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겨지던 것은 11번째 날이었다.





[In the pool]


2016 07 05







 로이뮤드의 신체가 인간의 그것보다 우월한 면이라면야 몇 백개도 댈 수는 있겠지만 하트는 이 연약한 인간체 또한 사랑했다. 명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로이뮤드의 것보다 인간의 것을 더 사랑할 지도 모른다.


 편이성면만해도 그렇다. 지구는 인간의 세상이며 인간체는 이 세상을 살기에 가장 적합하고 편리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이 몸이 설령 처음부터 자신의 것은 아니란 것은 알지만 그렇다해도 애정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트는 손을 들어 푸른 천장을 향해 뻗었다. 조명에 투과되어 핏줄이 붉게 비치는 살결도, 찌르면 피를 울컥이는 연약한 피부조직도 참으로 인간의 것을 닮았지만 사실상 인간의 것과는 다른 의태. 첨벙, 의사를 읿은 손이 물에 부딛치며 물방울을 흩뿌렸다. 물, 자연의 것이 아닌 정제되어 모여진 물 속, 하트는 그 물 속에 있었다.


 정제된 공간이었다. 어둑한 벽은 사각의 하얀 타일이 줄을 이어 있었고 공간 안에 자리잡은 건 그리 크지 않은 하얀색 프레임의 사각 수영장. 물은 색소 없이 투명했지만 천장에서 쏟아지는 푸른 조명으로 푸르스름하게 빛나다가, 흔들리거나, 은색으로 반짝이고는 했다. 특유의 장식은 없이 조명과 산란하는 빛의 파편들로 푸르게 변한 유리천장으로는 밤하늘이 비춰 보였다. 별은 가려져 그저 어둡게 존재하고만 있는 밤의 흔적은 어딘가 부옇게 보였다.

 

 이 장소를 처음 하트에게 빌려준 로이뮤드는 이미 세상에 없다. 이야기도 되지 못할 사소한 죽음으로 존재를 잃고 그저 없는 존재가 되었다. 다만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로이뮤드의 카피체였던 인간이 저들에게 보인 호의일까. 사용해도 좋다...아니 오히려 사용해주길 바란다고 말하며 이 고층의 수영장을 추가로 허락하던 인간의 시선은 하트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이 세상에서 사라진 로이뮤드의 자취를 어떻게든 뒤쫓는 것처럼도 보였다.


 인간, 로이뮤드, 존재.


 익숙하지만 영영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이 주는 생경함으로 하트는 눈을 감았다.


 의도적으로 뒤로 몸을 눕히자 눈꺼풀의 사이와 비강과 입 안으로 물이 새어 들었다. 고통의 신경까지 카피된 육체는 여지없이 불쾌한 감각과 고통을 뇌리로 전달한다. 하지만 숨을 쉬지 않아도 일정 시간은 견딜 수 있는 육체라는 것은 하트 자신이 몸으로 체득했기에 반응을 만들어내지 않고 고통마저 받아들인다. 죽지 않을 고통이라면 애초에 고통이라 하기도 어렵다. 완전한 의미는 아니겠지만 하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고통, 고통, 고통. 가물거리는 시야와 그만큼이나 흔들리는 생각들. 그럼에 살아있다는 감각이 더 두드러지는 체득의 순간들. 그리고 고통마저 익숙해지면 시야는 고정되며 오로지 물 속의 제존재를 여실하게 느낄 수 있다. 소리마저 먹히는 공간. 공기가 거품이 되어 흔들리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착각마저 들어서, 전혀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것 같기도 해서. 그래서.



 "---------------!"



 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마도 기억이 만들어낸 착각일 것이다. 하트는 물고문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고통의 레벨이 낮기도 하고 반노가 지껄이는 말소리들도 온전하게 들리지 않아서 버티기도 쉽고 시간도 잘가고, 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 차라리 쉬는 느낌마저도 들어서 기껍기까지 했다. 말하면 벗인 로이뮤드들 조차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생각들이지만은, 이 착각 속의 목소리의 울림은 그 로이뮤드들 중의 하나를 꼭 닮았다. 마치 착각이 아닌 것 같이.



 "-----------하-----!"



 착각이 아닌가? 시야 속의 푸름 너머에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환각으로 치부하기에는 깨어진 감각이 선연해서 몸을 일으켜 물 위로 올라간다. 산소가 없이도 기능하는 몸은 몇 번의 발길질 만으로 물의 막을 깨어내고는 공기가 있는 세상으로 되돌아왔다. 물을 헤치고 만난 공기, 폐부를 갈아치우며 평소라면 익숙했던 소리들이 조금 더 크고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들. 그리고 그 속에 잔뜩 짜증이 난 얼굴을 숨기지 않고 서있는 친우의 얼굴.



 "여-브렌."


 "여어~가 아닙니다. 지금 몇 시인 줄은 알고 있습니까?"



 그러고보니 약속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브렌은 수건과 가운을 어깨에 걸친 상태로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약속을 지키지 않다니 친구로서 미안하긴 하지만 이 공간은 정말로 시간의 흐름을 알아차리기 어려우니, 조금 양해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드는데.



 "아아. 미안. 분명 기억하고 있었는데 실수야."



 물 밖으로 나오라는 듯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브렌의 건조하고 따뜻한 피부를 느낌과 동시에 체온이 내려가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과 동일한 성분이니 일단 열전도는 일어나게 만들어져 있긴 하다.



 "정말이지. 몇 시간이나 이 곳에 있었던 겁니까."


 "글쎄."



 브렌은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제가 몸을 얻던 그 날, 우리가 실패하던 그 날에 비가 내렸던 것이 시작일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말하며 비오는 날은 움직이는 것 조차 즐기지 않아사, 모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에 와있는데도 가끔 의자에 앉아 책이나 읽을 뿐으로 정작 수영장 안에 들어간 적은 없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하트는 흠. 하고는 입매를 비틀었다. 그러네. 들어간 적 없었지. 그렇다면? 망설임은 짧고 행동은 몹시 빨랐다.



 "아깝게."


 "????? 어엇??? 잠깐!!!!!!!!!!!!!!!! 하트!!!!!!!!?????"



 첨벙-하고 어마어마한 물보라를 만들어네며 브렌이 물 속으로 꼬꾸라졌다. 브렌의 표정도 반응도 언제나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하트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안경을 잃었는지 인상을 일그러트린 브렌이 당혹스러운 얼굴을 숨기지 않고는 숨을 가다듬고 있다. 물이 낯선 모양이다. 어차피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생각입니까 하트 당신은!"


 "아니 재밌어 보여서. 물, 기분 좋기도 하고."



 브렌은 물 안을 휘적거리며 안경을 찾으려는 듯 팔을 버둥거렸으나 애초에 물이랑 친숙하지 않다보니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행동처럼만 보였다. 하트는 제 발치에 닿아있던 은색 프레임의 물체를 살짝 뒤로 밀어냈다. 골탕을 먹이려는 의도보다는 조금 더 브렌이 이 곳에 있어주면 하는 마음이었다.



 "전 좋지 않다고 몇 번이나-"


 "이미 들어온 걸. 진정해."


 "들어온 게 아니라 빠트린 거겠지요. 게다가 옷도 엉망이 되어버려서는-"



 브렌은 같은 옷을 몇 벌이나 가지고 있는데도 매번 옷을 소중히 아끼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모든 게 정돈되있고 깔끔한 걸 좋아하는 브렌, 하트는 가만히 생각해본다. 저는 물을 좋아하고 브렌은 정돈을 좋아하지, 과연 그 기호마저도 우리의 것일까. 생각이나 기호에 줄이 그어져 분류되어 본래의 것과 제 것이 나뉘어져 있다면 생각도 사상도 분류해낼 수 있을텐데 모든 것은 혼탁하게 일그러져 있어서 구분하기 어렵다.



 "하트?"


 "아니. 잠시."



 비춰볼 것이 흔들리는 물뿐이라 제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하트는 제가 안좋은 표정이 되었던 것을 브렌의 반응에서 읽었다. 금방까지 짜증을 내던 것도 잊었는지 브렌이 물에 젖어 한층 안쓰럽게 보이는 얼굴로 질문을 던져온다. 괜찮은 겁니까? 물어오는 말에 하트는 대답을 잇지는 못했다. 괜찮은 걸까. 괜찮은 적이 있었나. 애초에 그런 것, 저희들에게 어울리기는 할까.



 "브렌."


 "네, 하트."



 하트는 물에 몸을 맡겼다. 천장을 바라본다. 브렌은 어째서인지 이유도 묻지않고 저도 몸을 물에 띄웠다. 물을 싫어하면서도 따르는 행동이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유리의 천장. 만들어진 푸른 색들과 빛들,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 영구하지 못하지만 아름다운 것들. 그 따위들. 하트는 브렌의 손을 잡았다. 물기에 미끄러운 피부는 몇 번의 미끄러짐 끝에 단단하게 이어져 차가움 속에서도 온기를 전했다. 맥박. 의태에서조차 느껴지는 살아있다는 감각.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 이곳에서 하늘을 같이 볼 수 있다는 것.



 "아름답지 않나."



 설명하지도 않고 그저 던져진 하트의 말에 브렌은 천장으로 고개를 들었다. 잠시간 검푸르게 투영된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뜻을 구하려는 듯, 또는 단어를 찾으려는 듯 천장을 바라보던 시간의 배의 배가 되는 시간 동안-아직도 천장을 바라보는 하트의 옆모습을 길게 바라보다가 시선을 반대로 돌리며, 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아름답습니다."



 하트는 웃었다. 젖은 브렌의 옷도, 기다리고 있을 로이뮤드들도-인간이니 로이뮤드니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도 모두 다 잠시 잊고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그저 웃었다. 지금이 이미 족해서, 좋아서ㅡ이 시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던 순간이 물에 잠겨 있었다.













 

Posted by 현재(now)