 환상인 줄로 알았네만. 환상은 아니었어. 다시 한 번 카드득-그건 사탕이 부셔지는 소리였지만 정말 그 만남에서 깨진 것이 정말 사탕이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네.
[525,600과 1]
2015 12 31
사실은 가끔 히어로를 그만둘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네, 실망한 표정 하지 말아주게나, 왜 SNS에서도 매일 아침 자살하겠다며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적당한 예시가 아닌 것 같다만 지금은 적당한 예를 찾기엔 뇌가 잘 굴러가지 않네.
미안하이, 얼굴이 질척거리는군, 피가 많이 흘렀어. 얼만큼 흘려야 사람이 죽는지 정도는 사실 잘 모르겠네만 전에도 이랬으니 아마 이번에도 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만둘까, 하고 그, 알지 않나 그에게 말해보고 싶은 적이 있었네, 그가 어떤 말을 해줄지는 확실하지 않군, 훌륭한 말을 해줄까, 어떤 대답을 할까, 아니 물어볼 생각은 없네...까닭 같은 걸 물으면 대답해 버려야 하지 않은가.
출동하면 괴인은 이미 죽어있을 때가 많네.
랭크가 지정되어 폐쇄된 도시에는 입장이 거절 당할 때도 있어.
그냥 사소한 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물음이 생기고 마는 걸세, 그만할까-하고, 내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사실 제일 중요한 건 그의 등을 보고 있을 때라네, 망토가 그에게 썩 잘어올린다고 생각하네만 이상하게, 그 등을 보고 있는 것은-이상하지만, 그래 그게 제일 괴롭다네. 그, 등을, 보고 있는게.
생각이 끊어지네.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었나. 시야가 아득해지네, 자네 듣고 있나. 저스티스, 정의, 또 망가져 버렸구만, 고쳐서 쓰면 될 걸세,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정의라는 건 원래 그런 거잖나.
"안녕, 아저씨."
카드득,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군. 고개를 드니, 소년이 웃고 있었네. 환상인 줄로 알았네만 금새 실제로 존재하는 걸 알았지. 동제라고 이름을 밝히는 소년의 얼굴이 낯이 익어서-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더라도 나는 아마 소년을 알아봤을 거라고 생각하네.
카드득, 사탕이 깨지는 소리가 다시 한번, 분홍색 사탕조각이 핏물에 틀어박히네, 그런 작은 조각들 따위를 알아볼 정도로 시력이 좋다고 생각해본적은 없네만, 아마 아주 가까이에 있기 때문일거야. 폐허에 어린아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는 서있고, 나는 바닥에 누워 있고 이렇게 피까지 흘리고 있으니까 폐허라는 단어는 물론, 히어로라는 단어 자체에도 그가 썩 더 어울릴지도 모르네. 히어로라는 단어는 쓰러지는 행위를 아주 많이 용납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고 느끼네. 생각이 느려지고 있군, 피 때문일 걸세, 그런 것 같으이.
소년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들뜨고 기쁜 것 같이 느껴지고 있어. 설명-그래, 설명을 듣고 있었지.
"불공정거래 맞을거야."
세상에 존재하는 거래 중에 완벽하게 공정한 거래가 어디 있을까. 소년의 입에서 나오는 거래라는 단어는, 어쩐지 더더욱 씁쓸하게 느껴지는 구만.
"사실 계속 너를 지켜봐왔어."
너라는 칭호는 조금 자제해주었으면 싶다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초면에 청하면 예의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린 아이에게 예절을 일러주는 것도 어른의 할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네. 소년은 나를 선택했다고 말했네. 나는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
동제-소년, 소년이 상자를 내게 건네네. 분홍색포장지, 그가 먹고 있는 분홍 사탕과 같은 색이지. 화사하게 웃기도 하지, 아이에게는 웃는 얼굴이 가장 잘 어울리는 법이야. 빨간 리본이 묶여 있군, 사실 나는 빨간 색을 좋아하지 않는다네, 아 빨간 색, 망토의 색, 히어로의 색, 그에게는 어울리는 색-색에서 조차 왜 떠오르는 것은 뒷모습 뿐일까, 이상하지, 소년의 말을 듣고 있으니 점점 더 그의 얼굴이 기억나질 않아. 아득해지고 있네. 시야가 멀어. 흔들리고 있어.
"365하고도 24하고도 60분의 1이니까, 525,600분의 1이야. 당신의 쓰레기 같은 1년을 1분으로 바꿔주는 말도 안되는 약이지만, 있지 무면허라이더씨, 이 약을 만들고 데이터에게 물었더니-당신은 거절하지 않는다는 확률이 98%라고 하더라."
S급이 된다고 하네. 사탕 하나로 말이야. 그는 내게 사탕을 준다고 하고 있네. 사탕 하나로 S급이 될 수 있다니 허황된 소리라고 생각하네만 사람의 말을 처음부터 의심하면 안되는 법이니 진담일 거라고 생각하네.
눈앞의 소년에게도 빨간 망토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 동화에 나오는 빨간망토-그 늑대와 함께 다니는 그 소녀가 입는 망토라면 썩 어울릴 거라는 생각도 드네만, 아, 하지만 소년은 강하니까, 어울릴지도 모르네. 나보다는, 나보다는 어쩌면-
소년의 눈에 비친 나는 쓰레기처럼 널부러져 있구만, 저스티스, 자네도 내가 한심해보이나. 사고는 엉망이다. 98%는 어느 정도로 확실하고, 어느 정도로 불확실한지 모르겠네. 소년은 계속 웃고 있어. 사탕 조각이 떨어진 피웅덩이 위를 운동화가 밟는 것을 보고 있네, 그의 손이 내게 가까이 오네. 깨진 고글 사이로 들어온 작은 손가락이 울컥이게 젖은 손끝을 스치네, 눈물을 닦아주면서, 아-그렇군, 나, 울고있었구만, 초면부터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어 면목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