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근방의 블록을 돌던 것이 지금으로 4바퀴에 돌입, 순찰을 돌겠다고 한 바퀴, 두번째에는 어딘가 놓친 곳이 있다는 핑계로, 세 번째에는 그냥 이유도 댈 것이 떨어지고-이번 바퀴에서는 오늘은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출발해야 하나, 하던 참이다.
"사이타마군. 편의점인가?"
"응-도시락세일해서. 대여섯개."
그래도 오늘은 만났다. 그런 말을 숨기고는 여상한 표정을 짓는다. 표정연기에는 소질이 있다고 느껴본 적 없으니, 얼굴을 가리고 있는 고글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는 가볍게 픽하고 소리내어 웃고는 도시락 나눠줄 수도 있는데? 라고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얼굴 보아서-인사할 수 있다는 것들이 기쁘다. 이전의 기다림 속에서는 내 쪽에서 무언가 준비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뭔가 음료 따위라던가, 호빵이라던가, 사소한 것들로-하지만 그렇게 나눠주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일부러 기다렸다던가, 무언가를 준비해두었다고 지나치게 티를 내었다가는, 네가 버거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생각 만으로 흩어질 뿐이다.
그가 등지고 서있는 밤 하늘은 파랗다. 혼자 돌 때면 늘 검기만 하던 까만 밤은 그가 서있는 것 만으로 이토록 파랗게 변하곤 했다. 한 사람의 존재가 세상마저 바꾸는 일은 일어날 수 없을텐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기도 하지.
"순찰 돌거면 오랜만인데 같이 돌아줄까?"
한-박자, 느리게 뻗어가는 대답.
"나야 적적하지 않고 좋지."
자전거에서 내려서, 우리는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킹이-15스테이지를 깼는데, 제노스 녀석 일부러인지 실수로인지 플스 전원선을 뽑아버렸단 말이야. 그 때 킹 표정은. 어, 정말로 히어로 일보 표지감-찍어서 파파라치한테 팔아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어."
"그래도 친구 사진을 팔면 쓰나."
"수익 떼어준다고 하면 킹도 찬성하지 않을까? 아니다-귀찮을 것 같아."
사소한 대화들.
짧으면 15분, 길어야 30분 남짓의 시간, 그는 히어로니까, 모든 시민들을 위해 존재하니까-이렇게 시민들을 위한 순찰이라는 명목하에서의 공유에서만 그를 독점할 수 있다. 독점, 생각만으로도 울컥이는 단어, 나는 그를 시민들에게서 잠깐 훔쳐서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해본다. 히어로로서는 해서는 안될 생각이라는 것 즘은 알고 있다. 그러니 그저 생각만-생각은 멈출 수 없으니까, 말하지 않으면 벌받지 않을까 하는 연약한 안이함으로.
실로-이 시간이 달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착각이었다.
이렇게 둘이 걷고 있는 시간은 한 겨울에도 이상하리만치 춥지 않았다. 멸망해가는 세상, 어떤 괴인들에 대한 고민, 하루 간에 있었던 사람들과의 마찰, 짜증나는 순간들-그런 복잡한 것들이 멀리, 밤 그림자 속으로 잠겨나간다. 서늘한 공기를 가르는 목소리, 우리의 발소리, 익숙한 자전거의 체인, 바퀴의 마찰음, 금속의 작은 부딪침 마저 느리게 반짝 거리고 있었다.
이 시간에 감사를.
그리고 감사하는 시간에 더하여 한층 더 사사롭게 깊어짐을 바라는 비열한 내 마음에 대한 비탄을.
조금 더 걷지 않겠나. 조금 더 한적한 길로, 조금 더 둘이 걷지 않겠나. 그런 고민 끝에는 결국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고, 언제나 담백하고 짧은 이별이 있었다. 많은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용기가 없어서. 부족해서.
이런 욕심을 말하다가 지금의 이 소중한 15분이 망가질까하는 두려움으로. 그런-두려움으로.
"너-내 말이고 순찰이고, 오늘따라 정말 집중 못하네?"
뒤늦게 알았을 때는, 딱콩-하고 손가락이 이마를 때렸다. 약한 욱신거림이 아프다기보다는 정말 그의 말대로 집중 하지 못하고 날아가있던 정신을 되찾느라 멍하니 고개를 기울이고 섰다. 이상한 얼굴이라며, 사이타마는 킥킥 웃었다. 웃는 얼굴, 조금 더 보고 싶다. 욕심이 쿵쿵, 얕게 심장을 박찬다.
"저어."
"왜?"
그만둘까. 말할까. 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욕심을 내어서, 힘내서, 조금 더. 조금 더-함께 있고 싶으니까. 아파트 근방을 돌았던 두번째 바퀴에서 세번째 바퀴를 돌 무렵에 몇 번인가 입속으로 연습했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았다.
"게를 조금 선물 받았는데."
"게라-좋지."
내 목소리, 조금 빠른 것 같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오히려 조금 더 빨라지고 말았다. 말투, 이상한 것 같은데. 톤도 조금 높은 것 같고, 연습한대로 제대로 말하고는 있나. 머릿 속이 혼돈, 복잡하기만 하다. 그가 날 보고 있어서 더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런 게 분명하다.
"많이 나눌 정도는 되지 않아서 조금 쪄봤는데."
"흐응"
"그래도, 어, 나 혼자 먹기에는 많아서 말일세. 가, 가능하면-순찰 후에 바쁘지 않다면."
끝내는 준비한 말도 끝내기 전에 숨이 몰아서 터져나왔다. 얼굴, 완전히 붉어졌을 것 같다. 말투는 엉망진창이었고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역시-말하지 말 걸 그랬다. 그렇게 생각할 즘. 그가 반짝반짝 하는 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히도 사이타마는 게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연말에 모아둔 돈을 크게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안바빠. 초대야?"
"그런...셈이지."
"가자."
덥썩-하고 손이 잡혔다. 약간 강한 힘. 기대하던 승낙이지만 그래도 잔념이 남아서 조그맣게 물어보았다.
"둘이서 가도 되겠나."
"모자라다며? 우리 열심히 먹자!!"
잡힌 손이 조금 아리다. 힘이 들어가있는 것 같지만 놓아달라 말하지는 않았다. 입매가 자꾸 풀려서 고치는 게 약간 버거웠다. 오늘은 이 걸로 조금 더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그가 기분 좋은 듯 흥얼거리는 노랫소리에 마음이 깊이, 깊게 두근거린다. 이런 것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사소한 것만을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은, 그래도 무언가 변혁을 일으키는 방법이나, 대단한 것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니 나로서는 일단 이렇게 차근차근. 소중한 시간을 늘려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