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라인] MAC
질문, 저기 저 '까만 놈'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가?
[MAC]
2016 01 15
"응, 알았어-해피밀세트 4번 사은품으로."
사이타마는 전화를 끊었다. 도중에 예상하지 못한 걸 보고는 조금 혼란이 와서 목소리가 이상해질 뻔 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침으로 겨우 무마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을 혼란에 빠트렸던 그 존재가 있는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사이타마가 움직이기 무섭게 슉-하고 검은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까만 놈', 분명히 눈이 마주친 걸 저쪽도 알고 있을텐데 왜 저런 의미없는 행동을 하는지는 명확하게 알 도리가 없다.
귀찮은 건 질색인데-그래도 일단 눈이 마주쳤으니까.
유리문을 열고 나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2층의 커다란 간판 옆에서 멍청한 놈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애초에 보라색 머플러가 비죽이 튀어 나와 있는데 찾지 못하는 쪽이 이상하다. 얼굴만 수풀에 숨기면 지 몸이 다 숨겨지는 줄 아는 타조새끼도 아니고 말이지.
"어이."
"..."
"치즈버거셋트, 하나 정도 사줄까?"
움찔거리는 머플러의 끝자락에서 데굴데굴 머리 굴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재촉하지 않고 잠자코 귀를 기울이고 있자 잘게 떨리는 목소리가 대답해왔다. 기어 들어가는 양 조그만 목소리였다.
"해피밀이라는...걸로."
"콜"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코트에 보라색 머플러차림을 한 그가 사뿐히 내려 앉았다.
처음부터 위치를 알고 있었더라도 이동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 그 별명만큼-음속. 소리의 속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인의 시각의 한계 정도는 월등히 뛰어넘은-그,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소닉이라고 불렀다. 평상시라면 날카롭게 버려진 칼날 같은 분위기 일터지만 오늘은 어딘가 나사 두어개는 빠진 듯 멍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사이타마는 그가 혹 감기라도 걸려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뭐, 사실 그가 감기에 걸렸던, 걸리지 않았던 사이타마하고는 상관이 전혀 없는 이야기다. 적이라고 엄밀히 구분하는 것도 우습지만 친구는 더더욱 아니니까.
사이타마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삼키며 유리 문을 열어주었다. 유리 문에 붙어있는 이 달의 해피밀이라는 전단 안에는 바람돌이 소닉-파란색 고슴도치와 잔망스러운 여우 따위의 장난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어쩐지 소닉이 스파이더맨마냥 유리에 매달려 전단지를 계속 보고 있던 까닭을 알 것도 같지만 솔직히 더이상 생각하는 건 싫은 느낌이 든다.
딸랑, 어서 오십시오, 라는 인사.
소닉은 가게 안에서도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어깨의 잔 떨림. 시선의 흔들림, 무엇보다도 사이타마의 후드 끝을 꾹 잡고선 손을 놓지 않는 것이 혹시나 싶지만 겁 먹은 것 처럼도 보인다.
"꼭 처음 와본 사람 같이 구네."
"처음, 오, 오긴 누가!!"
아-이 녀석, 처음 오는 구나.
나이는 모르는 건지, 들었어도 까먹었는지-아무튼 나이는 꽤 먹은 녀석이 맥도날드에 처음 온다고 하니 어딘가 복잡한 심경이기도 하고-필사적으로 숨기려는 걸 보니 구태여 캐어 묻기도 애매한 노릇이라 그대로 그를 질질 끌고 주문대로 갔다.
"해피밀 셋트 포장하고 장난감은 4번으로-, 아 빅맥세트 하나는 먹고갈게요. 너도 해피밀이랬지?"
"아? 으. 응. 나도-"
소닉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연신 주변을 살폈다. 보는 사람이 산만해질 지경이지만 끝까지 미소를 짓고 있는 점원의 직업정신을 칭찬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장난감은 뭐로 하시겠습니까?"
"뭐로 할래?"
소닉의 눈동자가 주체없이 흔들렸다. 여자애마냥 얼굴을 붉힌 그는 끝내 말하지 않고 얼굴을 머플러 안에 묻으며 파란색 고슴도치 그림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짚었다.
"네. 그럼 1번 소닉으로 드리면 될까요?"
직원은 맑고, 경쾌하고 명쾌하며-큰 목소리로 복창했다. 소닉이 사이타마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복창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으아아아-"
"네. 그럼 그걸로."
공황에 빠진 소닉을 그대로 두고 주문을 마친 사이타마는 제노스의 카드로 계산을 마쳤다. 동그랗게 생긴 진동벨과 영수증을 받고 있자니 소닉이 진동벨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서 그에게 던져 주었다. 소닉은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제 손의 진동벨과 사이타마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침을 꿀꺽 삼켰다.
"2층으로 올라갈까? 내가 계산 했으니까 벨 울리면 네가 햄버거 가져와."
소닉은 진동벨을 양손으로 꼭 쥐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응!"
오늘 내내 우물쭈물 거리더니만 그래도 대답은 잘 한다고 칭찬해 주어야 할까? 계단을 올라서며, 사이타마는 제노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녁 먹고 들어갈게. 스마트폰 앞에서 바로 대기라도 하고 있었는지 제노스가 ??선생님? 이라고 보낸 답변이 바로 들어왔지만 상세하게 설명하려는 사이에 배터리가 나가 버렸다. 뭐-다 큰 성인이니 걱정하진 않겠지. 하고 전원이 나간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금요일 오후였기 때문에 2층도 자리가 많지 않았다. 가능하면 창가 쪽이 좋은데-라고 생각하며 창가의 자리를 짚어나가던 사이타마의 눈을 사로 잡은 것은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 갈색의 뾰족뾰족한 뒤통수였다. 어딘가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다.
"어디로 가는 거야?"
"글쎄."
소닉의 목소리에 갈색 머리카락의 뒤통수가 천천히 뒤로 돌았다. 두꺼운 안경, 청녹색 머플러에 검은 코트-, 사복 차림이지만 사이타마도 소닉도 이미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어? 너-"
"어..."
"어디서 본 놈인데?"
소닉의 무례한 말에 갈색머리카락의 남자-사복 차림의 무면허라이더가 장갑을 낀 손으로 인사하며 피식 웃었다. 좋은 오후네. 그렇게 어색한 듯 미묘한 분위기에서 합석이 되었다. 그들 스스로는 모르지만 동갑내기들의 모임이었다.
지잉-
벨소리가 울리자, 소닉이 급하게 일어섰다. 콧김 마저 나올 듯한 얼굴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해서 사이타마는 그에게 부디 천천히 다녀오라고 주문했지만-그나마도 보통 사람의 3분의 1의 속도에 불과했다. 그 정도 거리를 움직이는 게 전혀 힘들지 않음에도 붉어진 얼굴로. 손바닥 반만한 파란색 고슴도치 인형을 귀엽다고 내보이는 소닉의 웃는 얼굴은 그를 몇 살이나 더 어려보이게 했다.
"감자튀김 쏟을게."
"아, 그치만 이 녀석 감자튀김 조금 남아 있었잖아!!"
"아, 난 거의 다 먹었으니 둘이 먹어도 되네."
"너-좋은 녀석이구나."
"아하하."
감자튀김을 오물거리다가, 치즈가 들어간 버거를 한 입 물고는 행복한 표정을 짓는 소닉, 사이타마도 어쩐지 덩달아 버거가 맛있어지는 느낌이라 큰 입으로 베어 물었다. 확실히 평소보다 맛있는 것 같다. 무면허라이더는 두 입정도 남아있던 버거를 깔끔히 해치우고는 입가를 냅킨으로 찍어내더니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 너 왜 일어나?"
소닉의 물음에 무면허라이더가 볼을 살짝 긁었다. 부끄러운 것 같은 태도지만 명확한 목소리로.
"나도 버거 하나 더 먹을까 해서."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닉이 손을 들었다. 나도 하나 사주면 안돼? 무면허가 웃음으로 긍정을 표하는 사이에-조심스럽게 사이타마도 손을 들었다. 한창 때의 남자 세명이었다-곧 새로 나온 햄버거 세개가 쟁반위에 자리 잡혔다. 그 사이 콜라를 다 비운 소닉이 리필이란 걸 해보겠다며 들떠서 주문대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거 진짜 귀엽지 않아? 얘도 빠르데!!"
"귀엽네."
"네가 받은 건 뭐야? 여우? 이거 암컷이야? 수컷이야?"
"글쎄다. 넌 아냐?"
"글쎄...눈이 큰 걸 보면 암컷이 아닐까."
"하지만 파랑이도 눈이 큰데? 얘도 암컷이야?"
큰 소리로 암컷 수컷 하는 건 조금 부끄럽지 않나. 무면허라이더는 그렇게 잠깐 생각했지만 소닉을 저지하지는 않았다. 주변도 온통 시끄러웠다. 그리고 혹시나 제 지적으로 소닉이 시무룩해진다면 그 쪽이 더 속상할 것 같다. 애초에 괴인에 속하는 이에게 규칙을 강요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게다가 뭐-오늘은 히어로가 아닌 일반인 자격으로 앉아 있기도 하고.
"그나저나 해피밀이라. 그리운 이름이군."
"그립다-인가."
사이타마는 제노스 몫의 장난감을 손 끝으로 굴려 보았다. 비닐이 바스라지는 소리, 안에 있는 여우 캐릭터는 너무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어릴 때-확실히 아주 어렸을 때는 사이타마도 이 장난감을 샀던 기억이 있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사이타마의 시선이 문득, 소닉과 무면허의 사이를 가르며 뒷 자리로 향했다. 검은 가쿠란을 차려입은 소년들이 뭐가 그렇게 재미 있는지 거짓말! 에이 설마~라고 하며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러게, 나 여기 앉아서 햄버거 먹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무면허라이더의 시선이 사이타마를 따라 힐끔, 뒤로 향했다가 다시 쟁반으로 돌아왔다. 입매가 굳게 다물어지며 안경안의 눈빛이 부옇게 흐려진다. 그도 떠올리고 있었다. 10년전, 아니 7년 전인가. 그 무렵에-눈 앞의 이 남자와, 옆에 이 먹성 좋은 녀석과-같이 이런 패스트푸드점에서 셋이서 같은 교복을 입고 뒷자리의 사람들처럼 떠들 수 있었다면, 그럴 수 있었다면 어쩌면.
"조용해졌네? 이거 내가 다 먹는다~"
"야! 같이 먹어!"
사실 가정 같은 건 의미가 없다.
식기반납대의 물티슈만 보고도 놀라워하는 소닉도,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학생들의 대화를 부러운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사이타마도,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애써 밝은 표정을 하려 하는 무면허라이더 자신도-누구도 과거로 돌아갈 수도, 과거를 돌이킬 수도 없으니까. 그래도 웃었으면 좋겠다. 이 자리에서는 어쩌면 우리 세사람, 친구로 보이지 않을까. 그러면 좋겠다 싶어서-무면허라이더는 웃었다.
해피밀이야기, 소닉이라는 게 어떤 캐릭터였고 어떤 게임에 나왔는지-게임하니까 요즘 유행하는 게임은 또 어떤 것인지. 이야기 소재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감자튀김이 다 떨어지고 리필해온 콜라도 어느사이엔가 얼음만을 남기고-그런데도 셋 중에 누구 한명 일어서려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 같다. 특정하지 않은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즘-
"저거, 너희 집 사이보그 아냐?"
소닉이 유리창 밖을 가리켰다. 확실히 유리창 밖 거리에 익숙한 사이보그의 자취가 보였다. 다급한 표정의 제노스가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보며 사이타마가 픽 웃었다. 이제-돌아갈 시간이었다.
"자전거 역에 세워뒀어. 가보겠네."
"오늘 잘 얻어 먹었다-나중에 갚을게. 바이바이-"
"..."
사이타마는 한 박자 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계단을 내려오던 즘에 그들에게 무언가 말하려던 것도 같았지만 어쩐지 지금은 의미가 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다음에, 또 보자."
두 사람을 뒤로 하고 사이타마는 돌아섰다. 제노스가 햄버거가 든 쇼핑백을 받아들며 앞으로는 연락을 제대로 해달라 종알 거렸지만 귀에는 제대로 닿지 않았다. 고작 몇 걸음 만에 뒤돌아선 그들의 자취가 사그라져 갔다. 거리는 행인들이 많았고-뒤로 돌아본다해도 이미 둘은 사라졌으리라.
"조금 추운 것 같다. 제노스."
"네? 기온은 오전보다 조금 올라갔습니다만."
"그러게. 이상하네."
다음에 또 보자-재회의 말에는, 언제라는 후일의 명확함도, 재회에 대한 확신 마저도 없었다. 그래도, 그래도 다시-언젠가 다음에. 그 짧은 말은 입김처럼 겨울 공기에 흩어지고는 자취조차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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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라인,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