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타츠] To the night
[To the night]
2016 02 06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에는 소름끼치게 크고 둥근 달이 떠 있었다.
겨울인 것을 감안한다해도 쌀쌀하고 차가운 바람이 이따금 매섭게 스치며 타츠마키의 치마자락을 휘날린다. 타츠마키는 건물 사이를 돌며 웅웅 우는 바람소리가, 어딘지 동물이 지르는 비명 소리 같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바람도 달도-어딘가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잠깐 초능력이라도 써서 날아갈까 하다가 오늘은 내키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오늘은 바른 히어로의 귀감이 되던, 약해빠지긴 했지만 그 마음가짐만은 타츠마키마저도 내심으로 감탄하던 한 히어로의 추모식, 그 마지막 날이었다. 감탄한다고 해봐야 약간의 감상, 협회를 통해 소식이야 전달 받았다만은 어차피 그는 인기인이었고 일반시민들과 약한 히어로들이 잔뜩 몰려갈테니 큰 교류도 없는 타츠마키 본인이 가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가려던 의사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오늘 그 곳을 방문했던 것은 사랑스럽고 가끔 짜증나는 여동생의 전화 때문이었다. 왜 내가 가야 하는데? 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풀어 대답하지 않고 그저 자리를 채워주면 좋겠다고 했다. 짧은 통화지만 어쩐지 후부키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것 같아서 설렁설렁 추모식장에 갔다.
그렇게 방문한 곳은 여러모로 생각했던 것의 이상, 혹은 이하를 보여 주어서 놀랍기는 했다. 언제나 히어로가 시민님-시민님하며 챙기던 일반시민들은 평일임을 감안한다고 해도 방문객이 없었다. 드물게 자리를 채운 C급의 히어로들의 인성은 C급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지, 시종 시시덕거리며 농담 따위를 즐기고 있고 그 농담중에는 심지어 C급의 1위를 틀어막던 남자의 죽음에 대한 것 마저 있었다. 질력이 날것만 같다.
막상 그의 친구라고 어디선가 들었던 대머리망토-그 문제의 남자도 오지 않았고, 실신한 히어로의 어머니와 무뚝뚝한 얼굴의 사이보그가 상석을 지키고 있어서 여러모로 태클을 걸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그나마 후부키 그룹이 돌아가면서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와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며, 후부키가 씁쓸한 얼굴로 손을 잡아왔다. 화장으로 대강 가리기는 헀지만 눈가가 붉게 부풀어 있는 것으로 보면 분명 울었던 것 같다.
"네가 고마워할 건 아니잖아?"
"...그 사람,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후부키의 말에, 타츠마키는 항변할 마음마저 잃고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딱히 별도의 스케줄이 없기도 했다. 그 직후에 실신에서 깨어난 사람 좋은 인상의 부인이, 타츠마키의 손을 붙잡고 몇 번이나 귀한 몸인데 친히 와주어 고맙다고 말하며 몸을 조아리기 시작해서, 그녀의 과분한 대우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사람이 사람의 죽음을 달래는 장소에 유명세라던가 자신의 히어로 등급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어째서 특별한 취급을 받고마는 걸까-하는 삐뚤어진 생각들.
그렇게 삐뚤어진 것들 중에 가장 걸리는 것은, 온전하게 그의 명복을 기리지 못하는 제 마음이었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싸구려 동정과 어설픈 서글픔 뿐으로, 진심은 어디에도 없어서 그의 사진을 보는 것 만으로-코스튬이 아닌, 사복 차림임을 감안해도 몹시 낯설어지고 만다.
추모식은 오늘이 마지막으로 내일은 그가 안치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일은 가지 말아야 겠다. 그 곳에서 얻어온 이런저런 감정들이 아마도 이렇게 쓰게 남아서 이렇게 불안하고 서늘한 기분이 드는 것이리라, 타츠마키가 그렇게 생각하던 즘에-시야 안에 있던 공원 쪽에, 노란 불빛이 스쳤다. 잠시 착각한 것으로 알았지만 착각이라기엔 선명한 불빛이었다. 이 시간에 산책인가, 위험할텐데 취향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혹시나 하는 의혹에 사로잡힌다.
'설마, 설마 혹시나지만 심령현상인 건 아니겠지.'
초능력을 쓰는 주제에 왜 심령현상에 대해 예민한가 하면 엄연히 매커니즘이 다르다고 말해주고 싶다. 초능력이라는 건 규정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가지지만, 심령현상이란 건 지금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는 분야지 않은가. 사람에 따라서는 오컬트라는 이름으로 같이 묶어서 다루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타츠마키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분류체계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피하기에도 내키지 않는게, 명색이, 전율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조그만 빛 정도에 겁먹고 도망간다는 건 영 그렇지 않은가. 도망간다는 선택지를 떠올린 순간 이미 겁을 먹은 건 확정사실이었음에도 타츠마키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손을 말아쥐었다. 귀신...한테 초능력이 먹히던가.
타츠마키는 조심스럽게-언제라도 능력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몇 번이나 되새기며 조심스럽게 공원으로 향했다. 어둠이 내린 공원은 낮과는 달리 몇 겹이나 더 서늘한 기분을 더해서 내딛는 걸음이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그나마 커다란 달이-공원을 비추고 있어 다행이었다. 빛을 향해 걷다가 무심코 자문하게 되었다. 어라, 오늘-보름 아니지 않나? 그리고 이 공원, 밤이라고 해도 어째서 불량배나 노숙인도 없이 이렇게, 한 사람도 없이 조용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빛의 정체를 알았다. 노란색 불빛은 흔하게 파는 가정용자전거의 보조등이었다. 그래, 거기까지는 흔한 노선이었다-. 타츠마키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전 C급 1위, 무면허라이더가 익숙한 복장으로 그 곳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었다. 그는 분명 오늘 추모식을 했고-내일은 안치까지 될 예정인데도.
"아무리 강해도, 이 시간의 산책은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게-어, 자네?"
타츠마키는 그의 말에 현기증을 느끼며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
추모식장에서 들었다. 무면허라이더를 수습한 것은 후부키였다고 한다- 그를 죽인 것은 괴인도 괴수도, 자연의 재해도 아닌 그의 친구인 대머리망토-사이타마, 그의 '실수'였다고, 사이타마는 그 직후 소름끼칠 만큼 차가운 얼굴을 하고는 어딘가로 떠나 그 뒤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C급 히어로 중에서는 C급의 출입이 제한된 장소에 구태여 들어가서 명을 제촉한 무면허라이더를 비웃는 소리도 있었다.
후부키는 늦게 도착했을 뿐, 자세한 사정을 아는 것은 당사자인 무면허라이더와 사이타마-그리고 무뚝뚝한 표정의 제노스 뿐이겠지만 제노스는 그저 선생님의 실수라고 언급했을 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진심으로 침묵을 고수하는 그를 추궁할 만한 무력도 마땅히 없어서 사인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타츠마키는 어쩐지 그 다운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세상에 사인과 어울리는 망자가 어디 있겠냐만은.
"아, 깼나."
타츠마키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벤치 위에 눕혀져 있었다. 벤치 치고는 어딘가 머리 밑의 촉감이 말캉하니 적당히 단단해서 좋다 싶었더니만 제 머리 맡을 받치고 있던 것은 남자, 무면허라이더의 허벅지였다. 세상에 남자에게 무릎베개를 당한 것도 생에 처음 있는 일이지만 그 상대가 귀신이라고 하면 더더욱 난감한 처지라 타츠마키는 황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남자는 음료수캔을 건네며 여상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자네 요즘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닌가, S급이라고 해서 몸을 함부로 하면 안돼, 빈혈이라니 다이어트 같은 걸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빈혈? 내가?"
"아닌가?"
되묻는 말에 타츠마키는 할 말을 잊었다. 무심결에 그가 내민 음료수캔을 건네 받으며 잠깐 닿은 그의 손가락에서는 가죽장갑의 촉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귀신-그는 분명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방금 베고 있던 다리도 지금 말하고 있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살아 있다는 느낌도 명백해서 도무지 그가 죽은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남자보다는 좀비맨이 더 망자에 가까울 느낌이리라.
혼란스러운 기분에 캔을 따서 입술을 대자 서늘한 캔과 달리 약간 미지근한 음료의 촉감이 그대로 입안에 들어온다. 느껴지는 모든 것은 완벽하게 현실 같았다, 두 모금 정도 마시자 조금 머릿 속이 가라앉아서, 타츠마키는 조금 진정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 여기서 뭘하고 있어?"
"응? 순찰중이지 않나."
"하지만 당신은 죽-"
타츠마키가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장갑을 끼고 있는 제 검지손가락을 들어 제 입술 위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쉿-말하지 말라는 명백한 신호에 타츠마키는 분한 심정이 되었다. 심령현상...혹시나 생각했지만 정말 이런 류의 심령현상이 제 앞에 일어나는 일이 올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폴터가이스트나 그런 류가 아닌 이런 명백한 귀신체험이라니, 한번도 가정해 본 적이 없는 일에도 그나마 덜 혼란스러운 것은.
남자, 무면허라이더의 얼굴에 걸린 연한 미소와 조용조용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는 조용히 말을 잇고 있었다. 타츠마키가 일찍이 들어보기 어려웠던 건강에 대한 염려의 말들이 조근조근하게 풀어진다. 귀신-아마도 분명히, 하지만 이 남자는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고 끼치지도 않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확신이 들어서 조금의 시간 뒤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사소한 것들, 음료수의 브랜드나 최근의 날씨 같은 화제가 이어진다. 심지어 완전히 경계마저 풀어졌을 때 남자가 벤치에서 일어섰다.
"왜?"
"순찰, 다시 하러 가야지. 오늘 대화는 재밌었네. 타츠마키씨."
타츠마키는 아쉬움으로 제 손가락을 맞잡다가, 무심결에 제 생각을 되짚었다. 아쉽다-라, 방금 나눈 대화들에는 어떤 지적인 수준이나 교양도 없이 그저 텔레비전 속에 나오는 친구와 커피솝에서 떠드는 풍경을 닮아 있었다. 일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도 부족한 일상인지라 궂이 텔레비전을 들이대야 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엷은 푸념, 그리고 그 대화에서 느꼈던 소소한 즐거움-부정하고 싶지만 재미있었다는 감정만은 확실히 남아 있었다. 분명 남자는 죽었는데-이 만남을 납득할 수는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저기 말이야."
"말해보게."
"또 볼 수 있어?"
남자는 고글로 얼굴이 반정도 가려져 있었지만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소탈하게 웃었다. 그가 커다랗고 둥근 달을 가리켰다-이 달 아래에서라면. 며칠이라도. 이어진 말에 타츠마키는 기뻐졌다. 이 말도 안되는 만남을 분석할 수 있겠구나, 혹은 이정도의 심령현상이라니 드문 기회잖아! 같은 핑계들은 모두 그녀가 덧붙인 것들로 사실 가장 기쁜 것은 오늘 같은 대화를 다시 할 수 있다는 순수한 감정에 가까웠다. 물론 아직 완벽하게는 이해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
그 후, 타츠마키는 매일의 일과를 끝내고 공원에 향했다. 향하는 길이면 어느 순간엔가 어김없이 커다란 달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고 주변의 인적이 드물어졌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은 사람이 아닌 자연의 일인데 어째서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인지 궁금한 마음도 있지만 몇 번의 밤이 지난 뒤에 곧 의문마저 지웠다.
무면허라이더는, 좋은 대화상대였다.
그는 조금이라도 난색을 띄면 대화소재를 바꿔 주었고 일상적으로 늘어놓는 변명이나 핑계들도 하찮다고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가끔 그가 먼저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타츠마키의 말들이었다.
여동생의 일, 가족의 일, 말도 안되는 협회의 일들, 우스운 히어로의 실수담이나 최근 관심이 가는 CF의 햄버거 종류-가끔 간식을 사서 가기도 했다. 타츠마키는 먹으려면 15분도 더 걸리는 햄버거를 단 몇 입으로 먹는 걸 보고는 역시 남자긴 하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던가 심령현상인 주제에 어째서 그가 건네어 준 음료수의 빈 캔은 그대로 남아 있는가, 같은 의문들은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괴인이나 괴수가 벌인 일일까? 싶었던 것도 같지만 타츠마키는 그 모든 것 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말하면 안 된다. 처음 처럼 그가 말하지 말기를 종용하는 것도 아니지만 타츠마키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지금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오후에 몹시 더럽고 짜증나는 일을 겪더라도 밤의 이 짧은 대화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이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상냥해?"
"자네가 상냥하기 때문이겠지."
"...뭐, 너는 힘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별로 무섭지도 않고."
"이런, 좀 더 무서운 힘을 길러야 겠는 걸."
"뭐 길러봐야 C급 이잖아?"
"하핫, 하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자네 정도로 강해지는 건 확실히 무리일지도 몰라."
그런 만남이 보름 째 였다. 쑥스러운 듯 웃으며 볼을 긁적이는 그의 얼굴을 보던 타츠마키는 문득 그의 얼굴이 조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사랑스럽게-뒤늦게야 깨달은 그 단어의 무거움에 처음으로 먼저 일어서서 안녕을 고하고 공원 밖을 뛰쳐 나갔다. 한참을 달려, 보름달이 없는 밤하늘 아래에서 타츠마키는 그렇게 제 마음을 깨달았다.
'약하고, 키도 작고, 얼굴도 아마 못생겼을 거고, 아니, 사실 본 적 없긴하지만 분명 못생겼을테니까, 아닌가, 귀여운 편인가? 사실 키도 나보다는 크지 않나? 그러고 보면 내 외모에 대해서도 말한 적 없네, 설마 로리콤? 아니, 그냥 사람 좋은-그보다 귀신이잖아, 귀신인데. 그런데. 귀신이라서 외모를 안따지나?'
그런 질문들이 현상에 대한 질문들 위로 차곡차곡 쌓였다. 의문들, 질문들, 궁금함. 이야기는 점차 그에 대한 것으로 옮겨져 타츠마키는 그에게 계속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히어로가 된 동기-, 좋아하는 음료수,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이성의 타입. 대부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서 명확하지 않았음에도 그래도 그가 당황하는 얼굴이 좋았다. 좋았다...자꾸만 더 좋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우연에서 시작된 만남이 지속되어 3주가 된 저녁이 끝날 무렵, 타츠마키는 장미 한송이를 샀다. 후부키의 졸업식을 제외한다면 꽃을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은 처음이라서 가격도 몰라 한참을 헤멨더랬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는 용도인가요? 꽃집의 직원이 묻는 말에 한참이나 늦게 입 속의 말로 중얼거렸다. 소중한 사람은 아니고, 소중한 귀신이겠지.
오늘은 진짜 보름달이 떠 있었다. 타츠마키는 인파를 걸어나가며 들떠 있었다. 처음 사는 꽃, 처음 해본 생각들이 그녀의 걸음을 빠르게 했다-.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어진다-이제는 익숙해진 현상 속에서 달이 크게 변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차가운 달.
무면허라이더는 자전거를 세우고 먼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손바닥만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인다. 반갑게 달려가다가 이 녀석은 저한테 관심이 없나 싶어 걸음을 늦추고 일부러 천천히 걷다보니 남자가 고개를 들어 활짝 웃어보였다. 뭐랄까 고민 같은 게 의미 없어지는 듯한 맑은 웃음에 타츠마키도 마주 웃었다.
"좋은 밤이야!"
될 수 있다면-계속 이렇게, 10분이라면 너무 아쉽고 15분이라도 아쉽고, 그와 함께라면 30분이고 한시간이고-조금 더,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가까이. 이유를 묻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저 쌓아두었던 질문들은 계속 겹쳐져서 이제는 타츠마키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워져 있었지만 그 무거움이 타츠마키에게 확신을 주었다. 이 마음이 그저 들뜬 것이 아니라, 아주 소중하고-소중한, 낯설지만 기쁜 감정이라고.
나는, 너를.
그리고 가능하다면 너도 나를-그런 마음으로 장미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장미를 받지 않았다.
"왜?"
"자네도 알지 않나."
무면허라이더는 발치를 가리켰다. 두 사람이 벤치에 앉아있다. 두 사람이 말하고 있다. 커다란 달이 떠있다-하지만 벤치 아래로는 한 사람 몫, 지금은 벤치에서 일어난 타츠마키의 그림자만이 선명할 뿐-이렇게 숨쉬는 소리가, 한숨이 섞인 목소리가 따뜻하게 들리는데, 가까이 하면 그 물기마저 묻어날 것 같음에도 그의 그림자는 없다. 살아있다고 착각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타츠마키의 명백한 오만이었다. 이렇게 만져지고 대화할 수 있는 존재감인데 시체조차 보지 못한 죽음을 압도적으로 누르는 현실감으로 귀신이니 죽음이니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 사실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림자에 대해서는 두번째의 만남에서 이미 알았음에도-실감하지 않으려고 했다.
어쩌면 그 때 이미, 마음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 반대로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있지-그래도 나!"
"타츠마키씨."
"그래도-난!"
무면허라이더가 고개를 저었다.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우물거리는 입매 만이 보이지만 고글 속의 눈이 일그러져 있을 것은 명백하게 알았다. 그의 암묵적인 사양에도 타츠마키는 당차게 입술을 열었다. 일찍이 강함이라면 비견되기 어려운 존재였지만 그 또한 감정을 가지고, 타인에 대해 이 토록 강한 마음을 품을 수 있었기에-그래서.
"나, 너를 좋아해!"
눈물 마저 나오는 것을 참으며 겨우 건넨 말이었다. 차마 상대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외친 말에는 말하기 전에는 알지 못할 정도로 강한 감정들과-미래에 대한 희망이 묻어 있었다. 결혼하지 못하겠지? 귀신이니까, 소개도 힘들거야. 그래도-그래도 말해 주고 싶었다. 이 마음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무겁지만 그럼에도 행복해지는 이 마음을.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더 깊숙히 닿고 싶어.
순진하고 순수한 바람은 그렇게 목소리가 되어서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대답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타츠마키는 슬그머니 눈을 떴다-눈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벤치 옆에 있던 자전거도 없었다. 차가운 바람 만이 감도는 공원 안은 적막했지만, 그럼에도 느껴진 인기척에 발을 옮기자 심야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과 경비와-구석을 차지한 잡배들 만이 있을 뿐,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냐, 틀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명백한 예감에도 타츠마키는 공원을 계속 뒤적였다. 계속, 새벽이 되고-아침이 될 때까지 공원을 뒤지다가, 곧 집에 돌아갔다.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줄곧 공원에서 만났으니까, 21번이나 만났으니까 밤이 된다면 달라지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럼에도.
그 밤에도, 그 다음의 밤에도-만난 것보다 더 많은 날을 찾아갔음에도 타츠마키는 다시 그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이미 죽어 없었던 사람이기에-누군가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타츠마키는 계속 그 밤에 그 장소를 찾았다.
하지만, 타츠마키는 그 후 단 한번도 남자를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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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트위터에 썼던 짧은 이야기를 글로 옮겨봤습니다. 이 두사람 조합 좋아해요:> 그나저나 또 죽여버렸다...살아남아라 무면허라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