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편 보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하여 캐릭터 붕괴 / 설정 붕괴 있을 수 있습니다.




 길 위에서 종이를 주웠다.


 아니, 한 번 더 처음부터 다시 쓰자, 더러워진 길 위에서 하얀 종이를 주웠다.


 한 줄만으로는 분명 어색해보이기 짝이 없는 문장임에도 브렌은 그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저장을 눌렀다. 저녁부터는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었는데 확실히 비가 오려는지 공기가 눅눅히 젖고 있는 걸 깨달아 숄을 꺼내 어깨에 둘렀다. 추위나 더위에 쉽게 적응하는 만들어진 육체를 가진 브렌이다보니 필요에 의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 행동을 하는 브렌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The white virgin]

 -for 가위님


 2016 04 16






 하트는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브렌, 인간들은 왜 버진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걸까?"



 하지만 그 말의 내용까지는 평이하지는 않았다. 후드드드득-브렌이 책장에 꽂아넣던 책들이 일순간 목표를 잃어버리고는 브렌의 발등 위로 우수수 쏟아 떨어져 엉망으로 뒹굴었다. 한 박자 느리게 찾아드는 둔탁한 통증에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던 브렌은 겨우 고통을 참아내며 책을 주섬주섬 주워 올렸다. 아름답게 양장된 두꺼운 책들은 인간의 문화에서 고전이라 부르는 이름을 하고 있었다.


 세익스피어, 헤세, 이해할 수는 없음에도 읽고 있자면 그 울리는 소리와 구조의 아름다움에서 정신적으로 평온해지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들, 최근 브렌은 그 문장들을 머릿 속에 집어넣는 행위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뭐 내용만이라면 넷 상에서도 쉽게 떠도는 것이니 구태여 책까지 장만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나, 브렌은 책, 그것도 양장본이라는 형태가 좋았다. 단단하게 사각으로 잡혀져 있는 윤곽과 금색과 은색으로 섬세하게 새겨진 그림, 글씨의 형태, 한껏 멋을 부린 그 고상하고 우아한 형태, 미개한 인간의 문화에서도 가장 고급으로 취급되는 취향의 한 단면은 참으로 아름다운 외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브렌이 하트에게도 독서를 권한 것이 채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브렌,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아니, 정말로 '저런 책'을 읽으라고 권유한 것은 아니었단 말이다. 하트의 손에는 절대 브렌이라면 권하지 않았을 종류의 얄팍한 책자 하나가 하트의 손목의 움직임을 따라 팔랑거리고 있었고 그걸 바라보는 브렌은 복잡한 심경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전일 브렌이 자리를 비운 사이, 하트는 체이스에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한 권 사오라고 한 모양이다. 제 권유를 잊지 않고 실행하려 시도한 하트의 행위 자체는 썩 마음에 들었다. 그래,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어째서 메딕도 아니고 체이스에게 그런 걸 시켰는지가 브렌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래 메딕이라면, 아무리 탐탁지는 않아도 메딕이라면 그래도 '저런 책'을 사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체이스는 말은 잘 듣기는 하는데, 정말 지나치게 말만 잘 들어서 문제였다. 충실히, 하지만 브렌은 납득할 수 없는 방향으로 수행하는 일이 빈번했다. 하트의 손에 있는 책의 이름은 맨즈 라이프, 그래, 체이스가 보기에는 사람의 삶이라는 제목이니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사오라는 하트의 명에 정말 더없이 완벽한 선택일 수는 있다.


 하지만 체이스-책을 구입하기에 앞서,  책 앞에 망사재질의 검은 속옷을 입고 바이크쟈켓을 걸친 외국여성이 왜 속옷을 입고 있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은 건지, 올해 연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100가지 방법이라는 문구에 정말 어떠한 의구심도 들지 않았냐는 말이다. 아아, 그렇지, 체이스였다. 체이스니까 안했을 것이다. 그래, 체이스라면 아무 의문도 느끼지 않았겠지. 브렌은 푸들거리는 입술을 짓이기듯 삼켰다. 왜 동료라는 존재들이 다 이러한지 납득할 수 없지만 역시 하트에게 가장 쓸모있는 존재는 브렌 자신 뿐인 것 같다고 다시금 되새기며 저절로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아닙니다. 하트. 정확하게 궁금하신 부분이 무엇인지 한 번 더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인간'들이 '왜' '버진'에 집착하는지 물었어."



 다시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질문, 브렌은 제가 나올리 없는 식은 땀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았다. 자, 이제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가. 아니,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하 트의 질문 내용에 대한 구체화를, 혹은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회피를 섞어 브렌은 부차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하트는 고개를 가볍게 기울이더니 예시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듯 제가 보던 잡지를 활짝 펼쳐서 브렌 앞에 보였다. 분홍색 하트와 일러스트들로 잔뜩 치장된 잡지의 페이지 안에는 기술하기에도 낯이 뜨거울 만큼이나 노골적인 말들과 느낌표로 치장된 일본의 섹스판타지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하트는 덤덤한 얼굴로 손가락으로 문장을 짚어가며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봐봐, 브렌, 버진-그러니까 여성체의 성경험 유무가 그 여성에 대한 상세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건데, 이상하지 않아? 성경험을 굉장히 하고 싶어하는 걸로 보이는 인간 남성체가 이미 그 경험을 한 여성체를 기피한다는 게 내가 가지고 있는 사회의 상식적인 기준의 선상에서는 이해가 가질 않-"


 "쿨록, 콜록, 콜록-"



 브렌은 몹시 처참한 심경이 되었다. 성교육이라면 주입받았던 절차에서도 최소한의 정보는 알고 있었고, 기존 인간체가 가지고 있는 지식 외에도 브렌이 간단하게 추가로 해두기는 했지만 하트는 유난히도 로이뮤드들 중에서 성에 대한 기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부류에 속해 있었다. 그런 면이 이전에는 조금 좋다고 느낀 적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 한정하자면, 그래, 브렌은 죽고 싶었다.



 "브렌, 괜찮나?"


 "괘, 괜찮습니다. 하트."



 사실은 괜찮지 않다. 아아, 정말로 괜찮지 않았다. 손수건을 급하게 꺼내서 마치 사레가 들린 것처럼 입매를 매만지고는 있지만 생리적인 이유가 있는 동작일리가 만무해서 브렌은 시간도 벌 겸, 기침에 체이스에 대한 비방을 광속으로 섞어 내뱉고 있었다. 아아 멍청하고 등신같은 체이스-어째서 수북하게 많은 인간의 책 중에 하필 저런 부류의 책을 사온 겁니까! 이런 미개하고 노골적이고-로 시작되어 마냥 이어질 것 같은 브렌의 토설은 그 치열함에도 하트의 질문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하트는 브렌의 기침이 조금 잦아들자 잡지를 몇 장 더 넘겨 다시 브렌에게 보였다.



 "이것도 보게, 브렌, 콘돔의 착용 유무가 얼마나 남성체에게 있어서-"


 "켈렉!!!!!!!!"


 "브렌, 정말 몸이라도 안좋은 건가."



 정말, 정말로 안좋긴 했다. 하트가 물어본 몸이 아니고 정신 쪽이 극단적으로 좋지 않다. 하트는 동료의 몸상태가 평소같지 않은 것이 염려되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브렌의 어깨에 손을 얹고 염려를 얹은 시선을 보내며 브렌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런 브렌의 상태를 자기가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에는 전혀 인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 사실상 체이스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체이스가 그렇게 유지될 수 있는 것도 사실상은 하트, 이 남자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브렌은 분명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세상에 그리 많은 것도 아니질 않던가. 아아, 이런 세상, 사라져 버렸으면 좋았을텐데. 이 따위 잡지도 진작에 내지 못할 정도로 인류가 빨리 멸망해 버려야 했는데. 아아, 멸망해버리라지, 인류따위, 정말 하나도 쓸모가 없는 종족이었다.



 "아무튼지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겠어."



 브렌의 상태가 복구되지 못하자 하트는 다시 대답을 촉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잡지를 탁자에 내려 놓고는 어딘가 아련한 표정으로 그것을 내려다 보았다. 잡지를 본다기에는 먼 시선에는 브렌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종의 감정이 깊이 묻어나왔다. 아쉬움과 사랑.


 어째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그-하트가 아직도 인류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고 사랑을 가지고 있는지 사실 브렌으로서는 온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었지만 하트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면 몸의 어딘가 알수 없는 부분이 쿵하고 내려 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저런 시선이 더럽고 추악해빠진 인류가 아닌 저를 향해준다면 좋겠다. 그런 근거도 알 수 없는 바람과 함께.



 "이해를, 도울 수도 있습니다. 하트."



 논리를 기반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하트의 시선을 돌리고자 한 것이 첫번째 의도였지만 다른 의도는 브렌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로 충동, 그 갑작스러운 감정들이 논리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비죽이 흘러나왔다. 차고 흘러 넘친 것들이라기에는 정상적인 말로 흘러나왔으나 브렌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만치 계획되지 않은 말들이었다.



 "무엇을?"



 하트는 고개를 기울여 브렌에게 향했다. 메딕의 치료가 끝나지 않은 탓에 벌려진 코트의 속으로 드러난 살결에 브렌의 시선에 잠시 멎었다가 금새 흩어졌다. 그러나 그 찰나의 시선 만큼 감흥까지도 빠르게 소모된 것은 아니었다. 감촉, 인간의 피부라고 해봐야 엇비슷한 질감일 것이 분명하겠지만 이따금 브렌은 하트의 표피를 바라보며 어떠한 방향의 충동을 느끼고는 했다.


 지금 하고 싶은 것, 피부의 접촉, 인지, 체온의 교류, 인간종이 그 것들을 스킨쉽이라고 부른다고 한다면 감정의 교류는 피부의 접촉에서 만들어진다는 설명이겠지, 그렇다면 그 것이 로이뮤드에게도 동일할까, 분명 그렇지 않을까, 조금 더 깊이 닿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메딕보다도 제가 더 깊이, 더 많이, 더 진득하게 닿을 수 있다면. 분명 무언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부유하는 생각들.



 "물론, 인간의 이해에 대해서입니다. 하트."



 방금의 말에 거짓은 없지만 물론이란 단어가 앞서 붙을 만큼 진실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과연 진실이라 말할 수는 있을까.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한 것에 대한 부작용으로 가장 많은 지식을 손에 넣은 브렌은 사실상 오염되어 있었다. 오염, 혹은 고장, 또는 바이러스, 질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들, 어떠한 종류의 욕심, 차마 아름답다 말하기에는 조금더 본질적이고 조금 더 노골적인 감정들, 그다지 가지고 싶지는 않았던 것들.



 "아아, 그래주겠나 브렌, 도움을 준다면 기꺼히 받겠네."



 하트는 웃으며 양손을 내어 보였다. 무방비하게 벌어진 손과 허용의 의미가 담긴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가 허용하고 허락한다고 해서 어떤 특정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 동작에 그 사실을 빠르게 읽어내린 브렌은 그 읽어내림을 부정하고 제 욕망을 멋대로 휘두르고 싶은 마음과, 다른 어떤 갈등으로 눈을 감았다.


 아. 조금만, 아주 약간만 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트는 저를 거부하지도 내치지도 않을 것인데 조금만 그에게-아주 조금만, 제 치미는 욕심의 아주 조금만 해결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브렌."



 하지만 하트가 그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브렌은 어금니를 꾹 물고는 하트에게서 한걸음 물러섰다. 그 무거운 한걸음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분명 하트는 전혀 알지 못할 것이고, 사실상 브렌 스스로도 그러했다.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빠르게 구해 드리겠습니다."


 "아, 좋겠군, 하긴 이 책은 너무 모르는 단어가 많았어."



 내뱉어진 말이라고 해봐야 의미 없는 것이었지만 하트는 납득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자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기며 다리를 꼬았다. 찌뿌둥한지 어깨를 두어번 풀더니만 브렌이 조금 전에 가져다 둔 커피를 느리게 마신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하트의 시선에서 뒤떨어진 브렌은 아직도 벌어진 채로 방치된 하트의 살갗을 약간의 미련으로 바라보다가 곧 가볍게 시선을 털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옳다. 이 쪽이 옳았다. 잠시의 충동도 조절하지 못하는 건 미개한 인류나 벌일 법한 싸구려적이고 값싼 행동들에 지나지 않다. 지금 저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들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단지, 단지 하트는 조금 더- 조금 더.



 "브렌."


 "네, 하트."


 "책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으면 그 때는 납득을 도와주겠나."


 "......예, 그러도록 하지요."



 맙소사. 하트는 정말 자신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알면서 저런 말을 하고 있다면 이건 지나칠정도로 잔인한 고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브렌은 어디까지 제 이성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재어보다가 결국 또다시 이 망할 상황을 제공한 체이스를 생각하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체이스를 대신하여 브렌의 손에 쥐어져 있던 손수건이 손톱에 깊숙히 짓눌리며 엉망으로 구겨졌다가 다시 풀어졌다.



 -



 브렌은 매일 밤 인간을 흉내내어 일기를 썼다. 일기라고 칭하기에도 그렇게 길지는 않은 짧은 문장의 기록이었지만 매일의 기록이란 점에는 일기가 맞는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시집을 읽고 있기에 비유라는 표현에는 익숙하지 않으나 비유를 도입해서 기록해 보기도 했다. 브렌의 손가락이 타블렛의 표면을 스치며 짧은 문장을 만들어냈다.


 길 위에서 종이를 주웠다.


 아니, 한 번 더 처음부터 다시 쓰자, 더러워진 길 위에서 하얀 종이를 주웠다.


 한 줄만으로는 분명 어색해보이기 짝이 없는 문장임에도 브렌은 그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저장을 눌렀다. 저녁부터는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었는데 확실히 비가 오려는지 공기가 눅눅히 젖고 있는 걸 깨달아 숄을 꺼내 어깨에 둘렀다. 추위나 더위에 쉽게 적응하는 만들어진 육체를 가진 브렌이다보니 필요에 의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 행동을 하는 브렌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하트는 그가 겪은 삶 속에서도 인간의 몇 감정에 대해서는 지나칠정도로 무방비했다. 그 사실이 브렌을 평온하게 만드는 동시에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가르쳐주고 싶다. 그가 치우친 감정들의 반대에 있는, 저열하지만 더 노골적인 것들에 대해서, 하지만 동시에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조금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해서, 인간의 것들 중에서도 오직 좋은 것들이 분명 존재하지 않을까 해서.


 브렌은 눈을 감았다. 낮에는 분명 제 행동과 선택이 현명하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 같은데도 어째서 이렇게 아쉽고, 안타깝다는 감정이 뒤따르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납득하지 못한 상태로.





-


 

키워드 연성, 순진무구한 방심왕 하트+냉철하게(냉철한가...) 허벅지 찌르는 브렌으로 연성했습니다:>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 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트브렌] In the pool  (0) 2016.07.05
[고우신] 봄을 너에게  (0) 2016.05.07
[체이키리] 감히, 약속  (0) 2016.05.07
[고우체이] 소망  (0) 2016.04.16
[하트브렌] My own  (0) 2016.04.11
Posted by 현재(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