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펀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닉무면] 1월은 너의 日과 1 (0) | 2016.01.24 |
---|---|
[사이무면] 그런 종류의 의도와 방향성에 대해서. (0) | 2016.01.23 |
[신인무면] 한가지 거짓말 - 下 (0) | 2016.01.20 |
[신인무면] 한가지 거짓말 - 中 (0) | 2016.01.20 |
[신인무면] 한가지 거짓말 - 上 (0) | 2016.01.17 |
[습관]
2016 01 22
집에 돌아오면 문 앞에 선다. 11시에 가까운 늦은 시간이지만 도착한다고 해서 바로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지는 않는다. 그저 문 앞에 서서 불이 새어나오는 것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 문을 두드린다. 집안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금새 문이 열린다.
"왔는가."
노랑과 주황으로 번지는 전구 아래에, 소매를 접어올린 차림의 그가 웃으며 나를 맞이한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달콤하고 오글거리는 말이나 호칭 같은 건 존재하지 않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현관에 서있는 그 모습 만으로도 솔직히 낯설어서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난다면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쳤을지도 몰랐다.
벌써 며칠이나 경험한 일이건만. 몰려오는 머슥함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대강 신발을 벗어던지고 현관 안으로 들어가려다 늘 그렇듯 신발을 바로 정리하려는 남자의 동그란 등을 보게 되었다. 빛에 흐트러지는 갈색 곱슬 머리카락과 작은 등-그 등이 몹시 작게 느껴져서 문득 충동적으로 껴안았다. 그는 잠깐 버둥거리더니만 곧 잠잠해 졌다
"매번 이런 행동은 곤란한데. 가로우군."
씁쓸함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가 품 안에서 조그맣게 들려온다. 체온, 부스러지는 머리카락의 촉감이 턱밑에 닿아 흐트러진다. 슬쩍 보이는 귓가가 붉은 게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만 손을 놓지는 않았다. 그는 조금 망설이는 가 싶더니 추위에 온도가 내려가 있던 손을 맞잡으며 입김을 불어 넣었다. 겨울이었다. 이 집에 온 것도, 이 집에서 둘이 살아가기로 했던 것도.
"힉-! 가, 가로우군?"
"애라며, 봐줘야지."
검은 터틀넥 사이로 손을 넣고는 딱딱하지만 표피는 부드러운 피부를 어루만진다. 따뜻해. 그는 하지말라느니 이런 저런 도덕책에 나올 것 같은 말들을 계속 중얼거렸지만 그래도 바로 빠져나가지는 않았다. 같은 냄새. 나와 같은 비누를 쓰니까 같은 냄새가 나는 것도 당연하지만 이상하게 그에게서는 더 부드럽고, 온화한 향으로 변하는 것도 같았다.
"자, 잠깐만-"
나는 그를 안은 그대로 시선을 올렸다. 단조롭고 좁은 집, 장식물도 많지 않은 몇 안되는 세간-품안의 머리카락. 온도, 살아있고 움직이는 따뜻함, 그 존재. 코를 그의 머리에 묻고 샴푸의 향을 맡는다. 중독될 것 같다. 이미 어느 정도도 진행된 건지도 모른다.
"저녁먹어야지."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귀가 후의 이 일들-이런 것이 며칠이나 깊게 반복되었다. 마치 의식 같다고 말하자 무면허라이더, 그 남자는 나답지 않게 서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며 웃었다.
"의식이라면 목적이 필요하겠지? 그렇다면 가로우군이 행복해지기 위한 의식인걸로 하자."
솔직히 가로우군이라는 호칭도, 그 딱딱하고 재미없는 말투도 모조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멍청하게 해실거리는 표정을 보고 있으면 정정하거나 싸워야 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 귀가, 이 집, 이 사람에게. 어쩌면 영원히 이렇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아, 어린 시절에서 교훈을 하나도 얻지 못했던 거지. 멍청하게도.
-
나는 오늘 밤에도 문 앞에 섰다. 문틈에서는 빛이 새어나온다.
현관에는 원래 백색등이 달려있었지만 그가 청했던 장보기에서 내가 착각을 하는 바람에 주황색 등이 되었고 그 후 계속 주황색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는 주황색이 더 따뜻해 보여서 잘했다고 말했지만 처음 청한 일을 실패해서 며칠이나 속이 좋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바꿔 단지도 한참인데 아직도 버티는 걸 보면 비싼 가격을 주고 샀던 보람은 있었다.
벨을 누르지 않았다.
의식이니까. 행복해지는 의식이라고 그가 말해 주었기 때문에.
어떤 기묘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리자 복도는 불꺼진 문들과 어둠과 삭막함만이 있었다. 아니, 귀를 기울이면 어느 집에선가의 저녁냄새와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가 카레를 만드는 날이 좋았다. 야채가 많고 고기는 적은 집카레는 그 맛보다도 문 밖으로 풍기는 향이-이상하게 그리운 느낌이 들어서.
이번에는 문도 두드리지 않고 오토록을 열었다. 이 비밀번호는 그가 알려주기 전에 먼저 알았었다. 처음엔 자전거를 잠그는 걸 보고 혹시나 싶어 그 번호가 맞냐 물었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쑥스러운 듯 웃더니 생일이라고 말했다. 봄이었구나. 썩 나쁘지 않다-아니, 오히려 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로 한 번도 잊지 않았다.
선물을 주기 위해 봄을 기다렸다. 그 때 산 반지 두개는 내 목에 걸려 있다. 계집애 같은 줄은 아니고 그냥 끈에 매단 것 뿐이다.
"다녀왔다."
대답은 없다. 불이 켜진 집은 서늘했다. 그래, 집 안에는 아무도 없다. 당연하다-이 집의 주인이던 무면허라이더, 그는 1년 하고도 14일 전 폭발사고로 죽었으니까. 무해한 고등학생 같은 얼굴로 하고선 지금의 나보다 5살 많은 나이로 그는 영원히 스물다섯살-그 나이인채로 집을 나서서 돌아오지 않고 그 나이로 고정되었다.
그가 텔레비전을 보던 코타츠 위, 유리병안에는 그의 뼛가루 일부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가루는 그저 의미 없는 회백색 가루일 뿐 그의 흔적이라고 하기는 턱 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어이. 인사해야지."
병에 말을 걸어본다. 의식은 반토막이 나고 다시 반 토막이 되어 아무런 과정조차 남지 않았다.
그의 유언이라고 들었다. 작은 집이지만 내가 이 집을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행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멍청하기는.
등을 다시 백색으로 바꿀까. 하지만 의미는 없을 것이다. 백색등 아래에서 그가 맞아준 날도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바꿔야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 몇 번인가 고민을 반복한다. 이제 시간은 오후 11시 5분. 조금 더 일찍 와주면 좋겠다고-그렇게 말했던 날도 있었다.
코타츠의 왼쪽에서 벽을 등지고 그가 앉아 있었다. 나는 언제나 오른 쪽에서 벽장을 등지고 앉았었다. 1년하고 14일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도 오른쪽에 앉아있다. 가끔 변덕으로 다른 자리에 앉았다가도 화장실에 다녀오면 다시 오른쪽 자리였다. 몸에 밴 습관이었다.
어쩌면, 이건 그가 내게 주는 벌일까. 묻고 싶은 건 많은데.
너는 없어.
-
시민(@luv_rider)님, 동거/귀가를 기다리는 동거인에게서 느끼는 새로운 기분 키워드로 조각글.
[소닉무면] 1월은 너의 日과 1 (0) | 2016.01.24 |
---|---|
[사이무면] 그런 종류의 의도와 방향성에 대해서. (0) | 2016.01.23 |
[신인무면] 한가지 거짓말 - 下 (0) | 2016.01.20 |
[신인무면] 한가지 거짓말 - 中 (0) | 2016.01.20 |
[신인무면] 한가지 거짓말 - 上 (0) | 2016.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