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펀맨2016. 5. 7. 08:41

 당신이 눈을 뜨기를 바라고 있어. 당신과 아침을 함께 시작할 수 있기를-


 아니 차라리 눈뜨지 않기를-조금 더 이시간 속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동시에 바라는 어떤 마음들. 나는 이렇게 멍청하지만 이 두가지의 마음은 모두 진심입니다. 이 마음, 아마 당신은 모르겠지만.






[Say, yes]

-for 타케님


2016 05 07





 연인이 생긴다면, 이라는 바보같은 가정 속에서 한번 정도-아니 사실은 제법 많은 빈도로, 가상의 아침을 꿈꿨던 날이 있었다. 함께 뜨겁고 격렬한 밤을 보내고 새벽같이 먼저 일어나, 달콤한 향을 풍기는 핫케이크를 굽고, 진한 커피를 내리고, 사랑하는 당신이 아직 잠들어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깨울까, 깨우지 말까를 고민하다가 그래도 식은 커피를 주기는 싫어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몇 번이나 쓰다듬다가 가능한 상냥한 목소리로, 일어나세요. 하고 말하는 그런 아침을.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은 가정하던 상황과는 이렇게나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모양이었다.


 침대위에 자리한 것은 꿈 속의 하얀 시트가 아닌 늘 덮던 평범한 디자인의 제 이불이었고, 그 이불 속에 파묻혀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있는 사람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으며-상상보다는 훨씬, 훨씬-아니 상상보다도 훨씬, 사랑스럽다는 차이를.


 남자는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이불 속에서 평소보다도 심각한 상태로 제멋대로 뻗어있는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다가 입술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따뜻한 핫케이크를 먹게 해주겠다고 생각했지만 식어서 핫케이크를 버린 것이 벌써 3번, 커피도 포트에서 2번이나 쏟았다. 하지만 이렇게 잠들어 있는 사람을 깨운다는 것은 남자에게 있어 굉장한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가능하면 그가 평온하게 조금만 더 잠들기를 바란다, 가정하기에는 깨운다는 행위가 이토록 가혹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역시 현실과 망상에는 차이가 있다.


 사실-더 씁쓸한 차이라면, 하나 커다란 게 있긴 하지.


 그는 자신의 연인이 아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정해야 했다. 연인의 가정 속에 등장했던 묘령의 여성이 이 이불 속의 남성으로 바뀐 것도 이미 몇 달전이었다. 언제부터였지,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쩌면 그를 만나기 전부터 그를 좋아했는지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진실로 믿겨질만큼이나, 시작점을 모르는 마음은 자꾸만- 자꾸만 커져서 이윽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다랗게 부풀어 있었다.


 이렇게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사랑이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그렇다해도 이 치미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뭘까, 분명 사랑인데, 그런데.


 히어로협회의 직원이 기절한 그를 부축하는 것을 본 순간 본능처럼 알았다. 비록 업무적인 협력이라고는 하더라도 타인에게 피부를 접촉하며 안겨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제게는 몹시도 가혹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아아. 정말로-지금 이렇데 되새기는 것 만으로도 치밀어오르는 씁쓸함에 입 안이 온통 마비될 정도로.


 지인이라는 핑계를 대고 데려와 제 침대 안에 눕힌 그는, 상상하던 것 보다 훨씬 사랑스럽고, 훨씬 더 순수해보여서-괴롭다가, 좋았다가, 다시 괴로워지고 말았다.


 그렇게 잠든 그를 보다가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주방에서 멍청한 짓을 반복한 탓에 핫케이크와 커피의 향으로 뒤섞인 공기는 침실까지 번져서, 공기마저 단 착각마저 들었다. 아니 어쩌면 공기가 이토록 달콤한 것은 아침의 분주함 때문이 아니라, 이불 속의 당신 탓일까.


 지금은 아침이 아니지만은,


 당신은 연인이 아니지만은,


 그럼에도 지금 이 시간이 사무치게 달아서-감당하지 못할 만큼 아득해서.



 손가락을 만지고 싶어, 얼굴을 만지고 싶어, 꽉 껴안고 싶어, 어떤 느낌이 들지, 지금이 꿈이 아니라는 확신을 원해. 바라는 것, 원하는 것, 온통 감정들이 뒤섞여 엉켜졌다가 다시 흩어진다.


 깨우는 것까지를 가정한 아침이었지만 도저히 그를 깨우지 못하겠다.


 당신이 눈을 뜨기를 바라고 있어. 당신과 아침을 함께 시작할 수 있기를-아니 차라리 눈뜨지 않기를-조금 더 이시간 속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이렇게도 행복한데.


 어째서 이 시간이 깨져야 하나. 하지만 깨어나고 인사는 건네고 싶어서-


 복잡한 심경으로 안절부절하는 사이에 희미하게 그의 몸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가 이대로라면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앞치마를 벗어 침대 아래로 황급히 구겨 넣고는 저절로 거칠어지는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히히후-히-히-후-아아, 이건 라마즈 호흡이었나. 문가에 섰다가, 옷장에 기댔다가 결국 빛이 있는 창가에 자리잡고 몇 번이나 연습했던 말을 대여섯개 더듬어본다. 연습할 때는 괜찮다고 생각하던 말들이 어째서 이다지도 형편없이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가 결국 몸을 뒤틀기 시작해서, 시선을 맞춘다. 속눈썹이 떨리고 눈꺼풀이 올라가며 탁한 갈색 눈이 천천히 또렷해지는 과정을, 혹여 잊지 않기 위해 치밀히 쫓다가, 의아함에 흔들리는 시선에 눈을 맞추어 되도록 상냥하게 웃어보였다.



 "좋은 아침이지요, 무면허라이더씨-"


 "아...음...좋은...아침?"



 무해하고 연약하고 무방비한 당신이 가정하던 침대 위에 있는것 만으로.



 "네, 정말로-"



 Say, yes- 옳다고 밖에는 말하지 못할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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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현재(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