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소년
(無害少年)
-2015/1/31-
거울 속에 소년이 서있다.
빗질해 단정하게 정돈된 갈색머리카락과 어린아이의 흔적이 남은 둥그스름한 턱과 뺨, 유순한 눈에 지극히 평범한 이목구비는 여느 아이의 것과 같아서. 눈을 감는 순간 그 특징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릴 것 같다.
손가락을 뻗어 소년과 닿았다. 겹쳐진 손끝에서는 서늘하고 차가운 감각이 올라온다. 거울 속 소년의 입술이 움직인다. 짤막한 문장의 연속,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주문과 같은 말, 이윽고 거울 앞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으나 소년이 뱉어낸 말소리들은 자국으로 남아 아주 작은 소리로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메아리처럼.
-
꼭 징크스라고 말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차하나와 함께 외출하면 습관처럼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네, 우체국은 이쪽으로 가서 4번 버스를 타면 되요.”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선한 웃음을 지으며 낯선 여성에게 인사를 건네는 하나의 뒷모습을 보던 세모가 불퉁한 얼굴로 혀끝을 낮게 찼다.
“오늘만 두 번째네, 정 길을 모르면 경찰한테 물어보거나 스마트폰으로 검색이라도 하면 될 텐데.”
“길 설명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뭐.”
하나는 언제나처럼 얌전한 얼굴로 연하게 웃고는 가던 길로 다시 방향을 잡았다. 하나의 속눈썹 끝에 작은 눈송이가 맺혔다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던 세모는 한 박자 늦게야 하나와 발걸음을 맞출 수 있었다.
얼마 전 뿌려지기 시작한 눈발은 조금 굵어져 있었다. 종이를 찢은 것처럼 굵직한 눈송이는 그럼에도 쌓이지 않고 손끝에 닿으면 흩어질 정도로 연약한 것들이었다. 간만에 하는 둘만의 외출이다.
가만히 걷던 길에 하나가 주섬주섬 말을 꺼냈다. 부쩍 풀려진 날씨에 입김도 연해져 있었다.
“아빠가 말이야.”
잠시 멈추는 목소리,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세모는 하나가 말하는 내용을 떠나 그가 말하는 목소리나 어조를 좋아했다. 조근조근 울리는 목소리는 평이했지만 아주 작은 리듬이 있어서 가만히 들으면 잔잔한 노래 같았다. 어렸을 때는 하나도 쉽사리 흥분했던 것도 같은데 나이를 먹으면서 그는 퍽, 얌전하고 조용해졌다.
“아빠가 언젠가 말했어. 사람들이 길을 쉽게 물어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길을 가다가 조폭 같이 생긴 무서운 사람이나 신경이 날카로워 보이는 사람한테는 길을 물어보지 않잖아? 네가 길을 물어봐야 한다면 길 위에 있을 사람들 중에서 가장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모나거나 퉁명하지 않고 상냥해 보이는 사람을 고르게 되는 거야. 아빠는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어.”
막연한 이상론이네, 세모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하나가 웃고 있었으므로 딱히 그 이야기를 부정하지는 못했다. 하나의 말은 결국 만만하고 쉬워 보이는 사람이란 뜻이 아닌가. 받아칠 말이야 있었지만 결국에는 웃으며 가능한 말을 골라 대꾸했다.
“그럼 하나 넌 그런 사람이 이미 된 거네.”
하나의 갈색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가 잠시 뒤에 호선을 그렸다.
“그럴지도.”
하지만 그 대답은 어쩐지 지금의 눈송이처럼 부질없이 흩어지는 부류의 것이었다.
돌아선 골목어귀의 보도블록 위에서 까치의 시체를 발견했다.
발간 내장이 밖으로 내비쳐 있었으나 서늘한 날씨에 벌레가 꼬이지는 않았다. 그저 약간 불쾌했고 조금 징그러워 몇 걸음 떨어져 돌아가는 찰나에 시체 어딘가로 하나의 시선이 맺혔다가 돌아가는 것을 본다.
“까치는 예전에는 좋은 징조였잖아.”
“그렇지. 좋은 손님이 오면 운다면서.”
세모는 연하장을 떠올렸다. 지금은 많이 주고받지는 않지만 아버지가 해가 바뀔 때마다 사는 그 하얀 카드 위에는 지나친 시체와 같은 검고 흰 새가 몇 마리고 그려져 있곤 했다.
“지금은 아니라고 일수가 말하더라고, 마을에도 자꾸 출몰하고 농작물도 해치고 해서 가끔 공기총 가지고 사냥하는 사람도 있는데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뭐라더라- 아, 유해조류라고 했어.”
“농부들도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 까치가 먹어서 상품이 손상되면 제값을 못 받을 테니까.”
“어쩔 수 없다, 려나.”
하나의 눈길이 문득 지나온 길에 닿았다. 찬바람에 살짝 일어난 입술이 달싹 거렸다.
“까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그 걸 보면서 어느 때는 좋다고 하고, 어느 때는 나쁘다고 말해. 그건 참, 이상한 것 같아.”
솔직히 말해 세모는 하나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부분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나의 말은 이따금 고작 중학교 1학년생이 말하는 것이라고는 들리지 않을 만큼 서늘한 기색을 하고 있었고, 그렇듯 말하는 목소리는 딱히 세모에게 말하는 것이 아닌 허공에 던지는 소리 같아서, 하나가 제 곁에 있는데도 꼭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하나의 걸음이 멈췄다.
“여기, 네가 말한 간판이다.”
목적지에 당도했다.
부득이 같이 오겠다는 두리를 갖가지 구질구질한 핑계로 만류하고 세모가 찾은 곳은 딩요가 맛있다고 말했던 화덕피자 전문점이었다.
고급스러운 가격표를 빠르게 살핀 세모가 지갑의 두께를 살짝 재어본다. 중학생의 신분으로는 빠듯한 가격이지만 그래도 한 달을 꼬박 모아둔 용돈은 다행히 넉넉하지 싶다.
“분위기 좋다.”
“그러게, 일단 피자랑 파스타 하나씩 시킬까?”
“난 잘 모르니까 너 먹고 싶은 걸로 골라.”
머플러를 풀어내는 하나는 실제로 메뉴판을 거의 보지 않았다. 기왕이면 좋아하는 걸로 먹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아무거나 괜찮아, 딱히 편식은 안하니까 너희들 취향에 맞춰도 돼. 그건 정말 싫어하는 게 없다는 부류의 좋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세모는 하나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해지곤 했다.
우리가 만나고 벌써 몇 년이 지났나, 이만큼의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취향을 잘 모르겠다. 알지 못한다는 것은 곧 낯섦인데 그 낯설다는 단어를 하나에게 적용하고 싶지는 않으니 구태여 부인할 뿐이다.
직원이 다가왔기에 기억을 더듬어 딩요가 추천했던 치즈가 들어간 피자와 토마토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유리잔에 담긴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머리카락을 쓸어 정돈한 하나는 가게에 울리는 올드팝의 멜로디가 마음에 드는지 얕은 목소리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조그맣게 달싹거리는 입술의 움직임을 쫓고 있자니 하나가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무슨 일이 있나 눈짓으로 물어오기에 애꿎은 물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난방이 잘되는 지 실내가 약간 덥다.
곧 요리가 나왔다. 꿀을 찍어먹는 피자는 약간 느끼했지만 취향에 어긋나지는 않았다. 하나 만큼 아무거나 괜찮다는 축은 아니지만 세모도 딱히 음식을 가리지는 않는다. 토마토스파게티를 말아서 입에 넣다가 양송이버섯 하나를 또 탁자 위에 흘렸다.
“포크가 좀 큰가.”
어색하게 말하며 포크 핑계를 대자 냅킨을 뽑아 건네던 하나가 피식 웃었다. 자신의 앞에는 양송이버섯이며 붉은 소스가 점점이 얼룩을 만들고 있는데 하나의 자리는 접시를 제외하면 처음 행주로 닦아낸 것처럼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입크기로 잘라진 피자의 조각이 자로 대고 자른 양 반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것은 꼭, 포토샵으로 잘라낸 인공사진 마냥 불편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화장실 갈까, 같이 갈래?”
“같이?”
하나는 조금 의아한지 되물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자 곧 세모의 뒤를 따랐다. 화장실로 향하는 복도와, 그 곁에 자리 잡은 대기실 같은 공간은 거울과 테이블, 소파 등으로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구석구석 보아도 좋은 곳이었다.
‘나, 응원할 테니까.’
이 장소를 권유하며, 분홍머리카락 아래의 눈을 반짝이며 발랄한 목소리로 말하던 목소리를 떠올리며 점퍼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래, 힘내야지.’
주머니 속, 손끝에 만져지는 사각형의 작은 상자 안에는 오늘 이 음식 값과는 비견하기 힘들만한 값어치의 반지가 들어있었다.
하나는 화장실에는 용무가 없는지 입구에 멈춰 섰다. 힐끔 하나를 보자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이는 것에 세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장실에 들어가 만지작거리던 상자를 꺼내 열었다.
우주선 소재라던가, 오공이 추천해준 금속재질의 링이 두 개, 각각 오렌지색과 붉은색의 가는 선이 세공되어 있는데 색을 낸 소재 또한 영구히 보존되는 색이라고 했다. 본디는 가지고 있는 파트너의 색을 맞춰 하나가 오렌지 색, 제가 붉은 색을 사용해야 맞겠지만 오늘은 그 색을 바꿔 끼우고 싶었다. 하나의 손가락에 이 반지가 끼워진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세모는 웃음을 짓고 마는 것이다.
식사는 거의 마쳤으니 테이블을 치우고 커피를 시키는 게 좋겠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가 반지를 건네며 아마도 하나도 알고 있을 그 말을 건네며 반지를 끼워주는 것이다. 분명, 하나는 기뻐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반지를 주머니에 다시 챙겨 넣고는 세면대에 물을 틀었다. 아니, 그러려 했다.
“?”
문득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그 소리는 평범한 목소리 같았지만 일반적인 대화라기에는 이상할 정도로 평이해서 마치-꼭, 언젠가의 교회에서 들었던 기도문 같은.
“-되어야 해.”
세모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순식간에 화장실 안의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간 듯 등골이 서늘해졌다. 주변의 공기가 내려앉는 것을 느낄 정도로 이상하게 차분한 느낌이다. 전에 없던 신중한 태도로 움직여 소리가 나ㅑ지 않을 정도로 느리게 손잡이를 내리고는 천천히 문틀과의 틈을 벌린다.
“-하고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착하고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낯선 어조, 모퉁이를 끼고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꼭 하나의 것 같았지만 세모가 알던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나는 조금 더 밝고, 상냥하고 활발한 목소리를 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처럼 얕고 서늘한 울림을 하지는 않았으니까, 이 목소리는 하나의 것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생각한 세모는 모퉁이를 돌아섰다.
아, 역시 착각이었다. 언제나처럼 웃는 얼굴의 하나가 사심 없는 얼굴로 밝게 말을 걸어왔다.
“빨리 나왔네?”
“어? 어.”
“여기 가글액이랑 고데기도 준비되어 있더라, 큰 가게라서 다른가봐.”
가글액이 나오는 자판기를 가리키는, 호기심 어린 얼굴에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며 세모는 괜한 태도로 입매를 매만졌다.
“저기, 방금 혹시 목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되묻는 말에 세모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무 것도.”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두 잔 시켰다.
불투명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눈이 멎은 것을 알았다. 되살아난 오후의 햇빛이 비스듬히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해 하나의 머리카락 끝이 황갈색으로 부셔져 내리는 것은 아름다운 순간이었지만 그 모습을 마주한 세모의 눈동자는 초점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째서?”
세모의 질문에 하나는 평범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유가 필요한가? 보통이라면 거절하는 게 당연하잖아.”
마치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었냐고 묻는 말에 대꾸하는 것 같은 여상한 말투에 세모는 다시금 설명을 요구했다. 저도 모르게 말아 쥔 테이블보가손바닥 안에서 구겨진다. 어깨를 으쓱인 하나는 티스푼을 들어 커피를 느슨하게 젓더니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동성연애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잖아.”
“그게 무슨-”
“우리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야, 네가 괜찮다면야 나까지는 괜찮지만 그런 사람과 가족이라는 편견이나 불쾌한 시선을 아빠나 두리에게 끼칠 수는 없어, 물론 리모아저씨에게도 안되고 우리와 관계된 사람들 모두가 연관되겠지. 그건 해로운 거고, 그렇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어.”
하나의 말은 세모가 생각했던 어떤 거절의 말과도 달랐다.
차라리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연애감정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면 조금은 기분이 나았을까. 이렇듯 앉아있는 의자부터 바닥에, 깊게 박혀 들어가 검고 진득한 무언가에 먹히는 듯 아득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까. 수많은 가정들은 복잡하게 얽혀 일어나지 않은 방향으로 향한다.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뭔데?”
세모는 문득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말들이 저절로 거칠어지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하나의 얼굴에 제 말투를 수정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느끼지 못했다.
하나의 말들은 실로 터무니가 없는 대답이었다. 그 대꾸는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세모의 질문에 대한 온전한 대답이 되지 못했다.
“글쎄, 좋은 사람은 아니겠지. 무해한 사람도 아니고.”
이 순간에 분명한 것은 하나가 틀렸다는 것이다.
하나는 스스로를 무해한 사람이라고 칭했지만 세모는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 적어도 하나의 목소리만은, 지금의 말들을 비롯하여 충분히 세모에게 유해했다. 그래, 하나가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 말하는 대상이 두리나 도운을 비롯한 모호한 다수를 칭하고 있다면 이 자리의 세모는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하나에 대한 아득함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문득 세모의 뇌리에 화장실에서 들었던 그 작고 기묘한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착하고 상냥하고 좋은 사람.
그 모든 단어들은 모호하고 불분명하고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명백하지 않은 단어들인데-신기하게도 지금의 일상 속에서 하나는 그런 말을 자주 듣고는 했다.
‘잘못됐어.’
세모는 절실하게 알았다.
다만 방금의 말을 끝내고도 아무 일이 없었다는 양 팝송의 멜로디를 중얼거리는 하나의 모습에서 이 그릇되고 틀린 방향들을 어디서부터 붙잡아야 할 것인지 따위가 막연하게 느껴졌다.
마음으로 정했던 주인이 거부하여 상자 안에 그대로 남은 두 개의 반지를 손으로 거둬 주먹 안에 모아 쥐었다. 달칵, 상자가 닫히는 소리위로 지금 굳게 다짐한 소망도 마음 안에 갇혔다.
‘하지만 기필코.’
세모는 이를 물었다.
이토록 암담한 순간에서도 눈앞의 소년은 이다지도 예뻤고, 마음 속 깊이에 달콤하게 새겨진 마음이래야 변하지는 않았다. 다만, 돌려놓아야 할 뿐이다. 본디의 모습으로, 그릇되지 않은 방향으로.
‘내가 너를.’
설사 생각한 방향의 해피엔딩은 아니더라도, 본래의 너에게서 거절의 말을 듣기 위해서.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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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배포하려던 글을 웹공개하게되었습니다. 다시 보아도 참 취향탈 글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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