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PG-LOG2023. 7. 31. 22:05

만상은 변화하고 있었다.

달이 가득 찬 밤, 이것은 그 밤이 끝나기 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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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X3 「 ヴォーパルバニーダンス」  After talk

 

 

: 이하, 시나리오 내용을 포함합니다. 플레이할 계획이 있다면 열람에 주의 부탁드립니다.

 

시로가네 루이가 씻고 나왔을 때, 잃어버린 카드 키를 발급하러 간다던 류우미 아라이데는 어쩐 일인지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쓸데없이 길기만 한 몸을 꼬깃하게 접어서 소파 안에 끼어 있었다.

 

"왜 여기 있어요? 류우미씨~?"

 

가만히 불러도 보고, 토끼 귀가 사라진 동그란 머리통을 콕콕 찔렀다가 에잇 하고 볼을 찔렀는데도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 루이는 영 어른처럼 굴어도 동료가 고작 1년 반 전에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다녔던 어린애라는 것을 상기하는 동시에 21살이면 남자도 볼이 말랑말랑하구나라는, 한 번도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를 얻었다.

 

"그래도 얼굴은 많이 나아졌네."

 

마주칠 일이 있었지만 임무를 피한 건 루이 쪽이었다.

처음 마주쳤던 류우미 아라이데는 엉망으로 상처 입은 들개 같았다. 그것도 사람 손을 제법 타다가 버려져  목줄이 목에 파고들어 피와 고름이 끊이지 않는- 잔뜩 예민해진 떠돌이 개.

시로가네 루이는 개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다만 개라는 동물을 알았다, 개는 아주 사소한 행동에도 꼬리를 흔들고 사람을 이웃으로 받아들였다. 그 작은 시골 마을의 작은 경찰서에도 개가 있었다.

 

다행히 너구리의 품에서 자라 새로운 집에 들어갔다던 개는 조금 토실토실해졌고 조금 둥글어진 것도 같았다. 아닌가? 아니라도 솔직히,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래도 휴가라고 왔는데 고생만 하고, 모처럼 깊이 잠든 모양인데 억지로 깨우면 불쌍하니까, 저녁 먹기 전까지만 잠을 재웠다가 깨워야겠다...라는 생각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같이 주무셨다는 거군요."

"하하..."

 

류우미 아라이데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고, 그 소리에 루이가 따라 깼을 때는 이미 밤 열 시였다. 호텔의 저녁식사 시간은 물론, 아라이데가 재발급된 키를 수령하라고 안내받은 아홉 시에서도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하루도 못 잔...내 객실..."

 

아라이데는 재발급 키 신청서 종이를 쥐고 망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바로 방금 전에야 잠들어버린 자신이 잘못이라고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휴가였다. 휴가비를 도움 받았다고 해도 휴가가 이 모양이 되면 아무래도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뭐, 어쩔 수 없죠. 하루만 더 소파를 빌려도 될까요?"

 

하지만 아라이데의 순응은 빨랐다. 그 나이치고도 퍽 빠른 순응에 오히려 루이가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괜찮겠어?"

"뭐, 대부분 저는 운이 나쁘니까요. 컵라면 자판기 있는 거 봤어요. 적당히 사서 먹고 자고, 남는 돈이야 뭐 지부원들 선물라도 사면 되는 거고. 시로가네 씨 잘못 아니니까, 그런 표정 하지 마세요. 진짜 제가 잠든 탓이고 덕분에 노숙이나 이상한 바가지 숙소를 쓰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있어요."

 

소파에 찌그러져 있느라 삐그덕 거리는 몸을 펴고, 루이에게 웃는 얼굴에는 정말로 원망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순응이었다.

대부분, 저는, 운이, 나쁘다. 딱 네 단어로 정리해 버린 감정.

모든 것을 제 운으로 돌리고 타인의 부담을 없애고, 심지어 듣는 사람을 배려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좋게 말하면 성인의 성숙한 태도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모든 것을 자신에게 돌려버리는. 어쩌면, 열 살이나 연상이고, 같은 기관의 선배인 시로가네 루이에게는 한 치의 책임감도 미루지 않는 지독한 처리방법.

 

"아니."

"네?"

"아냐, 류우미씨. 저녁, 나가서 먹죠."

 

데님 셔츠가 잘 어울린다는 말에 류우미 아라이데는 대답했다. '옷은 잘 모르겠고-전에 시로가네 형사님이 입었을 때, 데님 잘어울리시는 게 떠올라서 샀어요.' 라고. 그렇다면, 시로가네 루이는-

 

"이자카야 가봤어요?"

 

적어도 류우미 아라이데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던 책임감 정도는, 지기로 했다.

 

 

 

"팍팍 주문하죠?"

"그 월급을 대충 들어서 아는데요..."

"난 중복 소속이라 월급 괜찮은 편인데."

 

영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게 어색한 모양인지 아라이데는 머쓱한지 메뉴를 제대로 고르지도 못했다.

급하게 들어온 선술집은 들어오는 바람에도 영 더웠지만 열어놓은 창에 달린 풍경 소리는 그래도 멋이 있어 나쁘진 않았다.

 

"술은 좀 해요?"

 

류우미 아라이데는 잠깐 고개를 멈칫했다가 끄덕였다.

 

"못 마시진 않을 걸요?"

 

분명히 못 미더운 대답이었지만 맥주가 좋을까 지역 한정 하이볼이 좋을까 고민하던 루이는 그 대답을 놓치고 말았다. 

 

"전 그럼 모히또하이볼로 첫 잔~"

"어어 전 그럼 이쪽으로..."

 

아라이데가 고른 것은 무알콜 레몬 소다였다. 대충 사진을 확인한 루이는 능숙하게 테이블 전용 키오스크로 주문을 시작했다. 

 

"냉우동도 하나 할까요? 가쓰오랑 간장 중 어느 쪽?"

"어, 가쓰오로?"

 

작은 우동 냄비가 하나 걸리고 가라아게와 흰 살 생선을 튀긴 것, 작은 야채샐러드가 따라 나왔다.

 

"모히또 하이볼 어느 쪽에 드릴까요?"

"아, 이쪽이에요!"

 

더운 여름밤에 받아 든 라임과 허브가 섞인 하이볼의 맛이란, 어른의 행복을 진득하게 즐기던 루이는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앗차 싶어 자기 잔만 빤히 보고 있던 아라이데에게 잔을 내밀었다. 아라이데는 곧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참, 괜찮은 밤이었다.

 

안주를 다 먹기도 전에 아라이데가 꽐라가 되기 전까지는. 

 

"못마시진 않는다며..."

 

루이는 허무하게 엎어져버린, 자기보다 12cm 크고 10살 어린 직장동료를 흔들어 보았다. 다행히 반응은 있었다.

 

"헤헤...토끼..."

"환장하겠네." 

 

도수도 그리 높지 않은 하이볼이고, 애초에 반 잔 정도 마셨으니까 조금 두면 그나마 깨겠지, 그나마 기분은 좋아 보이긴 하니 다행이었다. 술 마시고 묻지도 않은 과거를 듣는 건 상호- 유쾌하진 않은 일일 것이다.

 

"시로가네씨..."

"그래요..."

"R랩에서 제 다리를 손질하면서..."

 

시로가네 루이가 굳었다. 유쾌하진 않은 일이 바로 닥쳐오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유쾌하지 않은 것도 어쩌면 자신처럼 사회에 완전히 소속된 어른의 관점이고, 어쩌면 고작 한 해 전에 성인이 된 류우미 아라이데에게는 술기운이라도 빌러서 타인에게 토로하고 싶은 고민이 있었던 거라면 그렇다면-이번에는 들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야광 부품을 달아줬어요. 헤헤."

"...그래. 참 좋겠네요."

 

망할 R랩은 왜 남의 다리에 야광 부품을 달아??? R랩의 사고방식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무거운 이야기가 아니라 다행이지만.

 

...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루이는 이미 두 번째였던 잔을 단숨에 비웠다.

 

피하고 싶었다. 류우미 아라이데를. 거대한 사건의 피해자, 어쩌면 거대한 다른 사건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을. 어린애를. 자신을 마냥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어쩌면, 단 한 명의 시민이라도 죽였다면, 내 손에 죽었을-이용당하던 한 소년을.

 

"저기...시로가네씨."

"네?"

"제가 술 계속 안깨면..."

 

시로가네 루이가 보기에 류우미 아라이데는 너무 어렸다. 21살은, 그리고, 작년의 류우미 아라이데는 더 어렸다. 잠이 들거나, 제어를 잃은 그는-정말로, 어렸다.

 

"아니 곧 깰 테니까-"

"제가...적당히 죽어서...리저렉트할까요?"

 

그런 말은 웃으면서 하는 게 아니라고 알려줄 어떤 어른도 없었던 것처럼.

 

루이는 취기가 싹 가셨다. 술기운에 하는 말이 아니란 건 본능처럼 알 수 있었다. 진심인 거다.

 

"아무래도 폐를 끼치는...것 같고...지부에, 회복제 요청도 임무 바깥이니 조금 불편할테고..."

"그런 말 하지 마요, 류우미씨."

"그게 더 효율적인데..."

"진짜, 하지 마요."

 

두 번이나 하지 말라고 하자, 아라이데는 야채샐러드에서 당근을 뒤져서 먹으며 조용해졌다. 뭔놈의 야채 샐러드에 당근이 반이었다. 루이가 세 번째 잔을 다시 마시고 있을 때 즘, 아라이데는 당근을 전부 해치웠다.

 

"그...아까 제안이 불쾌했다면 죄송해요..."

 

술에 완전히 깨지도 못한 것 같은 발음으로 건네진 것은 결국 습관적 사과였다. 마치, 분위기를 망쳐서 미안해, 정도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아라이데는 자신을 죽이라고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오버드에게 죽음의 값이 싸다고 하더라도-전투 상황도 아닌데 그리 값싸게 취급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어떤, 누구도.

 

그래서 루이는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 잔을 비운 뒤에는-꼭 남은 튀김을 지부에 가져야겠다고 우기는 아라이데를 위해 튀김까지 포장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 적당히 버리고 가도 여름이라 동사는 안 할..."

"류우미씨는."

"네?"

"닥치는 쪽이 더 인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 진짜 무겁네!!"

 

키는 있지만 삐쩍 말라서 괜찮지 않을까 싶었던 건 정말로 싶었던 것뿐이라 R랩에서 무슨 짓을 해놓은 건지 정말로 묵직한 아라이데를 부축하는 것 만으로, 모처럼 온천수로 목욕한 루이의 등에는 땀이 흥건해졌다.

 

"어, 저기 시로가네씨가 있어요."

"어디에 제가 있다는-"

 

아라이데가 가리킨 프리마켓 전단지 속 민트색 토끼 캐릭터를 보고서는 진짜로 여기에 버릴까?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가엾게도, 시로가네 루이는 현직 경찰이었다. 여기에 버렸다가 투기범으로 지목당해도 곤란했다. 아니, 지목당하지 않아도 버리진 않을 테지만!!!

 

"...아오."

"아하하. 근데, 저 다리 끌리는데요."

"끌리세요."

"네."

 

그렇게 겨우 돌아온 호텔 방에 짐짝을 구겨서 소파에 처박을 기력도, 씻을 기력도 남지 않은 루이는 결국 지고 있던 아라이데를 침대 위에 대충 던지고, 그 옆에 대충 쓰러졌다.

 

현관의 안전등이 꺼지고, 방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커다란 숙소의 창 너머, 관광지의 불빛들은 섞여, 엉망으로 놓인 두 사람의 몸 위에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불빛에 가려져 달이 보이진 않아도, 저기 어딘가에는 달이 있는 것처럼, 

결국 언젠가는 다시 로이스가, 인연이 되어버릴 거였구나.

 

"참내, 그렇게 피해다녔는데-이제 최소 몇 년은 이자카야에 들리면, 이따금 이 날을 떠올릴 수밖에 없어졌잖아."

 

에어컨으로 적당히 식어있던 방이 기분이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무언가 후련해졌는지 시로가네 루이는 자연스럽게 잠이 들었다.

 

어쩌면 오늘 밤의 꿈은 토끼가 나올까?

만약에 꿈에 달토끼가 된다면-그건 루이 혼자만의 꿈은 아닐 것 같았다.

보름달에 산다는 토끼는 떡을 만들고 있다던데, 떡은 혼자서는 만들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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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X3 「 ヴォーパルバニーダンス」After talk END

 

Thanks to 아일님, 쯔루님!

Posted by 현재(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