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타마, 빛나던 그는 분명 망가지고 있었다. 몇 개의 건물, 몇 명의 사람들, 몇 개의 목숨-그 모든 것이 매스컴이라는 위명 속에서 몇 가지의 재해레벨, 몇 가지의 단어들로 포장되었고 그렇게 소비되었다.
뉴스속보라고 보도된 영상의 폐허와, 자욱한 연기 속에서 그의 망토자락이 보이는 것도 같았지만 곧 그의 제자-제노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가 또 이번 재해를 저지했다는 것으로 내일의 조간이 도배될 것이 분명했다. 원래 매스컴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뉴스를 바라보다가 커피포트의 물이 식어가는 걸 알고는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사이타마는 세 달 전부터 폭주했다. 어디에도 보도된 바는 없으나 아마 근접한 시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컵라면을 빠르게 먹어치우고 나서 가볍게 샤워를 끝내고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머리카락에서 젖은 물기가 시트 위로 뚝뚝, 얼룩을 만들었지만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해질녘의 긴 볕이 창문에서 쏟아져 내린다. 따뜻할 것 같은 주홍의 빛은 실은 온기조차 주지 못한다. 몇 년간 거주해온 내 방에 누워 있는데도 어쩐지 고독하다. 세 달 전에도, 지금에도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이 시간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나는, 나는-,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순찰조차도 돌지 못한다. 순찰을 돌지 못하는 날의 간격이 점차 줄어드는 것에 대해 염려의 말도 몇 번인지 모를 만큼 들었지만 아직은, 실로, 다행히도-사이타마가 폭주하는 날과, 그가 순찰을 쉬는 날이 겹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단언컨데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분명하고 명백한 순서에 의존하고 있다.
빛이 줄어든다-방이 어둑해졌다. 보라색 어둑함으로 사방이 잠긴 사이에 문손잡이에서 거칠게 금속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소모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탄식으로 눈을 감았다.
-
처음은, 비 내리는 날이었다. 세달 전 쯤이었다.
문에서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의아함에 문을 열자 비에 흠뻑 젖은 그가 서 있었다. 비 비린내인줄 알았던 지독한 비린내에 숨을 참는 사이 그가 실내가 들어서자 그림자 걷히며 피와 체액이 섞여적셔져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서늘한 눈으로 다가선 그에게서는 비린내와 살기가 짙게 뿜어져 나왔다. 낯선 느낌에 이름을 부르기에도 망설여진 만큼, 수건이라도 건넸지만 이윽고 그의 손이 내 목줄을 쥐어 잡았다.
퍽. 그리 강하게 치지 않았는 것 같은데 침대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리고-현실에 채현되는 악몽.
학대, 폭력, 묵언으로 가해지는 행동들은 그저 힘을 발산하기 위한 것도 있었고, 때로는 그것이 성적으로 표현되는 날도 있었고-곧 성적인 경향이 짙어졌다. 왜? 어째서? 네가? 온통 의문과 혼란과 고통만을 남겼던 그 처음의 밤.
다음 날 사이보그 주제에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제노스가 잠든 그를 데려가며 내게 일러주었다. 선생님은 망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차라리 자신에게 향하면 좋겠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제노스의 앞에서,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했던 것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누군가 대답들을 알려주면 좋을텐데.
이유는 어려워서 알지 못하겠지만 분명한 형태로 사이타마는 망가졌고, 나는 그의 밑에서 그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들을 함께 나눠 받았다. 받았다는 표현에는 문제가 있을련지도 모른다. 그 행위 어디에도 내 선택은 주어지지 않았는데 저항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될까? 하지만 그 무력 앞에서, 아끼는 친구의 고통 앞에서, 실제로 저항해도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걸 알면서-내가 저항하지 않았다는 게, 무슨, 어떤 영향력이 있단 말일지.
몇 번의 밤, 몇 번의 참담한 아침, 제노스의 얼굴-이제는 만나면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시선을 엇갈려 보내는 어색한 그 시간들, 그런 것 보다도 잔인한 것은, 그였다. 너였다. 빌어먹을 사이타마. 내 친구, 내 영웅.
악몽같은 밤이 지나면 다시 그 씁쓸한 아침이 왔고 나는 가까스로 몸을 추스려 다시 언제나와 같은 낮을 살아간다. 그리고 낮의 너를 마주한다. 낮의 너는 아무 문제도 없다. 멍청한 얼굴로 웃거나, 게임 이야기를 하거나, 과자 이야기를 하거나-때로 새로 생겨난 내 상처를 염려해 주거나 한다. 아, 너의 염려들, 너의 걱정의 말들. 아. 그것이, 실로, 그것이-
가장 잔인하다는 것을, 너는 알까?
제노스는 말했다. 끝내자고, 스승에게 말해야겠다고. 빈도는 점차 줄어들었고, 폭주하는 날은 늘고 있었다. 사이타마는 분명히 망가지고 있다. 그 스스로 그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밤의 일들도 깨닫는 순간이 오겠지-하지만 나는 친구인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
상처받고 있다고? 수치스러웠다고? -너 는 기 억 도 못 하 는 데
빌어먹을 일이다. 더 빌어먹을 일은-아침의 찰나였다. 제노스가 문을 두드리기 전의 찰나. 죽은 듯 얕은 숨소리를 내 곁에서 내며 아무 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얼굴, 숨결, 아-가까이 하면 따뜻하게 번지는 그 작은 숨소리가, 기뻐서.
그 고통도, 참아내야만 하는 밤의 시간도-그나마 네가 타인이 아닌 나를 선택해서, 내게 와주었다는 사실이 기뻐서. 그래서-내가 이 젠장할 일들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데.
분명히 올것이다. 끝은, 분명히-
하지만 그 끝을 정하는 건 내가 아니었다. 시작한 것도, 끝내는 것도 온전하게 네 손에. 비겁하다고 해도-나는, 너를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까.
-
스타폴(@Star_fall)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최대한 취향을 고려해서 써봤습니다. 빌런 좋아하신다고 해서:> 이런 글이지만, 좋아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