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마도 난 오늘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기계공학을 배웠던 것이다.
"세모 팔은 내가 직접 정비해줘야 하는데..."
리모아저씨는 손에 잡히는 서류를 케이스에 쑤셔박으면서도 걱정이 되는지 연신 나를 돌아보며 눈썹을 휘었다.
혹
여나 얼굴 밖으로, 득의의 심정으로 망가진 뭔가가 바깥으로 드러나지는 않을까를 신경쓰느라 리모아저씨의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웃는 얼굴로, 언제나와 같은 웃는 얼굴로-란 생각을 주문처럼 되뇌이며 타이밍에 맞춰 고개를 끄덕인다.
"급한 일이 생겨서 미안하다 하나야."
그래도 그 말에는 진심으로 대답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괜찮아요, 아저씨."
아주-괜찮아요, 미안할 사람은 아저씨가 아닐 테니까.
"저 지난 번에 같이 해보기도 했었고"
걱정이 아예 안되지는 않는 듯 싶었으나 '이 일'을 리모아저씨가 타인에게 부탁한다는 것은 그 타인에게 굉장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미안해요. 입 밖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짧은 사과의 말을 몇 번인가 삼켜 넘긴다.
"혹시나 잘 안되면 연락해라-"
그렇게 아저씨를 배웅하자 약간의 탈력감이 느껴졌다. 느릿이 움직이는 몸을 돌려 미리 준비된 연구실로 돌아간다.
치
과를 연상시키는 금속제의 침대 옆, 커다란 테이블은 희고 커다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천을 거둬내자 놀랄정도로 섬세하고 예민하게
준비되어 배열된 수십가지의 금속도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모습은 잔인하고 떄로는 과격한 쓰임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아름답기까지
하다. 묵직한 니퍼를 하나 집어들어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그 차가운 감촉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기운을 북돋아본다. 오늘과 내일은
정말 오래 기다려 온 아주 중요한 날이니까. 힘내자.
[A delicate plan]
2014 3 9
For 넞님
선
생님의 말씀을 반쯤 흘려 들으며 회로 구조도의 도면 위로 샤프를 틱틱 거린다. 꽤 좋아하는 수업에 좋아하는 선생님이건만 집중하지
못하는 것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오늘은 수업같은 것 신경쓸 정도로 여유가 없는 게 진심이라.
현
재 시간은 14시 20분, 습도는 20%, 꽃샘추위도 끝난 6월의 월요일, 초여름의 오후는 따뜻하다기보단 뜨거운 햇볕으로 창문가의
책상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습도는 예상보다 약간 낮지만 이정도면 안정권이고 아직까지 계획에 문제는 없다.
<단서 하나, 기계는 부품이 하나만 어그러져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힐
끗, 참지 못하고 내려다 본 창문 밖으로 체육수업을 진행중인 목표물을 확인한다. 두리가 있는 2반과 연계수업을 진행할 가능성이
조금 있었는데 며칠 전 학년주임에게 축구 때문에 다쳐서 학업에 집중하긴 어렵지만 힘내볼게요, 라고 말했던 게 좋은 영향이 되어준
것인지 3반만의 단독진행이다.
그러게, 히스테릭한 체육선생의 변덕 따위로 3달 반부터 준비한 계획이 어그러지면 서운하잖아.
3달하고 보름 남짓, 생각해온 기간은 제법 길지만 애초에 실현가능성은 낮았던 계획이 내게 있었다. 뭐, 그렇게 거창하고 큰 계획은 아니다. 스케일로 따지자면 아주 작은 장난정도라고 할까?
어
제, 일요일 오후, 난 미리 준비했던 아주 작고 귀여운 부품 하나를 목표가 오기 전에 테이블 위에 원래 있던 양 올려두었다.
그리고 적절하고 적합한 시기에 그 부품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목표의 왼팔 안에 교체해 넣는 것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 바보처럼 만세! 라고 외치지는 않았지만 문득 입 밖으로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고 말았는데 정비의 이질감으로 음악을 듣던
목표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그의 귀를 막은 헤드셋이 아니라도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끔 잔인할 정도로 무심하니까.
내
가 준비한 부품은 본디 인조근육의 미세한 조정을 맡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경우엔 불량품이 아니라 정상일 경우의 이야기다.
불량품이라고는 해도 일부러 만들어 테스트를 거친 재미있는 장난감인지라 정상적인 일상활동에서는 문제없이 구동하지만-체온이 차차
높아지게 되면, 아주 느릿하게,
근육을 조금씩 녹인다.
창밖의 그가 몇번인가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을 취한다.
비틀 거린다 싶더니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짜증을 내는 것 같다. 그가 손목언저리를 잡고는 뭔가 움직이는 걸 보고 있는데 지잉- 아주 작은 진동과 함게 방과 후에 보자는 메세지가 내게 들어왔다.
나는 연하게 웃고는 약속장소를 지정하여 답신을 보낸다. '별관 동쪽문으로 와.'
다시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그가 이 장소로 올 것임은 알고 있다.
<단서 둘, 권리모와 권세모는 차하나를 신뢰한다.>
"야, 차하나!"
별
관 동쪽 출구 앞, 그가 오른 팔을 들어 인사하고는 거리를 좁혀왔다. 나는 얼결에 뒤로 물러서려던 걸음을 다잡고는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언제나 그를 만나기 전이면 잔뜩 긴장해서 힘이 들어간다. 표정은 괜찮은가, 말투는 어색하진 않은가. 나는 지금
'평소'처럼 보일까.
언제나라고 말해도 계속 가지던 습관은 아니다, 2월 중순의 그 어느 날을 기점으로 나는 그를 만나는 게 버겁고 어려워졌고 나와 그 날을 같이 보넀던 그는 마치 그런 일이 있었긴 하냐는 듯이 그 이전과 똑같이 행동했다.
그 '차이'는 내가 매꿀 수 있는 부류의 문제는 아니었으나 떄떄로-내 숨을 틀어 막곤 한다.
"이거 이상해."
어느 사인가 내 바로 앞에 선 그가 왼팔을 가리키며 짜증 섞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시큰둥한 표정과 툭 던지듯 말하는 그 입매, 오른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그 사소한 손끝까지도 눈으로 쫓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는 잠깐, 눈을 감는다. 아니, 별 문제는 아니다.
지
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은 과거의 습관일 뿐이다. 2월의 그 날, 차갑고 텅빈 교실 안에서 오직 권세모, 라는 한 소년을 기다리며
볼을 물들이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참아내던 그 이전의 차하나, 그 녀석의 습관일 뿐이다. 그 증거로-
"뭐가?"
지금 대답하는 내 심장은 빠르게 뛰지 않는 걸.
"오늘 체육시간에 움직일 때는 멀쩡했었는데 지금은 힘이 전혀 안들어가, 너 정비 제대로 한 것 맞아?"
제대로라고-물으면 정공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계획대로는 했는데.
"헤에"
아,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얼마나....힘이 안들어가는데?"
그가 잠시 고민하다가 왼손을 움직여본다. 약간 굽어진 팔 끝의 손가락 끝이 약간 움직일 뿐 늘어진 모양새에선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을 확인해 주듯 그가 한숨을 푹 내쉰다.
"주먹이 안 쥐어질 정도?"
아.
그렇구나.
내 계획은, 성공했구나.
나는 주변을 살핀다.
별
관 동쪽 출구는 후문과 가깝지만 문이 바깥 쪽에서 잠겨있을 때가 많아 이용하는 사람이 적다. 청소는 일주일에 화요일, 목요일만
한다는 것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리모아저씨는 말하지 않던가, 공학도는 섬세하고 치밀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맞는
말이다.
대화 중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내 행동에 당황했던지 세모가 반걸음, 뒤로 물러선다.
"너 갑자기 뭐하냐?"
"음...주변에 사람이 전혀 없네, 여기."
그 의 등 뒤를 가리키자 그가 몸을 돌려 주변을 살핀다. 만들어낸 사각지대 안에서 자연스럽게 몸을 숙여 발치에 내려둔 가방안에서 찾던 물건을 꺼낸다. 계획을 세웠던 시기의 동복이라면 주머니 속에 들어가서 자연스러웠을텐데 하복이라 교복에 숨길 수 없던 것이 조금 아쉬웠다.
뭐, 이 단계까지 와서는 별 상관은 없나.
"집에 가는 길이 인적이 좀 드물기는 하지."
그 가 다시 고개를 돌린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연한 보라색으로 물든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장되며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뭐하는 거야, 너? 나는 눈으로 대답하지 않고 상냥한 태도로 대답해주기로 했다. 응, 앞으로는 상냥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지금까지만이라도-
"응, 그거 확인한 거야 세모야."
안심해주렴.
치익 거리는 소리,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허물어지는 그의 몸을 받아낸다.
음, 내겐 조금 무겁나.
리모아저씨는 오지 않는다. 두리에게는 네옹이형과 함께 보라며 영화티켓을 줘뒀고-아버지는 애초에 리모아저씨와 같이 출장. 그 말은 이 공간을, 이 시간을 방해할 불순물이 아무도 없다는 결론과 같다.
하
얀 조명이 켜진 아저씨의 실험실, 인공조명 아래에서 나는 춤추듯 걷는다. 이런, 감정에 취해버린 것 같다. 공학도는 언제나
냉정해야 하거늘 그가 생각보다 늦게 정신을 차리는 탓이다. 각성제라도 놓아 주어야 할까 고민할 때 쯤에야-아주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등 뒤의 그를 확인하지 않고 입을 연다. 계획에 성공된 안도감은 나를 수다쟁이로 만들고 있다.
"세모야 있지, 그 때부터 난 쭉 기다렸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기억나? 그때...네가 날......찼잖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그는 대답하지 못한다. 찼다는 말로 단순히 고정화시킨 그 사건은 그 짧고 하찮은 세글자의 가치 밖에 없을까. 내가 뱉어 말하고는 그 단어의 가벼운 어감에 입이 씁쓸해진다.
그 씁쓸함을 되씹으며 나는 그를 마주한다.
그
는 저항하고 있었다. 나와 그를 제외하면 들어줄 사람도 없는데 쿵쿵거리는 의자소리가 강하게 울린다. 동물용 마취 스프레이로 몇
시간이나 정신을 잃고는 깨어난지 겨우 수분-의자에 묶이고, 테이프로 입이 막힌 와중에도 저렇게 온 몸을 흔들며 저항할 수 있다니,
청소년기 남자애란 참 튼튼하기도 하지, 부질없는 짓이건만.
혀를 낮게 차고는 그에게 얼굴을 기울여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아, 강해보이는 눈매와 마주친다.-나는 그의 눈을 좋아했었다. 신경질적이고, 그럼에도 곧고, 그럼에도 몹시 예민해 감정이 드러나버리면서도, 제가 포커페이스인줄 알았던 그 아둔함까지도 좋아했었다.
"응, 그래도 좋아했거든."
아, 지금도 봐, 일견 무섭게 화내는 것 같아도
-너는 지금 나를 무서워 하고 있잖아.
나
는 기지개를 켜고 노트를 꺼냈다. 나란히 필기되어 정돈된 항목들을 체크하여 줄을 긋는다. 응, 이동하는 두번째 계획도 클리어,
그리고 이제 세번째로 이행이네. 노트를 빼곡히 채우는 앞으로의 계획들에 웃으며, 그와 함께할 앞으로의 시간에 진심으로
기대하며-나는 웃었다.
단언하여, 지금 너와 함께 있는 나는 행복하다..
<단서 셋, 차하나는 권세모를 사랑하지 않는다. -지금에 한하여>
-
넞님 만화를 글로 로컬해 보았습니다:> 멋진 만화인데 제가 망쳐서 죄송하옵고도...다시한 번 넞님(@lnj_tobot)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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