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무면] MAY - 1
'하, 히어로? 아직도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화가 난 건 아니야, 슬퍼졌을 뿐이지.
'그래, 너같은 병신새끼한테는 어울릴지도 모르겠네.'
그렇다고 이 말들이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얼굴도 좆같은데 돈도 없고 개 찌질한 새끼. 너 아빠도 없다며? 백 날 꿈이라도 꾸며 살라고. 초딩같은 소리나 하면서.'
그 고통보다도, 눈 앞의 아이에게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압도적으로 슬퍼서, 그래서.
[MAY : May not Be a friend] - 1
남자가 눈을 떴다.
습관적으로 머리 맡에 두던 안경의 위치를 더듬다가 손 끝에 잘 잡히지 않아 이상하다고 느낀다. 뒤늦게 손을 눈앞에 가져다 본 후에야 양 손이 온통 땀에 흥건하고 끈적하게 젖어 있는 것을 알았다. 손 뿐만 아니라 몸통도 다리도 온통 끈적하게 땀에 젖어 입었던 옷이 진득하게 몸에 달라 붙는다, 피부 밖으로 몸 안의 수분을 거의 쏟아낸 듯이 입과 목안은 건조하고 답답해 숨을 쉴때마다 까끌한 감촉이 든다.
밤 사이에 굳어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일으키고 목 안 만큼이나 건조한 눈으로 마주한 시야로는 도시의 풍경을 그대로 비추는 커다란 창이 보였다. 그 모습이 아직은 조금 낯설다 싶은 것은 이전에 몇 년이나 살던 집과는 달리, 이 집으로 남자가 이사한지 고작 2주가 지났기 때문이리라.
남자의 집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깨끗한 신축의 아파트로, 방은 별도로 없는 원룸형식에 주방과 파티션으로 분리된 구조로 무엇보다 발코니나 베란다 없이 벽의 한 면을 모두 차지하는 커다란 창이 인상 깊었다. 제법 경치가 좋은 내부는 실제로 그리 큰 넓이는 아니었지만 그리 좁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장식물은 벽에 걸려고 했는지 한쪽 바닥에 기대 놓은 벽시계 달랑 하나, 가구라고 해봐야 4칸짜리 커다란 옷장과 남자가 자고 있던 간이침대가 전부로 흔한 텔레비전이나 서랍장도 없다. 주방은 주방기구나 손댄 흔적도 없이 깨끗했지만 거주하는 공간 쪽은 몹시 어수선한 편으로 간이 침대 옆에는 아직 테이프도 건드리지 않은 커다란 이삿짐 박스들과 책 몇권, 잡지, 신문, 페트병과 다 먹은 도시락 용기와 비닐봉지 따위가 형편 없이 굴러다니고 있다.
남자는 너절한 바닥에 손을 뻗어 반정도 물이 남아 있는 페트병을 집어 단숨에 마저 마셨다. 미지근한 물이지만 그래도 마시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다가 덮고 있던 이불마저 땀에 젖어 있는 것을 알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롤 휴지를 들고 일어나 창을 열어 먼지 묻은 난간을 대충 닦고 더러워진 휴지를 그대로 방바닥에 던졌다. 역시나 한숨을 섞어 걸으며 묵직한 이불을 들어다 대강 널고, 그 이불위에 팔을 괴며 하늘로 시선을 던진다.
도시 위의 하늘은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 않은, 어두운 색을 하고 있었다.
잠시간 그 칙칙한 하늘을 올려다 보던 남자는 옷장을 열어 단촐한 트레이닝복을 챙겨 꺼냈다. 달라 붙었던 옷은 쉽게 떨어지지 않아 벗는 것도 고생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드러난 피부는 마치 수십번을 찢었다가 어린아이가 이은 것 마냥 상처투성이였지만 잘 단련되어 단단한 굴곡이 드러나 있다. 땀이 날아가며 서늘한 피부에 새로운 옷이 다시 달라 붙는 감촉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은 어차피 금방 다시 땀에 젖는데 지금 샤워를 하는 건 낭비 같이 느껴졌다.
그대로 원룸 밖을 나서려다가 뒤늦게 뒤돌아 베개 곁에서 안경을 집어들어쓰고 신발을 신었다. 엘레베이터는 쓰지 않고 계단을 사용하는 것은 오랜 습관이었다.
"11층 총각, 일찍 일어났네."
"아. 예."
"운동가요? 부지런하기도 하네."
"네..."
마냥 어색하게 대꾸할 수 밖에 없는 건 밖에서 말을 걸어온 이 아줌마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강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줌마는 호탕한 소리로 웃어 인사 하고는 현관으로 올라간다. 살가워 보이는 표정에 뒤끝없어 보이는 표정을 하고는 있지만 이사온 청년이 아무래도 백수인 것 같다며 동년배의 다른 여성과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일전에 보았기 때문에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소문, 소문들-이 곳으로 이사한 것도 바로 그 소문 때문이었으니까.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직은 한적한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와서 곧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달릴 작정이었다.
【히어로】
이 세 글자, 히어로에 의해서 이 불안정한 세계는 지켜지고 있다. 무엇 때문에 불안정하고, 괴인이며 괴수가 자꾸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남자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지금 세상이 썩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히어로를 필요로 하는 세계'는 '히어로가 존재해도 되는 세계'니까 그 자세한 원리는 솔직히 상관이 없다. 다만 제가 속해 있는 히어로라는 존재는 그런 방식으로 그런 단어를 말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아직 입 밖에 뱉은 적은 없다.
익숙하지 않은 길이지만 길을 가리지 않고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달리다보면 눈 앞이며 머릿 속이 하얗게 변하는 순간이 온다. 마라톤 선수처럼 그 순간이 좋아서 계속 달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팔다리가 비명을 지르고 일어났을 때마냥 다시 땀에 흥건해진다. 거칠어진 숨에 안경이 부옇게 흐려져 뿔테안경을 벗었다. 세상은 안경을 쓴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곧 다시 안경을 썼다. 아침이 되고 있었다. 머리카락에서도 땀이 흘러서, 안경을 타고 볼로 흘러내렸다.
【히어로】
아, 그 세 글자-
"브이-!"
한 낮, 흙이 온통 묻어 더러워진 야구복에 검은 야구모자를 쓴 꼬마 아이들 세명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인다. 그들 뒤에는 아이들 보다 훤칠하게 큰 남자가 만화에나 나올 법한 기묘한 코스튬 차림으로 어색한 손가락으로 같은 동작을 하며 서 있다. 초록색헬멧, 갈색 코스튬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검은 고글. 피부가 드러난 것은 얼굴의 나머지 반과 목 뿐으로 겨울인 것을 감안해도 유난히 꽁꽁 싸맨 주제에 방한성에도 영 취약해 보이고, 그렇다고 전투에 특화되어 유독 강해 보인다던가 멋있어보이지도 않는다.
[찰칵-]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언제 웃었냐는 듯 후다닥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로 뛰어갔다. 그늘 밑의 벤치 아래에는 이미 아이들이 한 가득으로, 아이들이 둘러싼 벤치 중앙에 있는 커다란 종이상자 안에는 햄버거와 콜라 따위가 잔뜩 들어 있었다. 히어로협회의 로고가 있는 상자다.
까르륵, 킥킥,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데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어딘가 멀리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 볕 아래에 혼자 남겨진 남자 곁으로 커다란 체격의 지도교사가 카메라를 든 상태로 페트병 콜라를 건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이고, 갑자기 호출 받아서 고생하셨습니다-, 무면허라이더씨."
"아닙니다. 이런 것도 당연히 제가 해야할 일입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아이들이 많이 기다렸는데 취소되었으면 서운해 했을거야."
아이들의 벤치 옆에는 한껏 멋진 자세를 하고 있는 다크니스 블레이드의 플랜카드가 놓여 있었다. 몇 주 전인가 협회에서 진행한 찾아가는 히어로-서비스 캠페인에서 이 야구단이 선정된 것도 며칠 전. 야구단이 희망한 몇 명의 히어로 중에 기꺼이 참가를 희망했던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무면허라이더가 아니라, 아직 한참 신참이지만 기대를 끌고 있는 B급의 다크니스 블레이드. 그였다.
"다크니스 블레이드가 갑자기 못오게 되었다니, 하긴 재해레벨鬼라던가. 그런 건 미리 예상할 수도 없지. 그나저나 자네도 일단 히어로인데 가지 않아도 되나?"
일단, 히어로라- 껄끄러움이 느껴지는 단어에 무면허라이더의 고글이 지도교사의 얼굴로 향했다. 지도교사는 인상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웃는 입모양이 뒤틀려 있다. 사진을 찍기 전에도 실망했다고, 다크니스 블레이드를 불러오라며 한참이나 매달리고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진이 빠진 건 둘 다지만, 교사 입장에서야 자리에 없는 히어로를 탓하기 보단 눈 앞의 어수룩해 보이는 남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쪽이 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리라.
잠시 조용해진 운동장에서 무면허라이더가 꿀꺽, 꿀꺽, 페트병의 콜라를 비우는 소리만이 유독 크게 들리는 가운데, 문득 교사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짜증도 나고 해서 습관처럼 가볍게 긁어내긴 했지만 일단은 눈 앞의 남자도 히어로, 그것도 저조차도 몇 년이나 이름을 듣고 있으며 무수한 재해에서도 생존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현역히어로였다. 잠시 소탈해보이는 외향에 방심했지만 막상 무력으로 따지면 일반인인 교사보다야 몇 배는 강한 것이 분명할 터였다.
페트병이 순식간에 바닥을 보였다. 동시에 무면허라이더가 움직였다-교사가 제풀에 주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사이에 무면허라이더는 교사를 향해-90도 이상의 각도로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이번은 B급 이상의 긴급호출이라 미리 요청하셨던 히어로가 오지 못하고, 급하게 일정이 바뀐 점에 대해-협회에서도 죄송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라 다크니스블레이드의 싸인은 내일 중에 퀵으로, 아이들 인원수에 맞춰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아니 이렇게 까지 하면-"
"부족하겠지만, 참아주겠습니까? 시민님. 필요로 하다면 조금 더 남아서 아이들을 달래는 것에도 협조하겠습니다."
이 정도로 정중하게 저자세로 나온다면야 오히려 교사도 민망해진다. 오늘 낮에 일어난 일들이야 불쾌한 것은 분명했지만 사실 눈 앞의 남자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교사 본인이 제일 잘 알았다. 선량하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다가가 일일히 사과의 말을 전하는 남자를 보며 교사는 조금 부끄러워지긴 했지만 구태여 사과를 건네지는 않았다. 다만 역시 소문의 무면허라이더, 하고 인품에 조금 감탄했을 뿐이다.
한참 동안 토라져 있던 아이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으쓰대며, 내일 사인 온다면 괜찮으니까, 아저씨 사인도 받아줄게라며 결국 웃는 얼굴을 보이고는 또 언제 토라졌다는 듯 웃었다. 무면허라이더는 긴장했던 어깨를 조금 내렸다. 휴대폰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는 정말로-鬼급의 재해 알림이었다.
아이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자전거에 올라탄 그가 페달을 밟았다. 아이들의 응원소리를 들으며-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는 건너에서 빠르게 상태를 전달해온다.
[무면허라이더군, 자네에게는 우선 대피소로의 피난 유도를 부탁하고 싶다. 바로 부탁해도 되겠나?]
"가능하다. B급의 다크니스블레이드는?"
[아아, 팬미팅 쪽이 마무리되는 대로 합류할테니 먼저 이동 부탁한다.]
"...바로 가지."
페달이 무겁다. 아직 하루의 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피로감이 몰려드는 것 같았다. 힘내-아저씨-! 아이들의 목소리가 등을 떠민다. 방금 콜라를 한 병이나 마셨는데도 목이 바짝바짝 타는 듯이 말라간다. 겨울인 탓인가. 그런 것 같다.
【히어로】
[14시경 Z시 외곽에서 발생한 鬼급 재해는 S급 2위 전율의 타츠마키와-]
셸터에 설치된 커다란 액정 속에서는 황홀한 빛으로 반짝이는 연록빛 머리칼의 소녀가 도도하게 웃어보이고 있었다. 다크니스블레이드는 오지 않았고, C급의 히어로 둘이 더 합류했지만 피난 유도에는 시간이 걸렸던 탓에 괴인의 얼굴은 지금 액정 속에서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해요-무면허라이더씨."
시민들에게 웃어보이고, 몇 명에게 사인을 해주고-셸터가 텅 빌 때까지 다시 원활한 퇴장을 유도하는 것 까지 마친 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셸터를 정비하는 협회의 회원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그제서야 무면허라이더는 지친 몸을 벽에 기댔다. 크게 한 일도 없는데 입 안에는 달고 씁쓸한 맛이 돌았다. 오늘 콜라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그 때 쯤이었다.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몇 개 남아있는 도시락으로 향하던 즘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고생했네, 무면허라이더군!]
"고생은 무슨."
[참, 다크니스 블레이드가 팬미팅이 늦어져 출발이 늦었다지, 그 몫까지 같이 정산해주겠네. 그도 감사의 의미를 전해달라고 하더군, 정말로 고생했어. 언제나 자네에게는 감사-]
"...거짓말"
[응?]
"아니네. 별로 힘들지 않았으니 추가정산은 필요하지 않아. 평상시대로 부탁하네."
[아아, 그래-그럼 다음에]
신호가 끊어진 뒤로도 액정이 까맣게 멎을 때까지 화면을 바라보던 무면허라이더는 잠시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익숙한 셸터의 천장은 조명이 꺼지고 있어, 점차 어둑하게 변하고 있었다-밖으로 내어보이는 하늘은 어느새 저녁의 색으로 천천히 저무는 석양에 물들어 주황과 남색이 번진다. 셸터의 안도 연한 주황으로 물들어간다. 어딘가 흔들리는 붉은 색은 따뜻하기 보다는 차라리, 쓸쓸함을 닮았다. 그는 결국 한참을 그대로 서 있다가 도시락도 집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갔다.
이 무렵을 좋아했다. 지금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햇빛 속으로, 혹은 빛을 등지고-어떤 때라도 해가 질 무렵이라는 이 시간은 느슨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좋았다. 천천히 변해가는 하늘을 보며 페달을 밟는다. 오토바이 보다야 확실히 피곤해진 나날이지만 자전거만큼 솔직하고 정직한 탈 것도 없다, 한 발 밟으면 충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나름대로 훌륭한 탈것이라고 생각해서 저스티스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 저스티스도 이번이 8대 째지만, 원래 정의라는 건-사실 이처럼 나약하고, 볼품 없는 거라고, 내심으로는 생각하기도 했다.
망가지고, 부셔지고, 쉽게 바뀌고, 타인에 의해 조롱당하고, 하지만 버리지 못하고, 버리더라도 다시 사고, 다시 망가트리고, 다시 고치고, 부셔지고, 망가지고-다시 고치고, 그러다 버티지 못하면 다시 사고, 부품은 그대로 남아 다음의 정의에 사용된다.
그 말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정의라는 것과도 닮았지만 어쩌면 그 표현들이 더더욱 닮은 것은-
[지잉-]
진동소리가 길게 울렸다. 협회와의 연락은 끝난 것으로 알았는데 뒤늦게 전달사항이 있나 싶어 열어본 액정 안에는 짧은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FROM : 대머리망토 > 어이, 순찰 끝나면 전골 먹으러 올래]
피식, 웃음 짓게 만드는 글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은 것도 잠시-무면허라이더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모처럼의 메일이니까 들어주고 싶기도 하지만 정작 오늘의 오후 순찰은 시작도 하지 못했고, 지금 대강 편의점에서 떼우고 출발한다고 해도 빨라야 꼬박 두시간-평소보다는 분명 확실히 늦을테니까 이 부탁은 거절해야 했다.
[RE : 무면허라이더 > 아, 미안하지만 오늘...]
멈칫, 메일을 기입하던 손가락이 잠시 멎었다. 고글에 석양의 빛이 일순 비추며 얼굴에 잠시 구름 그림자가 지나간다. 액정을 쥔 상태로 잠시간 숨을 멈추고 제 입술만을 지그시 깨물던 그는 곧, 입력하던 글자를 모두 지우고 몇 글자의 짤막한 문장만을 기입하여 바로 송신했다.
[RE : 무면허라이더 > 바로 가지]
짧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접었다.
요 며칠의 순찰에서는 아무런 특별한 일이나 범죄도 없었다. 그러니까, 하루 정도는-오늘 하루 정도는 동료와 보내며 쉬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금새 뻣뻣했던 몸이 풀어지는 것도 같았다. 괜찮을 거야, 가볍게 주먹을 말아쥐고는 다시 폈다가 이번에도 다시 페달을 밟아간다. 한결 후련해진 발동작이었다.
그의 자전거 뒤로 길고 어두운 검보라빛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흔들거렸다.
흔들, 또 다시,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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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장편 플롯입니다!! 회지출력용으로 짰던 콘티기 때문에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하루에 어느 정도 쓸 수 있을지 짐작이 가질 않아 몇 편이 될 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느슨한 호흡으로 천천히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