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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2014 10 21
For 생강맛과자님
구두를 벗자니 며칠동안 혹사당한 발에서 뻐근한 느낌이 올라왔다.
답답한 쟈켓과 넥타이를 벗어 소파 위에 올리고 잠시 앉아 쉬다가 갑자기 몰려드는 갈증에 주방으로 향했다. 차가운 물 한잔을 꺼내 마시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불쾌한 냄새가 느껴져 고개를 돌린다.
어딘가 했더니 개수대에서 나는 냄새였다. 나흘 전에 먹었던 닭도리탕의 잔해가 묻은 2인분의 그릇들, 그 아래로 보이는 것은 아침식사에 사용했던 식기일까, 나흘이나 지났는데도 그릇을 보고 있자니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게 기억나는 아침식사를 생각하다가 고무장갑을 꼈다.
겨울에 가까워진 계절이라 심하게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닭도리탕의 기름기가 조금 미끄러워서 깨끗하게 닦아내는 것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워낙 간소한 식구인지라 그릇의 물기를 정리하는 뒷정리까지 포함해 깨끗한 개수대로 돌려놓는 것에는 1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고작, 10분 정도의.
방으로 돌아가 방전된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갈아 끼웠다. 순식간에 들어오는 문자들과 부재중 이력, 가장 가까운 문자는 들어온 지 채 3분도 되지 않았다. 하나의 문자였다.
[힘들면 전화해, 저녁 먹으러 오지 않을래]
식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예의상의 짧은 답신을 보낼 기력도 없어 침대에 드러누워 다른 문자들을 이어 확인해갔다. 괜찮니, 수 없이 안부를 물어오는 말들의 수신인은 친한 이일 때도 있었고 이름만 아는 학교 급우일 때도 있었으나 한 결같이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아마도 평생 들을 만큼의 우려의 말들을 사흘 동안 줄곧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괜찮다니, 무엇이?
감상도 없다 못해 지겹게까지 느껴지기 까지 한 지리한 문자들의 나열을 지나, 시간의 텀을 한참 둔-유난히 긴 문장에 눈이 닿았다.
[세모가 한참 민감한 시기인데 아빠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이만 들어와, 요새 날씨도 많이 추워졌는데 옷도 그렇게 얇게 입고 나가서는 감기라도 들면 어떡하니? 요즘 세상도 흉흉하니까 너무 걱정시키지 말고.]
"감기 안걸렸어요."
휴대전화에 말했다. 난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쌀쌀한 밤에 나갔지만 곧장 휴대전화를 끄고 PC방에 갔고, 다음 날 아침에 멀쩡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문자에 답신을 보냈다.
[아빠도 돌아와야죠. 너무 걱정시키지 말고.]
하지만 답장은 아마도 오지 못할 것이다.
-
그 날 밤에 우리는 크게 다퉜다.
싸우게 된 계기는 어이없게도- 설거지였다. 시간은 저녁 아홉시를 넘겼고 나는 푸짐하게 나온 닭도리탕을 아직 먹고 있었고 먼저 식사를 마친 아버지는 도운아저씨와 잠깐 의논할 게 있다고 일어서며 설거지를 부탁해왔다.
"다녀와서 하시면 되잖아요?"
"좀 늦게 올 것 같아서 그래, 몇 개 안되니까 해줄 수 없겠니?"
"저 공부할 건데요, 곧 수능이잖아요."
설거지, 그 까짓 일 10분도 걸리지 않는데도 오기로 투정을 부리던 사이에 아빠가 화가 났고, 뭐 그 다음에는 흔하게 있던 다툼이 되었다. 수시에 떨어진 후에 잔뜩 예민해진 신경으로 이렇게 저렇게, 몇 달전에 있었던 사소한 일까지 죄 꺼내서는 생각해내기도 유치한 말다툼이 이어지다가 결국 나는 가디건만 하나 걸치고 집 밖으로 뛰쳐 나가 버렸다. 쌀쌀한 날씨에 주머니에 손을 찌르자니 아버지가 전화를 해왔고-곧 그 화면마저도 귀찮게 느껴져 휴대전화를 껐다.
유치하게 싸웠냐며 타박할 파일럿 애들을 생각하니 친구들에게 연락하기도 조금 머쓱해서 결국 지갑 안에 달랑 있는 만원짜리 두장을 들고 PC방으로 향했다. 야간으로 시간을 끊어 요 근래에는 하지 않았던 유행 게임들을 이것저것 건드려보다가 컵라면도 하나 사먹고, 새벽 쯤에는 게임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꾸벅꾸벅 졸다가 집에 돌아온 것은 아침 무렵이었다.
"다녀왔습니다-"
기묘한 귀가였다.
집은 아무리 아침인 시간을 고려한다고 해도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고, 식탁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신발이 현관에 없는 것을 보고는 도운아저씨와의 논의가 길어져 자고 오는 건가 생각하며 등교를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밤 사이에 배인 담배냄새를 지우려면 일단 샤워부터 해야 할 판이었다.
그 즘에, 두리가 찾아왔다. 전화기랑 통신기능은 왜 꺼둔거야!! 소리치는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서는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한 대, 세게 맞았다.
두리의 손에 붙잡혀 제트에 태워지고, 띄엄띄엄 두서 없는 이야기를 주워 들을 때 까지도 나는 지난 밤에 일어났다는 그 무서운 말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몇 분 뒤에 나를 따라 나섰다고 했다. 두리의 집에 먼저 들렀다가, 곧 상점가로 나서서는 이 가게 저 가게를 떠돌다가-차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하필이면 뺑소니여서 신고도 늦었고 연락을 받은 도운아저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뒀다고 했다.
불쾌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나는 병원에 도착했고, 도운 아저씨한테 한 대 더 맞았고, 큰 소리로 울고있는 하나와 딩요 앞에-이미 준비된 영정사진까지 보고 나서야 두리의 말들이, 이 일련의 드라마같은 사건들이 농담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렇게 나는, 사흘을 그 곳에 있었다.
-
허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배에서는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습관처럼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자 먹다남긴 닭도리탕이 유리 그릇에 담겨 예쁘게 랩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젓가락 한쌍만 들고 식탁에 앉아 랩을 벗긴 요리를 한입, 입에 가져다 댄다. 원래도 맛이 없었지만 상했는 지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기에 씹기도 곤란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요리를 남기는 걸 싫어하니까, 이렇게 맛 없는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도 권유하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며 씹어 삼켰다. 한 입, 두 입, 곤혹스러운 시간이 끝나고 결국 그릇을 모두 비우고 개수대에 물을 부어 담가 두었다.
"그냥 두세요-곧 제가 할게요."
나는 그가 앉던 자리에 대고 말해보았다.
"잠시만 쉬었다가 제가 할테니까, 아버지는 빨리 다녀오세요."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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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생강맛과자님(@Tbot_ginger)님에게 권부자, 설거지 키워드로 리퀘스트 받았습니다.
늦게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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